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꽃나무

                                                      도종환
꽃 피던 짧은 날들은 가고
나무는 다시 평범한 빛깔로
돌아와 있다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들과
나란히 서서
나무는 다시 똑같은 초록이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아도
꽃나무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된다
그렇게 함께 서서
비로소 여럿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고
마을 뒷산으로 이어져
숲을 이룬다
꽃 피던 날들은 짧았지만
꽃 진 뒤의 날들은 오래도록
푸르고 깊다
                          <슬픔의 뿌리>

그렇군. 꽃피는 시절은 기껏해야 나무의 일년에서 몇 일일까? 손에 꼽을 정도의 나무도 있고, 몇달을 쉼없이 피는 나무도 있다. 대부분의 나무는 보름 안쪽의 기간 동안만 꽃을 피운다. 그리고 꽃잎을 날린다. 그 동안에 벌이며 나비들이 모여들어서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는다. 나무는 푸른 잎을 달고 몇 달을 난다. 그 시절도 끝나면 잎을 떨어뜨리고 열매도 떨어뜨린다. 곧 겨울이 닥친다. 잎지는 나무들은 온통 잎을 떨어뜨린채 벌거벗은 겨울나무로 추운 시절을 지낸다. 나무처럼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꽃피는 날들은 짦고, 초록의 시절은 긴' 것이 인간의 삶이다. 문득 생각한 것은 주역에 나온다는 '삼현일장(三現一藏)'이라는 문구다. 자연의 원리는 셋은 나타내고, 하나는 감춘다는 것인데, 인간의 삶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종환의 이 시도 입에 맴도는 시구가 있다. 꽃 진 뒤의 날들은 오래도록 푸르고 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