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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 -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
이창용 외 지음 / 황금물고기 / 2011년 9월
평점 :
'사람들은 스토리에 열광한다.' 가깝게는 내 남편이 했던 말이고 멀게는 여러 사람들이 한 말이다. 절대 동의한다. 누구나 이야기에 매혹된다. 그 이야기가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당신은 아니라고? 당신 또한 스토리에 움직인다는 사실을 증명해보겠다. 불우한 이웃들의 사연들을 보고 그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적이 있는가? SBS의 '강심장' 에 출연한 연예인의 이야기에 집중해 본 일이 있는가? 노래가사가 좋아서 좋아하는 곡이 있는가? 어떤 영화를 집중해서 본 일이 있는가? '그렇다' 라는 답변을 적어도 하나 이상은 했을 것이다. 모두 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이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이것들이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냐고?
흔히 '이야기'라고 하면 어떤 정형화된 스토리를 떠올리기에 십상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이야기를 빼고는 인간과 삶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라고 하면 과할까? 전혀. 이 세상 생명체 중 이야기를 하고 들을 수 있는 생명체는 인간뿐이다. 인간이 이야기 그 자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우리는 이야기에 휩싸여 산다. 당신은 오늘도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며 수없이 많이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이야기에 관한 책이다.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증명함과 동시에 이런 막강 파워를 가진 이야기를 좀 더 매력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 놓은 책이다. 먼저 이 책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탄탄한 구조, 등장인물의 명확한 설정, 반전, 비극, 아이러니의 활용을 꼽았다. 수긍이 갔다. 무엇보다 스토리가 탄탄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익히 들었을 게다. 또 등장인물이 명확해야 하는데 주로 주인공과 대립되는 인물을 제시하여 캐릭터를 서로 강화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이는 쉽게 말해 동화 구연을 생각해보면 쉽다. 우리가 흔히 아는 동화 백설고주를 예로 들어 보자면, 백설공주와 마녀의 목소리는 분명 달라야 하고 또 난장이들과도 분명 달라야 한다. "백설공주가(혹은 마녀가, 난장이가) 말했어요" 라고 하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그 캐릭터를 알아챌 수 있어야 하듯 좋은 스토리 속에서는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캐릭터가 명확하다. 그래야 좀 더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 사람은 누구나 예견되는 뻔한 이야기에는 쉬이 흥미를 잃는다. 의외성을 기대한다. '이럴 줄은 몰랐어' 한 마디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야 끝까지 집중한다. 그리고 비극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에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이야기에는 비극 뿐 아니라 희로애락이(이중 하나의 감정 혹은 복합적인 감정이) 드러나야 한다고 본다. 누구나 비극적인 이야기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쁘거나 분노하게 되거나 슬프거나 즐거움의 감정이 잘 어우러져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러니의 활용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재미있는 이야기의 조건으로 제시된 것들 중 가장 참신한 것 같다. 이것의 의미를 말하면 누구나 수긍하게 되나 이것을 찾아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관객, 청자, 독자만이 알고 있고 등장인물은 모르고 있는 어떤 사실에 관해 이야기 할 때는 '아이구 저러면 안되는데' 하는 등의 소위말해, 전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면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에서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만 아는 상황이 펼쳐진다. 철수가 나무 뒤에서 잠들었는데 철수 엄마가 나타나 연못가에서 철수를 찾으면 어린이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소리를 지른다.(단, 선한 캐릭터에만 동조한다는 아이들의 특성이 있긴 하지만) "나무 뒤에 있어요~!!!" 라고. '아이러니의 활용' 이라는 것은 이같은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의 조건으로 제시된 항목들에 모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단지 누군가에게 재미를 주려고 일부러 지어낸 것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상품을 팔기 위해, 때로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그 모든 것들도 이야기이다. 특히 요즘은 광고에서 이야기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는 상품을 소개하는 데 집중하던 반면 오늘날의 광고중에 더러는 '저게 무슨 광고야?' 하게 될 정도로 상품을 감춘채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있다. 제품의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광고들은 너무나도 많다. 어떤 광고들은 아주 짧은 드라마와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와 영상들로 이야기를 잘 차려입혀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매력적인 이야기에 흠뻑 빠진다. 당장에라도 그 이야기를 안고 싶을 정도로.
이처럼 이야기는 우리 삶에 전부나 다름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단순히 잘 짓는데 도움을 주는 책 이상으로 이 이야기라는 것이 가진 힘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책에서는 좋은 시나리오의 하나로 꼽은 타이타닉이 혹자의 저서에서는 나쁜 영화로 꼽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최근 읽은 톰 스템플의 <좋은 시나리오의 법칙(시공아트, 2011)>이라는 책에서 그러했다. 이런 것을 보면 좋은 이야기는 듣는이(보는이, 읽는이)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이야기의 묘미가 아닐까? 똑같은 것을 모두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사실 말이다.
또 이 책은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에서 펴낸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라인의 책들은 (모두 읽지는 못했지만) 한번 쯤 읽어볼 만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힘'은 방송은 보지 못했는데 책으로만 보았을때는 뭔가 아쉬움이 있다. 이야기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너무 식상했다. 이 이야기라는 것을 그저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의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면 더욱 신선하지 않았을까? 쉽게 말해서 실험 같은 것을 해 보는 것이다. 물론 번뜩 떠오르는 것은 없으나 그저 스토리텔러가 이야기하듯 이야기를 풀어 해석하는 방법 대신 좀 더 참신하고 매력적인 방법을 채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굉장히 크다. (명색이 EBS 다큐잖아. 난 널 믿는다구!! 훗)
큰 아쉬움이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단순 문예창작이 아닌 이야기 자체가 가지는 힘과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발생하는 현상 등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