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의 왕국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 창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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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그림책이다.  초경을 시작한 여자아이의 마음을 섬세한 글과 상징적인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책이라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초경을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상징적인 그림으로의 표현이라니 더욱 궁금했다.   

  표지부터 의미 전달이 명확했던 것 같다.  팬티 위에 혈흔과 같은 얼룩이 있고 그 얼룩 위를 꽃으로 수놓았다.  먼저 짚어볼 것은, 이 그림책은 그림책이지만 그 대상은 초경을 시작한 이후의 여자아이들 혹은 여성을 위한 그림책인 듯싶다.  이 책의 삽화는 저자 자신이 그렸다.  그렸다고 표현했지만 오로지 그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콜라주 기법으로 삽화가 꾸며져 있다.  그것들이 모두 디자이너의 예술작품처럼 감각적이고 몽환적이다.  그림책은 그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삽화가 아닌가 싶다.  이 삽화만 보더라도 이 그림책의 대상은 성인이나 초경을 시작한 이후의 여자아이들이 적당할 듯싶었다.  앞서 콜라주 기법으로 삽화를 꾸몄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마치 천조각, 레이스, 낡은 종이 등 삽화에 이용된 재료들의 질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 그림책을 보며 나의 초경 때의 느낌을 생각해보려 애썼다.  나는 당시 내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월경이 시작되며 그것은 팬티에 피가 묻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였다.  그때가 명절이었던가?  아니 방학이었나?  어쨌든 나는 우리 집이 아닌 큰아버지 집에 갔다가 그곳 화장실에서 처음 피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놀라거나 무섭지도 않았고 담담했다.  '아 올 것이 온 거구나.  이게 그 생리라는 것이구나'  엄마에게 말했고 조그마한 패드를 건네받았다.  그때는 아무런 느낌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에 갔는데 그때 한참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의 등에 가로지나가는 선에 민감했고(그들은 대개 여자아이를 등을 두드리며 부르는 척 하며 손바닥에 느껴지는 그 선을 감지했다) 자기네들끼리 "우리 반에서 한 애는 누구누구야", "아냐, 걔는 아직 안 했어" 따위의 말들을 주고받는 것을 자주 들었다.  여자아이들은 그보다 월경에 관심이 많았는데 "너 시작했어?" "배가 살살 아프던데 그렇더라고" "많이 아파? 무섭지 않아?" 라는 이야기들을 종종 주고받았다.  그리고 가정 시간에 2차 성징에 대해 배우며 여자가 생리를 시작하면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뜻이고 어른이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사실, 나는 나의 첫 생리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이제 여자가 된 것이니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 후로 나는 매달 월경을 했다.  때로는 아팠다.(아니 늘 아팠구나.)  때로는 성가셨다.  하지만 이 월경이라는 것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버려 어떤 감회를 느낀다거나 하지 않는 진부한 월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책은 초경의 소중함과 여성성의 소중함을 이야기에 담았다. 

  무엇보다 초경을 그림책에 담는다면 자칫 성교육 동화같이 느껴질 법한데 이 그림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삽화만큼이나 몽환적인 시선으로 초경을 묘사했다.  그렇기에 더욱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초경을 처음 마주했던 때처럼 이것은 나에게 신비로운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다.  아니 이것이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 그림책이.  여자의 삶으로서의 시작을 알려주는 붉은 꽃, 그것은 여자만이 볼 수 있고 피울 수 있는 꽃이다.  그 꽃을 새삼 신비하게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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