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거미 클럽 동서 미스터리 북스 9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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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아시모프의 추리 단편집입니다. 원래 아시모프의 추리물이라는 이유 외에도 1. 단편집을 좋아해서, 2. 대부분 EQMM의 연재작 모음답게 정통 추리물에 가까울것이라는 기대, 3. 마지막으로 각각 다른 여러가지 이야기들에서 작가의 다양하고 깊이있는 경력이 빛을 발하리라 생각... 해서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저한테는 절반정도 성공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일단 변호사와 암호전문가, 작가, 화가, 수학자, 화학자 등으로 이루어진 클럽 멤버들의 다채로운 경력과 더불어 그들이 펼치는 여러가지 재담들은 재미를 떠나서 작가의 그야말로 엄청난 깊이의 지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세익스피어에 대한 토론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될 정도죠. 암호전문가를 등장시킨것도 기발한 설정이라 생각합니다. 이야기의 가장 기본적인 설정인 '회원은 각각 한달에 한번 돌아가면서 손님을 초대할 수 있다'라는 설정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만큼 사건역시 다양하게, 이론적으로는 무한하게.. 펼쳐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작가에게 매력적이었을것 같습니다.

탐정역인 급사 헨리가 첫번째 단편 '회심의 미소'에서 굉장히 인상적으로 등장하여 단편집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맥락을 깨지않고 한결된 톤으로 사건을 정리하는 스타일도 마음에 듭니다. 역시 장편 및 이런저런 저술로 단련된 작가가 단편집으로 묶였을때까지 염두에 두고 작품을 서술한 만큼 그러한 개연성은 특히 돋보이네요. 작가가 각 단편 끝머리에 덧붙인 글들도 사족이라기 보다 단편의 재미를 늘리고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유머스러운 장치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만이라면 일단 첫번째로.. 이야기에 몰입하는 재미가 부족합니다. 범죄가 너무 작은 탓도 있지만 저는 그것보다 너무 곁가지적인 이야기로 스토리에 살을 붙여 나가는 작가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상한 생략'편 등에서의 탐정역인 급사 헨리의 이야기가 나올때까지의 현학적이고도 지루한 토론들은 그야말로 작가의 자기 과시로밖에 보이지 않거든요. 에코나 레베르테의 장편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스토리와 연관된 추리로서 기능한다기 보다 그야말로 하나의 단서에 대한 방대한 사실만을 나열하여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야하는 이러한 장치들이 결과적으로는 이야기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조금 단서가 빈약한것이 큽니다. '일요일 아침 일찍'같은 단편은 트릭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개연성이 조금 깨져버린것 같기도 하고요. 아시모프 본인도 '나는 추리소설을 쓰고있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저술한 것은 아니니만큼 (그정도의 권위가 있던 작가라 생각합니다) 추론적인 한계가 보인는것은 어쩔 수 없겠죠. '뚜렷한 요소'편에서의 셜록홈즈의 방식에 도전하는 기막히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상당히 타당성 있는 논리 정도가 한계수준인 듯 합니다. (물론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상당히 뛰어나지만요)

그래서 저는 너무 추리물적인 요소보다는 스토리가 진행되며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는 자연스러운 구조의 '브로드웨이의 자장가'같은 이야기가 더 좋았습니다. '화요일 클럽의 살인'과 그 설정적인 유사함으로 많이 비교가 되긴 하지만 추리물로서의 가치와 재미는 역시 크리스티 여사를 따라갈 수 없군요. 하지만 이 단편집도 그 재미와 특이성에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만큼 12편이라는 단편의 모음 치고 조금은 비싼 가격이지만 후회없는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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