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문도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시공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기대하고 또 기대했던 "옥문도"의 정식 번역판입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국내에는 "김전일"에서 할아버지로 잘 알려진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이죠. 동서에서 "혼진 살인사건"이 이미 출간되었긴 하지만 "혼진"의 경우는 트릭이 너무 일본적이고 동기면에서 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했으며 지루한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재미와 전개면에서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외딴섬 "옥문도"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연쇄살인의 배후에 있는 섬을 지배하는 가문 (국내 영화 "혈의 누"도 거의 동일한 설정이었죠) 같이 음울하면서도 굉장히 폐쇄적인 이질적 공간을 무대로 한 것과 고르고의 세자매라 칭해지는 세자매, 그리고 자매들의 아버지인 광인인 요사마츠같은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등장함으로써 동시대의 라이벌이었던 에도가와 란포의 변격물적인 분위기를 어느정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란포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분위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지만 이 작품에서는 일종의 동기와 트릭에 연관된 장치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차이점이겠지만요. 또 이야기에서 이러한 인물들이 비교적 합리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극 구성에서 효과적으로 배치되어 이야기가 진행됨으로써 몰입도를 높이고 재미를 배가시키는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일본의 본격물로 명성있는 작품답게 추리적인 요소도 뛰어난 편입니다. 연쇄살인극이 펼쳐지는 와중에서 각각의 사건의 트릭이 수준이 상당하거든요. 보통 엽기적인 범죄의 경우 그러한 엽기적 연출의 타당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많은 작품들이 실패하고는 하는데 이 작품은 상황과 트릭이 잘 맞물리는 괜찮은 트릭으로 보여집니다. 그 중에서도 첫번째, 두번째 사건에서의 알리바이 공작 트릭이 빼어나다고 생각되며 세번째 사건 같은 경우에는 예상 가능한, 약간은 뻔한 트릭이었지만 범인을 특정하는데 있어서 장소의 특이성을 이용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상황 설정이 뛰어나다고 생각되네요. 독자와의 승부도 굉장히 공평한 편이라 가장 중요한 단서를 앞머리에서 부터 설명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서 중요 단서와 상황에 대한 묘사를 디테일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탐정인 긴다이치 코스케와 동일 선상에서 두뇌게임을 하게 하는 본격물로서의 미덕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연에 의지한 부분이 있으며 세밀하지 않은 트릭에서의 약점은 분명히 존재하며 중요한 단서가 지극히 일본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 부분, 또한 동기 역시 소설에서 칭하듯 "너무나 봉건적인" 일본 특유의 상황에 기인하는 것은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 공감을 얻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긴다이치 코스케와 범인과의 한판 대결로 압축되는 결말 부분은 죽어야 할 모든 인물들이 죽은 이후에 범인을 밝내는 뒷북 성격이 강해 역시나 김전일의 할아버지 답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개인적으로 살인범이지만 악하지만은 않은, 나름의 소신과 신념으로 범행을 계획하고 진행해 나간,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하는 범인역이 킨다이치 코스케보다도 더 마음에 들었는데 범인 역시 자신이 진행한 모든 범행이 "헛수고"라는 사실을 알게되는 막판의 작은 반전과 그에 따라 너무나 급격하게 무너져 버리는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몇몇 부분에서는 묘사와 설명이 너무 장황해서 지루함을 느끼게 하며 중요 단서마다 꼭 토를 다는 방식 같이 세월을 느끼게 하는 요소 역시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지만 이런 것은 아무래도 너무 오래전에 발표된 소설인 탓이겠죠.

하지만 이러한 단점은 굉장히 사소한 부분으로 일본의 본격물의 풍취를 느끼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내용 전개와 기본 설정부터 지극히 일본적인 요소가 강해서 번역에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예상되지만 번역도 깔끔하고 특히 일본 속담이나 여러 인용되는 인물과 고사들을 각주 처리하는 등의 배려도 좋더군요. 책 자체도 최근 출간된 추리소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이즈와 디자인으로 폼나게 출간되어 고맙기만 할 뿐입니다. 부디 많이 팔려서 앞으로 시리즈가 간행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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