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작은 인생은 어린이집에서 시작된다 - 전직 어린이집 교사가 작정하고 털어놓은 아이들의 숨겨진 사생활
최경애 지음 / 포북(for book)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2013년 7월 4일은 우리 아이의 27개월째 인생이 막 시작되던 때,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간 날이다. 사실 그간 나는 어린이집에 대한 불신이 컸다. 또 36개월 미만의 영아의 경우, 어린이집은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아이들만 이용해야 할 최후의 보루였다. 이를테면, 맞벌이 부부라거나 아이를 종일 돌볼 수 없는 건강상의 문제가 생긴 경우라거나. 난 오래전부터 '절대 36개월 이전에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겠노라' 했었다. 그런데 내 아이가 지금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첫째가 18개월이 되던 때, 나는 둘째를 가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임신초기라 좀 피곤하기는 했지만 나의 육체적 고단함으로 인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거나 내 손을 벗어난 곳에 잠시라도 둘 생각 따위는 하지 못했다. 그런데 첫째가 두돌이 지나고 나는 드디어 위기에 봉착했다. 임신으로 인한 신체의 변화 뿐만 아니라 그 시기 아이의 발달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주기에 힘겨워지기 시작했고 그 모든 욕구를 즉각 채워주기에 몹시 힘에 부쳤다. "혼자 좀 하면 안될까?", "엄마, 누워서 보고 있을게. 그래도 되지?", "잠깐만 기다려줘", "밖에를 또 나가자고?", "놀고나서는 바로 바로 치우면 안되니?", "이것만 다하고 놀아줄게", "조금만 쉴게" 이렇듯, 아이의 욕구는 보류되고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머물고 있을 뿐, 아이는 즐겁고 신나지 않았다. 나 역시 가사를 하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아이와 놀아주었지만 즐겁고 신나지 않았다. 그저 쉬고 싶었다. 졸음이 올 때 자고 싶고, 집안이 더러운 꼴을 못보겠으며 입덧은 오래토록 나를 괴롭혔다. 나는 아이가 두 돌전까지는 '육아는 내 취미'라 할 만큼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즐거웠던데 둘째를 갖고나서 부터는 내 몸 힘든데 장사가 없었다. 점점 아이에게 짜증이 늘어갔고 아이도 울거나 떼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도 내 고집은 완강했다. '그래도 절대 36개월 이전에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을테야. 부모만한 타인은 절대 있을 수가 없어. 이 고행의 시간이 보람이 될 날이 올거야, 참자' 하루 하루 참으며 도를 닦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수연 박사의 글을 읽었다. '생후 36개월 이전엔 엄마가 양육하라는 말은 체력적으로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아이의 욕구에 예민하고 감정적인 변화를 많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주 양육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니, 이건 무슨 소리지? 내가 알던 모든 육아 상식에서는 36개월 이전까지는 무조건 엄마가 키우라던데?' 그러면서 체력적으로 아이의 욕구에 기민하게 받아들여 줄 수 없고 감정기복이 심해진 임신이라는 기간에 나와 아이가 한 공간에서 지지고 볶고 하며 36개월을 채운들 이 기간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건 서로에게 좋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어린이집을 가는 것이 아이에게 나을까?'

 

  오랜 고민 끝에 결정이 섰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그래, 활동적이고 충분히 놀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어린이집은 맘껏 놀 수 있기도 할 것이고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새로운 관계는 나바라기인 아이에게 좀 더 여유를 갖게 할 거야. 또 나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 반찬도 만들고 집안 정리도 하고 그러고나서 잘 놀다온 아이를 몸과 마음으로 환영해주면 이게 더 좋을지도 몰라. 둘째가 태어나고 보내느니 보내려고 한다면 지금 보내는 것이 더 좋을거야' 몇 군데 어린이집을 방문해 보았는데 나는 줄곧 '사람'만 보겠노라 했다. 교사, 원장님. '나도 내 아이 돌보기가 힘겨워 어린이집에 도움을 받기로 한건데 피 한방울 안 섞인 교사들은 어떨까? 혹여 아이를 미워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가득했다. 매스컴에서 연일 보도되는 내용만 봐도 아이들을 무자비 하게 대하는 교사의 모습만이 보였다(물론 그는 일부겠지만). 그런데 세 번째 방문한 원에서 원장님과 선생님을 뵙는 순간, '아, 여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상담을 갔던 첫 날 아이는 교실에서 선생님과 짧은 시간을 지내며 즐거워 했다. 다른 곳은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곳은 간다는 것이었다. 그길로 등록을 하고 그 다음날부터 아이를 보냈다.

 

  '울고 야단이 나겠지?', '다들 적응기간에는 눈물콧물 흘린다는데.... 마음 강하게 먹자' 그런데 아이는 생각보다 잘 갔고 등원길에 우는 일은 없었다. 물론 활동을 하며 중간중간 엄마 생각이 나서 우는 일이 있다고. 그러나 사람이 참 그런 것이 내 눈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의외로 견딜만했다. 그리고 아이는 곧 어린이집을 즐거워 했고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점심식사를 하고 귀가를 했고 그 다음주부터는 낮잠을 자고 하원을 했다. 선생님께서도 아이가 잘 적응중이라고 하였고 내가 보았을 때도 그랬다.

 

  사실 어린이집을 보내고 나는 천국이 열리는 것 같았다. 아이를 내게서 떼놓고 혼자 있는 시간이 즐거워 천국이라는 것이 아니라 귀가 후 아이와 나의 생활이 천국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기다려 달라'거나 '혼자 놀라'거나 '좀 쉬자'는 말은 하지 않게 되었다. 반찬을 정성껏 만들 시간도 있었고 집안을 깨끗이 정리정돈할 시간도 주어졌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동안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기에 나는 아이의 기다림과 인내와 포기를 요구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이집 하원 후에는 오로지 이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아, 어린이집이 그렇게 못 보낼 곳은 아니구나' 물론 아이를 학대하는 곳이나 원아를 돈으로만 여기는 기관은 절대 필요악이겠지만 '아이가 즐거워하고 온정적인 교사가 있는 곳이라면 엄마와의 24시간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초보 학부모의 생활이 시작된 찰나, 이 책을 발견했다. (오늘은 서두가 굉장히 길었다. 그래도 뭐 너무 뭐라하지 말기를. 책을 읽고 그에 얽힌 내 이야기나 떠오르는 것들을 구구절절 끼적이는 것이, 이런 난잡한 서평이 내 스타일이니까. 후훗) 정말 꼭 읽고 싶은 책이었다. 간혹 아이의 식사 모습이나 활동사진을 볼 수 있었지만, 뭘 하며 지내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고, 전직 어린이집 교사라는 저자가 들려줄 이야기가 몹시 궁금했다. 전직 어린이집 교사가 '작정하고 털어놓는' 아이의 숨겨진 사생활, 아이 몸에 몰래카메라 한 대 숨겨서 보내고 싶은 심정이예요, 지금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 책 표지에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구들이 그득했다. 그래, 이 책이야. 이 책을 봐야겠어.

 

  그렇게 이 책을 펼쳤다. 그런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조금 실망했다. 나는 어린이집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가 담겨있길 기대했고 책의 표지에서처럼 도발적이거나 은밀한 어떤 내용이 있기를 원했다. 이를테면, 어린이집 교사가 들려주는 아이의 등원 거부나 부적응에 대한 부모의 조력에 대한 팁들, 월령 및 연령별 영아들에게 적합한 어린이집의 형태 안내, 또래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경우 부모의 처신, 어린이집 교사들이 좋아하는 간식, 견학이나 나들이시 아이들에게 좋은 간식과 포장 방법 등등.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그런 부분에 대한 코칭이 담겨있길 기대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이들의 순수함과 아이다움 그리고 그것을 지켜주고 살려주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 한 교사의 리포트일 뿐이었다. 또 대상 유아들의 연령이 어린이집 뿐 아니라 유치원에 다닐 수도 있는 연령의 큰 아이들이라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막 보내며 불안해하고 염려가 가득한 엄마들을 겨냥한 책은 아니었다. 그냥 '우리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이렇게 지내고 있구나' 하고 이해가 필요하거나 '즐겁게 지내는구나', '이 분 좋은 선생님이시네' 정도를 느끼게 할 내용들이었다. 엄마를 떨어져 낮잠을 자야하고 어린이집 생활을 조리있게 부모에게 전달하고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시기의 그런 어린 영아들의 모습이 담겨있질 않아 아쉬웠다. 이 책의 표제인 '어린이집'에 설사 '유치원'을 넣는다 하더라도 들어맞는다. 이건 어쩌면 어린이집이라는 기관의 특수성(유치원과 수용 연령의 교집합 공간이 없는 어린 영아를 보육하는 국가수준의 유아교육기관이라는) 을 잘 살리지 못한 내용이라는 다른 의미도 된다.

 

  아니, 표지에서 말하던 다소 도발적인 당돌함은 어디 간거지? 아이와 행복하고 교사와 즐겁고 그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어린이집이라는 공간의 모습은 너무 포근하게 그려졌지만, 이 곳은 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아니고, 이 교사는 내 아이의 교사가 아니다. 그냥 어깨너머 바라보는 한 어린이집 교사의 즐거운 수기와 같았다. 그리고 'Worst 엄마 & Best 엄마', 'Worst 교사 & Best 교사' 의 순위에 나열된 대상들의 특성은 진부하고 식상했다. 굳이 어린이집 교사의 말을 빌어 듣지 않아도 누구나가 다 짐작할 수 있을만한 특성들이었다. 그럴 것이라면 좀 더 객관적으로 몇 백명 정도의 교사와 엄마들에게 설문조사를 통해 Worst와 Best를 각각 뽑아보고 항목별 %를 명시했다면? 그렇지 않다면 좀 더 은밀하고 좀 더 녹록한 관찰이 녹아 있고 '어머', '아' 하는 감탄이나 놀람을 연발할 수 있는 참신한 내용일 수는 없었을까? 예를 들면, Worst 엄마는 아이는 늘 이도 닦지 않고 눈꼽 낀 얼굴로 등원하는데 모델 뺨치는 엄마, 항상 공주처럼 드레스에 치마에 요란한 장신구를 채워 보내는 엄마, 내 아이 외출때 발라달라며 선크림을 챙겨 보내는 엄마, 도시락통이나 수저 씻는 걸 자주 잊는 엄마.... Worst 교사는 생활기록수첩에 획일적인 내용만을 적는 교사, 아이가 다친 것을 모르는 교사, 늘 미니스커트만 입는 교사 등. Best는 뭐 요기까지만 하도록 하고. 

 

  간혹 내 서평은 책을 다시 쓰거나 컨셉을 다시 잡아보는 등 무례한 짓을 저자에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은 나만의 사고의 확장의 방법이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나의 삐딱함과 집요함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마냥 '좋다' 라는 생각만 들 수는 없는 것이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독자도 있고 엄지를 내리까는 독자도 있다. 그저 저자와 출판관계자 분들은 실망스런 독자의 반응에는 '이런 독자도 있고 저런 독자도 있지. 세상은 참으로 다양해. 난 그 다양한 인간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어. 그러고 싶지도 않고~' 하며 다소 방관적이고 거만한 자세로 내 서평을 대해주면 참 좋겠다. 물론 이 책에 관심을 갖는 또다른 예비독자들 역시 마찬가지. '아, 이 책 별로인가봐? 그럼 난 안 볼래' 가 아니라 '넌 그렇게 생각했어? 그럼 나도 한 번 보지. 보고나서 니 생각에 동의할 수 있는지 없는지 내가 판단해보지 뭐. 내가 니 말만 듣겠니?' 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오늘 서평은 참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건 나도 안다구.)

 

  어찌되었건, 이 책에 녹아있는 아이의 순수함과 예쁜 미소,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교사의 따뜻한 시선과 행복함이 물씬 묻어나서 읽는 동안 흐뭇했다. 내가 기대(아, 나는 소위 말하는 기자 고발, 시사 르포. 이런 도발적이고 충격적인걸 기대했나봐;; 강한 자극에 찌들어 있는 내 피곤한 영혼의 반증이지 뭐. 쩝)한 책의 의도와는 다른 듯 했지만 즐겁게 읽었다. 또 디자인을 전공한 교사답게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감성적이고 저자의 감각이 느껴졌다. 끝으로,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아이도 앞으로 이런 교사를 만나게 되어 맘껏 행복한 어린이집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지금도 꽃잎반 교실에서 친구들과 선생님과 사랑나누고 있을 미소가득한 내 아이를 기대하며 난잡한 서평은 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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