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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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 AG건축기행 1, 옛절에서 만나는 건축과 역사 ㅣ 김봉렬 교수와 찾아가는 옛절 기행 2
김봉렬 글, 관조스님 사진 / 안그라픽스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몇 년간의 여행 사진을 보니 그 동안 찾은 많은 곳들 중에 유독 사찰들이 많다. 언제 그렇게 많이 다녔나 싶은데, 언제부턴가 여행 계획을 짤때면 으레 가보고 싶은 사찰들이 후보지로 오른다. 이건 순전히 내 남동생의 영향이다. 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사회과부도책과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책을 너덜너덜할 정도로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아이였다. 자기는 꼭 고고학과에 진학할 거라고 하도 엄포를 놔서 배고픈 전공을 왜 하려하냐는 우리 아빠 속을 조금 태우게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전공을 택해 다른 길을 가고 있고, 그 때 그 열정은 조금 사그라들었지만 매번 남동생이 짠 가족여행 계획표엔 문화 유산 답사가 주를 이루었다. 우리나라 문화 유산의 많은 부분이 불교 문화에서 잉태되었고, 불교 문화의 꽃을 피운 곳이 바로 수많은 절이었으니 그 동안 전국에 꽤 많은 절을 가보았다. 맨날 똑같은 절에는 왜 가는건지 불만 가득해가지고 절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계곡물에 발담그고 동생 나오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 땐 왜 그리 무심했는지 지나고보니 아쉬운 점이 많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이후 내 스스로 여행을 계획하고부터 나도 모르게 단순한 놀거리, 볼거리보다는 문화 유적지를 찾게 되었고, 그것이 주는 아니더라도 근처에 절 한 군데쯤은 돌아보고 오게 되었다.
나는 불교신자도 아니고, 불교문화나 불교건축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다. 스님의 목탁소리, 불경 외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 불전 앞에 향냄새. 참 고요하고 평화롭다.
이 책은, 소개한 절들의 연혁을 소개하지도, 전체 건축을 설명하지도, 어떻게 찾아가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몇 개의 건축적 장면들에 숨어있는 얘기를 사진과 함께 끄집어내어 우리를 그 곳으로 안내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지금껏 많은 절들을 가보았고, 여기 책에 소개된 절 여러군데를 다녀왔지만 그 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책을 보며 배워간다. 그리고 자신만의 풍경과 느낌들을 더해간다.
눈이 내리던 겨울날 전나무 숲길을 지나 만난 소박했던 내소사.
하늘이 파란 청명한 가을날 자연을 그대로 품은 부석사.
태풍이 오던 여름날 문이 없는 해우소에서 자유인이 되었던 선암사.
책장 한 켠에 이 책을 바라보면 마음이 참 푸근해진다. 급하게 읽지 않아도 된다. 순서를 바꿔서 읽어도 상관없다. 어느날 어떤 절을 다녀와서 읽어도 좋고, 이 책을 읽고 훌쩍 그 곳으로 떠나도 좋다. 여러번 읽어도 매번 그 느낌이 다르다. 오늘은 갑자기 해질녁의 선암사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