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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김애란. 어느 주간지에서 <88만원> 세대와 함께 소개된 기사에서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책을 보기도 전에 1980년생이라는 작가의 프로필에서 나랑 동갑이라는 이유로 내 안에서 미묘한 감정이 교차함을 느꼈다. 내가 본 처음의 80년대생 작가였고,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벌써 두 번째 책을 출간한 문단에서도 꽤 인정을 받는 문단계의 여동생이었다. 나도 모르는 미묘한 질투심이 일었다. 그녀가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뤄가는 동안 나는 과연 무엇을 이뤘는가?를 생각하다가 괜히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그런 알 수 없는 적의와 동시에 그녀의 이야기가 사뭇 궁금해졌다.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나서 같은 해에 대학에 입학했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눈높이의 우리 20대의 자화상이 어떤 모습일까?
8편의 단편들은 술술 잘 읽혔다. 주인공들 참 하나같이 지지리 궁상이다. 백수 아니면 고시생, 아니면 비정규직 노동자. 나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옵니버스 드라마의 주인공들 같이 소설 속의 어느 장소에서 시간 속에서 교차할 것만 같았다. 지하철에서 신촌에서 신림에서 노량진에서.
내 나이 28살. 그들과 비슷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비슷한 경험들을 했고,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왔다. 이제껏 읽었던 그 어느 소설에서도 내가 겪었던 사소한 경험들을 디테일하게 만날 수 없었다. <도도한 생활>에서 피아노라는 물건과 서울의 지하 셋방이라는 장소, <침이 고인다>에서 동거녀에 대한 심경의 변화, <성탄 특선>에서의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수 있는 작은 공간. 함께 경험을 공유한 것 같은 착각이 들 뻔했다. 엄밀히 얘기하면 그것은 일종의 추억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과거의 내 모습이 아니라 현재의 내 모습이라면 나는 책을 중간에 덮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볼때마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사건들이 일어나면 채널을 돌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내 그들에게서 연민을 느꼈다. 내 주위에 아직까지 힘들게 고시과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 생각에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그들이 열심히 노력을 해서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화이팅이라고 외쳐주고 싶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하고,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할 같은 세대라고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과 엄격한 경계선을 긋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부모 등골 휘게 하는 백수도, 고시생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아니기에 나는 니들과 다르다라고 말이다. 이건 온전히 니들 개인의 문제이다라고 치부해버렸다. 그래서 나는 현재 내가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할 수 밖에 없다? 라는 내가 생각해도 참 인정머리없고 야박하기 그지 없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은 후에 <88만원 세대>를 읽고, 20대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해버렸던 문제들을 우리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세대 내의 갈등과 세대 간의 갈등의 관점을 통해 나와 너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누가 내 밥그릇 뺏어갈까봐 겁이 나고, 또 결혼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얻어 싶어하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불안한 존재이다. 장밋빛 미래가 약속된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앞이 보이지 않는 오리무중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이 소설에서는 그것에 대한 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우선 그것만으로 만족하자.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이므로. 문제를 알았다고 해서 해결책이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모두 실행 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지만 그저 목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세대로 낙인 찍히는 것은 억울하지 않은가.
"어려운 문제일수록 '내가 그것을 충분히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어떤 시기' 뒤로 미루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후, 지금 고민하지 않는 문제는 나중에도 고민하지 않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잡지 기사의 그녀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어렵다고 자꾸 피하고 미루다보면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내가 지금 당장 바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우선 잔뜩 움추린 어깨부터 활짝 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