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아 아이이치로 시리즈
아와사카 쓰마오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의 '아 아이이치로'라는 독특한 이름의 탐정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의 첫 단편집으로 온갖 일본 미스터리 리스트 ('일본 플레이보이지 선정 미스터리 철야본을 찾아라' / '일본 본격 미스터리 100선' 등) 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전설의 단편집이기도 합니다. 총 8편의 작품이 실려있습니다.

작품들의 특징을 쉽게 규정할 수 있기도 한데

1. 기상천외한 사건의 등장
2. 황당 사건의 연속 - 유머와 슬랩스틱을 보는 듯한 등장인물들의 행동
3. 사건에는 모두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존재함
4. 독자에게도 탐정역 아이이치로와 동일한 수준의 정보 제공
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전 본격 추리물의 원칙과 정말 비슷하죠? 2번 항목 덕분에 진지하다기 보다는 유머러스하면서도 개그스러운 분위기로 끌고가는 차이점은 있지만요.
게다가 8편의 트릭이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것 역시 추리애호가로서 반가운 부분이었어요. 심리트릭, 밀실트릭, 공간이동트릭, 암호트릭, 원격살인 트릭 등 다양한 트릭이 등장하기도 하고 말이죠.

더불어 아 아이이치로라는 캐릭터와 모든 등장인물들 역시 독특한 재미를 안겨다 줍니다. 잘생기고 번듯하지만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아 아이이치로는 현대에 환생시킨 브라운 신부 느낌이었어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있는 점이라던가 다른 사람들이 방심할 때 의외의 한방을 날려주는 모습이 비슷했거든요. 또 시리즈 작품이지만 아 아이이치로 이외에는 모두 다른 공간과 장소, 다른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모두가 기상천외한 사건에 잘 녹아든다는 점에서 작가의 대단함이 느껴졌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70년대 후반 일본에서 새롭게 쓴 브라운 신부 파스티쉬 작품같은 느낌이었달까요? 옛날 이야기를 듣고 진상을 밝혀내는 작품같은 경우는 정말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만큼독특한 등장인물들, 황당한 사건, 공정한 추리, 의외의 결말 모두 고전적이면서도 엄밀한 추리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점에서 근래 보기드문 좋은 작품집이었습니다. 고전 추리 단편집을 좋아하는 모든 추리 애호가들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유쾌하고 즐겁기까지해서 딱 제 취향이었어요. 별점은 4점입니다.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부분도 없잖아 있다는 것은 약간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 1978년도에 발표된 작품 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고전스러웠어요. 솔직히 뒷페이지 해설을 읽기 전에는 전전 (45년 전)에 발표된 작품인줄 알았답니다. 뭐 이게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요. 이러한 의도가 취향이 아니신 분들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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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에의 제물 동서 미스터리 북스 160
나카이 히데오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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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누마 집안에서 일어나는 연쇄 밀실 살인사건을 다룬 작품. 저자 나카이 히데오가 작명하고 창안한 <안티 미스터리>의 첫 작품으로 추리 장르문학사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유명한 고전이기도 하죠. 관심은 많았지만 두께와 악명높은 동서문화사의 번역탓에 읽기를 꺼렸었는데 국내 최대 추리동호회 "하우미스터리"에서 발기한 독서클럽 "고등고등열매" 에서 읽어야 할 첫번째 작품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일단 <안티 미스터리>에 대해 찾아보았더니 아래와 같은 작품이더군요.

1. 미스터리 속에 미스터리가 존재
2. 스토리의 반전이 많다.
3. 결국 미해결 사건이 되거나 뒷맛 씁쓸한 결말로 끝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사건이 과연 이 작품안에서 등장인물인 무레타가 쓴 소설인지, 아니면 다른 등장인물들의 추리를 통해서만 펼쳐지는 것인지도 불분명하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서로 경쟁하듯 추리를 쏟아내기 때문에 추리와 트릭이 난무할 뿐 아니라 추리마다 새롭게 이야기가 반전되기 때문에 결국 뭐가 진상인지도 헛갈리거든요. 마지막 결말이 씁쓸한것 역시 공식대로고요.

또한 <안티 미스터리>라는 이름답게 정통 고전 본격 미스터리의 반대하는, 어떻게 보면 고전 본격물의 패러디같은 느낌이 강한것이 특이했습니다. "수수께끼의 인물"이라던가 "밀실", "과거의 피비린내 나는 악연", "증오가 넘치는 가족관계", "색깔로 형상화된 범행" 등과 같은 클리셰라고도 할 수 있는 일본 본격물의 요소들을 모조리 도입하여 작품안에서 정말 작위적으로 녹여내는 점이라던가, <녹스의 추리소설 10계> 나 란포의 <속 환영성> 같은 추리소설의 교과서적인 룰들을 따라 추리쇼를 진행하는 것 모두가 본격물에 대한 비틀기, 패러디로 보였으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비틀기와 패러디가 좋은 쪽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닙니다.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이라 앞과 뒤가 연결이 잘 안되는 것도 있었지만, 비틀기와 패러디를 위한 작가의 의도가 지나쳐서 뒤로 갈수록 몰입하기 힘들었거든요. 작위적 설정이 한두번 정도 양념으로 쓰인다면 모를까 전편에 걸쳐 벌어지니 지루할 수 밖에요. 하나의 사건이 벌어질때마다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만의 장황한 추리를 펼치는 추리쇼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책의 구성도 나중에는 짜증이 날 정도였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는 사람이 아는 독자들을 위해 맘먹고 비틀고 패러디한 희대의 괴작' 입니다. 중반까지는 본격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비교적 괜찮은 추리와 트릭들이 등장할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본격 추리소설의 얼개를 제대로 갖추고 있기는 해서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추리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기는 합니다만 패러디와 비틀기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면 지루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어떻게보면 미완성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해괴한 작품이네요.

아는 사람이 읽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기도 쉽지 않으며, 보는 시각에 따라 5점 ~ 1점을 오갈 수 있어서 별점으로 평가하기가 정말로 어려운 작품인데 제 개인적인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악명높은 동서문화사의 번역본이라 걱정했는데 역시나 뒤로 갈수록 번역이 거슬리더군요.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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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기억들 Medusa Collection 4
토머스 H. 쿡 지음, 남명성 옮김 / 시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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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50년전 일어났던 한 소녀의 살인사건을 재구성해 달라는 의뢰를 받은 범죄소설작가 폴 그레이브스가 의뢰를 받아들여 사건의 현장이기도 한 부유한 별장지 리버우드에서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내용으로 "심문"으로 이미 접해본 토머스 H 쿡의 작품입니다. 50년 전의 페이예 살인사건과 더불어 그레이브스의 소년시절에 있었던 누나 그웬의 잔인한 살인사건이 회상형식으로 겹쳐져 진행되는데 460페이지나 되는 대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심문"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으로 장편의 힘을 그야말로 제대로 느끼게 해주네요.

먼저 50년 전 페이예 사건부터 살펴본다면, 범행이 실제로 가능했던 용의자는 한줌도 안되죠. 하지만 거의 모든 용의자에게 타당한 동기를 부여하고 용의자별로 상세한 수사가 펼쳐지기 때문에 지루한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 것이 대단합니다. 또한 트릭이 등장한다는 것과 단서들이 앞부분부터 교묘하게 배치되어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된다는 점에서 정통 추리소설로 보아도 부족함이 없고요. 특히 사소한 단서가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많아서 정말 쉴 틈이 없는 짜임새를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두번째 주요 사건인 그레이브스 사건의 경우는 이야기 전개 상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주로 그레이브스가 페이예 사건을 수사하면서 떠올리는 심리묘사를 통해 전개되죠. 이러한 전개는 본편의 수사과정과 다른 심리 스릴러스러운 맛을 전해주면서도 페이예 사건의 전개와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독자의 마음을 강하게 건드리는 맛이 정말 탁월하더군요. 아울러 제대로 된 반전의 힘을 보여주기 때문에 반전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 반전이 작품을 효과적으로 마무리하고 있어서 결말 역시 아주 깔끔하고요.

그러나 사건의 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아쉽습니다. 일단 미국의 유서깊은 가문의 별장지에서 벌어진 사건이 2차대전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치 수용소 의학실험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터무니 없어 보였어요. 이런 의학실험에 비교하면 꽃의 교잡실험이라던가 의학에 관심이 있다라는 수준에 그친 복선은 너무 미미하잖아요... 워런 데이비스와 그로스먼이 나치 독일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전혀 설명되지 않았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페이예라는 소녀에게 이런 몹쓸 실험을 가해야 했을 타당성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 큰 문제로 생각됩니다. 지역을 장악하다시피했던 워런 데이비스의 영향력이라면 뒤끝없었을 희생양을 골라내는 것이 가능했을텐데 왜 딸의 친구이기도 한 이웃 소녀를 골랐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아무래도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하면 워런 데이비스라는 캐릭터에 대한 표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기도 한데, 조금만 더 설명해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좀 많이 드네요.

그래도 수사와 단서가 잘 결합된 수사물이면서도 여러가지 트릭이 등장하는 정통 추리소설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수작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죠. 문학적 성취를 이룬듯한 미국의 오래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뛰어난 심리묘사 등 세련된 묘사와 군더더기 없는 전개는 "앵무새 죽이기"의 추리물 버젼이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이러한 심리 추리 스릴러 장편의 교과서같은 작품으로 별점은 4점. 아직 읽어보지 못하셨다면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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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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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개와 고양이를 살육해서 다리를 부러뜨려 유기하는 범죄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던 무더운 여름날, 초등학교 4학년 미치오는 방학식에 등교하지 않은 S에게 준비물 등을 전해주러 S의 집을 찾아가고 S가 목매 죽은 시체를 발견한다. 그러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앞에서 시체는 사라져 버리고, 거미로 환생한 S의 부탁으로 미치오는 동생 미카와 함께 S의 시체를 찾아내고 사건의 진상을 풀기 위해 나선다.

<주의 : 스포일러 있습니다>
친구 S의 자살사건과 더불어 여러가지 사건들이 독특한 상상력을 토대로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전작 "섀도우"리뷰에서 tuppence님이 추천도 해 주셨고 네이버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 카페가 뽑은 2009년 미스터리에서 10위를 차지하는 등 다른 곳에서 본 리뷰들도 평이 괜찮았기에 바로 읽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소문대로 정말 무지하게 특이하네요. 초등학교 4학년생인 미치오의 혼란스러운 자아와 시각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아이의 상상력이 전면에 배치되는 독특한 환상소설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러한 상상을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결국 현실이 드러날 수 있도록 복선처럼 단서들을 곳곳에 삽입해 놓은 것도 좋았어요. 사건 없이 이러한 단서만으로도 추리소설적인 흥미를 자아내니까요.

추리적으로도 크게 2개의 사건 - S 자살 사건과 개, 고양이 연쇄 살육유기사건 - 이 펼쳐지며, 이 사건들이 다양한 추리를 통하여 다양한 가설이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에 굉장히 풍성한 느낌이었어요. 또한 가설들마다 단서는 물론 증거와 트릭들도 정교하게 배치해 놓고 있는게 이게 제법입니다. "비누"가 주요한 단서로 등장하는 이유라던가, 다이조 할아버지와 미치오의 관계를 드러내는 여러가지 장치들 등 사건에 관계된 단서들이 잘 짜여져 있거든요. 중간에 등장하는 다이조 할아버지의 과거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도 짤막한 하나의 추리호러물로 보아도 손색없는 완성도의 작품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미치오"라는 주인공 소년 및 주변인물에 대한 설정은 설득력이 떨어져서 아쉬웠어요. 먼저 미치오부터 이야기하자면, 꼬마아이가 뇌내보정을 통하여 여러가지 곤충이나 동물, 사물과 대화하는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있겠죠. 환생"에 대해 믿는다는 기이한 상상력도 그렇다 치고요.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으로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머리가 좋다라는 것과 이렇게 머리가 좋은 아이가 자신만의 환상세계에 갖혀 산다는 것은 아무래도 모순으로 보였어요.
그리고 주변인물들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의 광증과 아버지의 체념은 너무나 극단적인 설정이었고 담임선생, 다이조 할아버지 등 주요 인물들의 과거와 사연 이야기도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운 내용들이니까요. 물론 저자이름과 주인공 이름이 같고 1인칭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낸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설정은 자전적 소설이 아니라면 소설에 맞춰 정리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무엇보다도 마지막 결말은 이해하기 힘드네요. 왜 미치오가 다이조 할아버지를 직접 살해하면서까지 사건의 진상을 왜곡하려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거든요. 자신이 자살로 내 몬 S에 대한 죄책감? 과연 그것이 할아버지를 살해할 정도로, 그리고 다이키치까지 죽어가면서 실행했어야 할 큰 짐이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아울러 경찰이 백엽상에서의 격투 흔적과 살해된 시체의 상태를 보고도 자살로 판단했을 것이라는 결말은 무책임한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마지막 미치오의 각성과 방화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도 뜬금없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미치오 가족에 대한 극단적 설정이 없었다면 그냥 잘 마무리할 수 있었을텐데 이래서야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구나 싶기도 합니다.

주위 분들이 추천하실만한 재미있는 작품이기는 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세련되고 잘 짜여진 구성이 마음에 들고요. 그러나 환상소설처럼 짜맞추려는 의도가 지나쳐서 오히려 작위적으로 보이는 부분과 극단적인 몇몇 설정들, 그리고 작품 전체적으로 풍기는 음울한 분위기는 취향이 아니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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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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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 경음악부 '알코올중독분과회'의 멤버로 술을 좋아해서 친하게 된 대학 동창들이 오랫만에 동창 중 한명인 안도의 가족이 운영하던 초고급 펜션에서 동창회를 갖는다. 그리고 저녁식사 직전 동창회의 리더이기도 한 후시미 료스케는 후배 니이야마를 죽이고 완벽한 밀실 살인을 만들어낸다. 저녁식사 이후까지 모두들 니이야마가 피곤하여 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서히 의심이 쌓여가고, 후배인 우스이 유카가 합리적인 추리를 통해 서서히 범행을 재현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네이버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 카페에서 뽑은 2009년 미스터리"에서 17위를 차지한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가는 예전에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라는 작품에서 너무 실망이 컸기에 다시 작품을 구해볼 생각은 없었는데 블로그 지인이신 kisnelis님 의 평도 좋고 마침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두가지 특이한 포인트가 있는데 첫번째는 주인공 후시미가 완벽한 밀실 트릭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도서추리물이면서도, 뒷부분에서 밝혀지는 이유 때문에 후시미의 시간까지 꽉 짜여진 계획에 따라 밀실의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완벽한 밀실 트릭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곧바로 밝혀지면 안되는 상황을 일정시간동안 - 10시간 동안 - 유지해야만 하는거죠.
그리고 두번째는 이 시간 동안 밀실을 앞에 두고 - 제목 그대로 문이 아직 닫혀있는 동안 - 탐정역의 유카와 후시미가 불꽃튀는 두뇌대결을 펼쳐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카는 "현상"을 지속적으로 추리하며 방 안과 니이야마의 상태를 추리하고 후시미는 이러한 추리를 다른 쪽으로 돌리면서 첫번째의 - "밀실 상태를 일정시간 유지해야 하는" 이유때문에 - 자신이 생각한 방향으로 여론을 돌리려 노력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도서 추리물에서 탐정과 범인이 두뇌싸움을 벌이는 작품이야 많이 있겠지만 이 작품처럼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벌이는 배틀은 많이 접해보지 못해서 굉장히 신선했어요. 추리 배틀 자체로도 완성도가 높고 탐정과 범인의 지력이 동일한 수준이라 서로 펀치를 주고받는 과정도 흥미진진했고요. 주로 유카가 먼저 펀치를 날리는 식인데 예를 들어 방을 밀실로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도어스토퍼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창 밖으로 내부를 확인할 수 없는지? 하는 식으로 합리적이면서도 이야기 전개에 합당하게끔 단계별로 펀치를 날려줍니다. 앞부분의 여러가지 단서들, 위스키 병이라던가 니이야마의 시력 등 단서를 공정하게 전해주기 때문에 독자도 같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말이죠. 이런 부분은 "마사토끼"의 만화가 연상되기도 했어요. 또 유카와 다른 동창생들의 추리와 발언으로 촉발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따르는 서스펜스도 제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이전 작품과 동일하게 "동기"부분에서의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더군요. 이 작품에서의 동기를 요새 트렌드로 바꿔서 소개한다면 "몸을 막 굴려서 부상위험이 있는 선수가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어 팀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위해 그 선수를 죽인다"는 것하고 똑같은 이야기거든요. 이래서야 책 뒤 해설에서 작가 미쓰하라 유리의 변호가 있긴 하지만 쉽사리 납득하기는 어렵죠.
그리고 우연, 그리고 운에 의한 전개가 많다는 것도 거슬립니다. 니이야마의 약에 의한 수면상태가 대표적일테고 다른 동창생들의 심리가 후시미가 원하는대로 흘러간다는 것도 너무 운이 따르는 억지가 아니었나 싶네요. 작중에서 작가 스스로 해명해놓기는 했지만 몇가지 우연과 운에 의지하느니 차라리 책 뒤 해설에서처럼 "심야"에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높았을 것으로 생각되네요. 물론 그렇다면 소설로서 성립은 쉽지 않았겠지만요.

정통 본격 추리소설다운 맛이 잘 살아있어서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고 번역도 좋았으며 책도 이쁘게 나와서 마음에 들지만 추리소설로서 단점도 명확하다 생각되어 별점은 3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시모치 아사미라는 작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수확이었어요. 앞으로 작품 한두개 가지고 작가에 대해 선입견은 가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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