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문인기행 - 글로써 벗을 모으다
이문구 지음 / 에르디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이문구의 문인기행.  생각할 것도 없이 집었다.  저자뿐 아니라 이문구의 벗된 문인들 역시 대단한(?) 분들이기 때문이었다.  김동리, 신경림, 고  은, 한승원, 염재만, 박용래, 송기숙, 조태일, 임강빈, 강순식, 황석영, 박상륭, 김주영, 조선작, 박용수, 이정환, 이호철, 윤흥길, 박태순, 성기조, 서정주 이상 21인의 문인들과 저자 이문구 선생과의 우정과 그들의 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괴테와 한 시대를 산 사람이고 두번째로 부러운 사람이 전혜린 여사와 벗했던 자들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문호를 벗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 마냥 부럽다.  정말이지 부러워 미치겠다.  그들과 만나면 뻔질나게 책 이야기, 글 이야기를 할 테니 말이다.  밥을 먹어도 시적으로 먹고 똥을 싸도 예술적으로 싸겠지.  만날 이런 이들을 마주하며 사는 일은 삶 자체가 황홀할 것 같다.   

  이 책 역시 그랬다.  이문구 선생과 우리나라 대문호들의 만남과 우정이 몹시 부러웠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딱 맞나 보다.  글쟁이한테는 글쟁이가 얽히고 섥히고 그림쟁이에게는 그림쟁이가 엮이는 법이다.  그들과 먹는 밥은 어떨 것이며 그들과 기울이는 술잔은 또 어떨까?  나는 술을 전혀 못한다.  (전혀라는 말은, 당최 먹고 싶지도 않고 먹어봐야 별 볼 일 없고 먹고 나서도 좋지 않다는 말이다.  아주 궁합이 안 맞다)  그런데 예전 피아노를 곧잘 치고 작곡을 하던 한 아이를 알고 지낸 일이 있는데 그때 그 아이와 처음 같이 마신 술이 소주였는데 왜 그리도 술술 잘 넘어가던지.  유일하게 내 이야기를(당시 쓰고 있던 소설을) 경청해주던 아이였고 쌍둥이처럼 정서가 닮았다며 하이파이브를 치던 아이였다.  소주 이후에는 맥주와 닭을 그리도 먹었는데 그때마다 잘 먹혔다.  글이, 음악이, 예술이 안주였던 것 같다.  지금에도 그런 이야기들과 혼이 사로잡힌 자기만의 열정을 말하는 이와 마주앉아 마신다면 잘 마실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데 어쩌자고 술 이야기를.  아아, 그래.  글에 대해 이야기 할 자들과 함께한다면 내게는 필요악이며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술조차도 아주 벌컥벌컥 들이킬 것 같다.  이 말이 하고 싶었다.     

  고은 선생님의 옥살이 일화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역시 뼛속까지 글쟁이구나 싶었다.  집필행위가 불허된 옥에서 사전에다 긴요한 낱말마다 성냥개비에 인주를 묻혀 찍어두었다니.  그것 마저 금하자 단식투쟁까지 했다니.  필시 숨을 쉬는 심정으로 그 점을 찍었을게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만큼 고된 형벌이 있을까?  글을 쓰고 싶은 그 간절함이 사전속 단어들에 점을 찍는 것으로 대신한 것일게다.  그저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구나.  그렇게 간절히 쓰고 싶은 거구나 싶어 참으로 감동받았다.   

  김동리 선생님의 올곧음과 신경림 선생님의 구수한 농촌아제같은 느낌을 글에서 만나니 이들은 정말 철저한 문인이구나 싶기도 했고 이들 역시 땀내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면전에서 듣고 이들과 면전에서 술과 밥을 나눌(혹은 나누었을) 저자가 왜 이리도 부러운 것인지.  그 자리에 그저 귀동냥하며 앉아만 있어도 얼마나 좋을지. 

  참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었다.  악착같이 글을 쓰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의 인간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들.  땀과 펜 끝으로 치열하게 일구어낸 문학의 그 숭고함에 감동하며 읽었다.  필시 그들은 혈관에도 활자가 흐를게다.  그것들을 생생하게 글로 옮긴 이문구 선생의 글 역시 너무나도 좋았다.  단아하기도 하고 단정하기도 하고 무덤덤하게 써놓았지만 묘하게 향이 나는 글이었다.  그들의 문학과 문학 외적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녹아있다.  읽는 내내 그들 뒤를 쫓아다니며 기웃거리는 파파라치가 된 심정이었다.  이야기는 끝이 났고 책은 덮혔다.  이제 나는 그들을 책 속에서, 그들의 작품 속에서 만나 넌지시 말이나 걸어봐야 겠다.  "저 혹시 선생님을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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