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11월의 인사

11월입니다.
"올해도 두 달 남았군요. 열심히 삽시다." 란 인사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는 달입니다. 살아온 대로 살아가자니 아쉬움이 많고, 갑자기 새롭게 살 수도 없는 그런 달이 11월 같습니다. 12월만 되더라도 어느 정도는 지난 1년을 포기할 수도, 자위할 수도 있는데 11월은 아직 남은 한 달이 있기에 각오를 새롭게 하기에는 너무 늦은 듯 보이고, 갑자기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자니 너무 늦은 감이 있어서 공연히 궁리만 많아지는 달 같습니다.

인간은 우화의 교훈처럼 살 수 없기에 대신 우화에 나오는 짐승들처럼 사는 모양입니다. 너구리처럼, 여우처럼, 곰처럼 살아가는 거겠죠. 항온동물인 우리들은 파충류들을 냉혈동물로, 냉혹한 사냥꾼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파충류는 먹이 사냥에 있어서도 그렇고, 생활이란 면에서도 인간을 비롯한 항온동물에 비해 적은 먹이로 살아갈 수 있고, 그렇기에 보다 적은 사냥을 합니다. 한 번 먹이를 먹은 뒤엔 뱃속에서 소화를 시키는 서너달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더군요. 항온동물들은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반복해서 무언가를 먹어야 하고, 무언가를 먹기 위해 열심히 활동해야 하고, 열심히 활동하므로 또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다시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생태계 차원에서 보자면 가장 에너지 소모가 극심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포유류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많은 식량을 안식처에 비축해두는 방식으로 납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처럼 말이죠. 종종 인간이 따뜻한 피를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일들은 단순히 보다 많은 먹이를 비축해두는 습성 이상의 잔인함으로 드러나곤 합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남성은 여성을, 비장애자는 장애자를, 내국인은 외국인을,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삶의 겨울 동안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고 하기엔 때로 너무 극심하지요.

어떤 항온동물들은 겨울 동안 겨울잠을 잡니다. 저는 인간도 그렇게 서너달 겨울잠을 잔다면 어떨까? 상상해보곤 합니다. 겨울잠을 자는 짐승들이라고 잠만 자는 건 아니겠지만, 먹을 것이 풍성한 가을 동안 열심히 놀고 먹고 다가오는 긴긴 겨울밤의 깊은 잠에 대비해서 모두가 가을엔 축제를 벌이고, 그렇게 한숨 자고 나면 어느새 봄이 오고, 지난 한 해의 어려움, 괴로움을 모두 그 깊은 겨울잠을 통해 치유하고, 상처에 새살 돗듯 하면 좋겠습니다. 만약 인간이 겨울잠을 자는 어떤 동물들처럼 겨울 동안 깊은 잠을 잔다면, 1년 365일 가운데 3개월만이라도 그렇게 활동하지 않고, 남들을 괴롭히지 않고, 자연을 못살게 굴지 않을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조금 남다를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그리 할 수 없으니 지난 봄, 여름, 가으내 곪아버린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올해도 두 달 남았습니다. 겨울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들은 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것입니다. 겨울 동안 먹을 식량을 비축하기 위해 쉼없이 들판을 헤맬 필요는 없겠으나 대신 우리들은 난방을 해야하고, 한 해 마무리한 답시고 또 많은 돈을 지출하겠지요. 언젠가 석유가 없어지는 날이 오면 우리들은 그 긴 겨울밤을 어찌 살아갈까 하는 기우아닌 기우도 해봅니다만, 11월을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까지 살피는 달로 만들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이 지나보낸 지난 10개월의 흔적들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죠.

남은 두 달을 알차고, 평화롭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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