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녀석
한차현 지음 / 열림원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나의 1990년대는 어땠던가?  91년도에 대구에서 서울로 전학을 갔고 어떤 아이를 처음으로 좋아go 봤고 그 여름 초경이 시작되었고 그 짝사랑은 96년도까지 지속되다 그해 처음으로 짝사랑했던 이와 전혀 다른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91년도에는 롤러스케이트장을 여러 번 갔었고 92년에는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즐겨 불렀고 그해 그노래를 좋아하는 단짝을 만났고 93년도에 다시 대구로 전학을 갔고.  그해 여름방학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서울 중학교 개학식에 맞추어 올라왔고 교문을 들어서다 학생과장이 "넌 무슨 새끼가 개학 첫날부터 지각이야?" 하면서 노려봤었고.  앞머리를 동그랗게 말고 다녔고 승마바지에 고리 바지가 한창 유행했던 그 때. 

 누가 내게 물었다.  "넌 니 인생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어?" "어. 90년대!" 나는 줄곧 이렇게 대답했다.  90년대는 내 인생에서 가장 버라이어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던 때다.  나는 내 십대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앞서 말한 것처럼 많은 일들이 다양하게 일어난 때다.  그만큼 재밌기도 했다.  

  이 소설은 90년대의 차현 오빠(그냥 그렇게 부르고 싶어요) 이야기다.  뭐지?  주인공 이름이 작가 이름이랑 똑같아.  이럴때 드는 의구심.  '이거 작가 자기 얘기 아냐?'  그리고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이 풋풋한 사랑과 젊음, 꿈틀거리는 앞섬에 대한 고백이 창작이라면 왠지 서운할 것만 같은 이 기분은 뭐지?  미림 언니와 알티가 존재했으면 좋겠고 작가의 와이프 이름이 정말 은원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치 예전에 TV우결(우리 결혼했어요)의 한 커플을 보고 '니들 둘이 진짜 결혼했으면 좋겠다' 하는 엉뚱한 생각과 비슷한 것일지도. 

  작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분위기나 음악들이나 이 모든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내가 그때를 함께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삼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 그때로 돌아가 차현 오빠가 미림언니와 뽀뽀하는 그 골목 옆에서 몰래 훔쳐 본 듯한 기분이 들었고 정민이의 등장에 '제발 은원이랑 헤어지지 말란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책을 읽는 동안 은원이 내 동네 친구처럼 친숙했기에.  결코 뒷 부분에 겨우 등장하는 정민은 그냥 스쳐 지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했다.  박진감이 넘치지도 가슴이 먹먹해지지도 않았다.  그냥 오래전 내 일기를 펴 보는 것 같았고 지난 이야기를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그 앞에 앉아 차 한잔 마시는 기분이었달까?  끝내 은원이 와이프가 되어 있는 끝 장면에서는 마치 동화의 해피엔딩을 본 듯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사실에 소설적 요소를 약간 가미한 것일까?  아니면, 은원도, 미림도 모두 허구의 인물일까?  왜 이것이 궁금해지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실재했던 이야기고 실재하는 인물이기를 바랄 뿐이다.  왜 이딴 것에 신경을 쓰느냐고?  글쎄다.  오래전 내 기억 속 풋풋하던 첫사랑이 떠올랐고 그때의 공기가 느껴졌던 글이라 그냥 그랬으면 싶다.  말 그대로 그냥. 

  근데 이 소설은 글의 분위기가 두 덩어리다.  아주 애잔하고 잔잔한가 싶더니 갑자기 젊은 남자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글이 되어 버린다.  뭐라고 해야 할까?  시원한 생수인가 싶어 한 모금을 삼키는데 마셔보니 소주였던 작은 술잔처럼 당황스러웠다.  아주 어색하지는 않은데 내 느낌엔 확연히 두 느낌을 갖고 있어.  이것도 궁금하다.  내 생각처럼 작가가 글을 내리 써 달리다 잠시(글의 첫 분위기를 잊을 만큼) 쉬었다가 다시 쓴 것일까?  그 부분이 조금 더 다듬어 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디까지나 내 기분.   

  이 책을 읽고 나니 '제목 참 딱이구나' 싶다.  사랑, 그 녀석.  그래 그 녀석.  그런 녀석이 있었지 말이야.  내 그 시절을 꽉 채우고 있었던 그 녀석 말이다.  갑자기 내게 그때를 회상하게 한 그 녀석.  그 녀석은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에 존재하겠지?  아니, 내 가슴에 그대로 살고 있을 거야.  나처럼 좀 나이를 먹었을 뿐.  젊은 사랑.  그 녀석.  그때 그 녀석.  괜히 한 번 그리운 밤이다.  사랑, 그 녀석.  그래.  너!  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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