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쉐이크 - 영혼을 흔드는 스토리텔링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김탁환 씨의 신간이라길래 봤더니, 이야기 만들기 비법서(?)다.  오호라~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김탁환 씨의 글이 좋다고 생각해 왔던터고 둘째, 이야기 만들기에 관심이 있어서다.  그러니 김탁환 씨가 쓴 이야기 짓기에 관한 책은 꼭 읽어야 했다. 

  김탁환 씨의 소설뿐만 아니라 어떤 소설을 읽으면 정말 감탄하게 된다.  '아니, 이 작가는 이런 걸 어떻게 아는 거지?', '작가는 박식하기가 하나님 수준이어야 하구나', '어떻게 이걸 이렇게 표현하는 거야?' 하는 따위의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글을 쓰기 위해 그야말로 얼마나 갈고 닦아야 하는지를 알려준 책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김탁환 씨는 자신의 이야기 짓기 방법을 보여주면서 이야기에 애정을 가진 자들에게 멘토가 되어주고 있다. 

  앞서 나 역시 이야기 짓기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실지 관심 이상이다.  한때는 소설가가 되겠노라 어금니를 물어본 적도 있고 남몰래 습작에 수많은 밤을 샌 일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글쟁이에 대한 욕심은 여전하다.  우습겠지만 사실이다.  이야기를 좀 하자면, 중학교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학교 2학년때, 교내문학공모전이 있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던져보고 싶었다.  물론 그 전에 원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날로부터 몇 날 밤을 새서 한 편의 소설을 썼다.  분량은 단편정도였고 어린 고아소녀가 작가가 되고 그리하여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가 나의 첫(이전에 단짝 친구와 함께 썼던 릴레이 소설을 제외하면) 소설 <작은 꽃의 희망>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소설은 내 이야기였다.  물론 나는 고아는 아니지만 이야기를 읽고 짓기에 대한 욕망이 정신없이 꿈틀대던 때였다.  투고를 하고 얼마지나 심사위원으로 계시는 국어 선생님께서 나를 불렀다.  그 국어 선생님께서는 3학년을 담당하는 선생님이셨다.  "너 고아니?", "아니요", "그렇구나. 가봐라" 이게 전부였다.  나는 참 영악했던 것 같다.  그 호출이 내게는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고아인지 아닌지는 담임 선생님께 물어봐도 충분히 알 수 있어.  그냥 나를 보고 싶었던 거야'  나의 그 소설은 소설부분의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것은 내게 엄청난 사건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이후로 누군가가 내게 장래희망을 물을 때면 줄곧 나는 소설가라고 답해왔다.  그런 내게 내가 지은 첫 이야기로 인한 수상은 그 어떤 칭찬과 격려보다 강렬한 그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읽고 아메리칸 드림을 간직한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린 <빛바랜 사랑>이라는 단편소설 하나를 또 썼다.  물론 그것은 그냥 서랍 안에 지금도 묵어있다.  그리고 이십대때 <마스터베이션>이라는 소설 하나를 쓰다, 그것은 마무리가 안된 채로 한글 file로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소설은 미완성인 <마스터베이션>이다.  제목에 모두들 동그란 눈을 뜨며 당황하는데 야설이 아니다.  놀라지 마시길.  그 당시 나는 '글쓰기가 내게 어떤 의미인가?'를 끈임없이 고민했고 내 스스로 내린 답은 '자위행위'였다.  한 틴에이저 잡지에서 '자위행위'에 관한 남자아이를 인터뷰를 실은 것은 본 일이 있는데 그게 내 고백이었다.  '도저히 안 할 수가 없어요.  아무도 안 보는 나만의 방에서 은밀하게 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중독되어 있어요'  글쓰기가 내게 그랬다.  '도저히 멈출 수 없고, 그 쾌락의 맛에 참을 수가 없어 또다시 하게 되고 마는.  교감하고 동감하고 나눌 이는 없지만,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하는 행위.  그렇게 배설하고 말아야 기어코 후련해지는 행위.  글쓰기는 내게 이런 거야.'  나는 이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  내 삶에 있어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뜨겁고 붉은 것인지 써야만 했다.  그때는 PC가 없었는데 유치원을 마치고 담배연기 자욱한 PC방에 가서 새벽 3, 4시까지 미친듯이 타이핑을 하고 아침 7시에 기상해서 유치원을 가고 마치고 또 PC방에서 가서 소설을 쓰고, 한참을 그렇게 지냈다.  전혀 피곤하지가 않았다.  (여담이지만 그 소설을 '빨간등대'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연재했을 때 꽤 오랜 시간 1위를 달리기도 했었다.  이거슨 자랑임. 흠흠)  그리고 유치원 일을 하면서 동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때 지은것이 <폴리의 고슴도치 나무>, <아카시아 언덕의 바람이야기>를 지었고 그리고 수십 편의 시와 몇 편의 수필을 더 지었다.  그런데 더는 이야기를 짓기 않게 된 것은 어째서였을까?  살기가 바빴던 건지, 이야기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식은 것인지.  불행히도 둘 다인 것 같다.  그렇다고 전혀 안 쓴 것은 아니다.  그때를 시를 썼다.  시를 얕잡아 본 것인지, 내게 있어 시는 짧은 시간에 지어낼 수 있는 글 따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는 한 문예지에 시 몇 편을 장난처럼 투고했는데 예기치 않게 수상 소식이 전해졌고 수상과 동시에 시인으로 등단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욕심이 나기야 했지만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글을 쓸 만큼 내가 시를 치열하게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시인으로 등단을 하는 일은 시를 천대하는 것이고, 시인들을 엿먹이는(?) 치기 어린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숨은 마음이 있었다면 '나는 누가 뭐래도 소설가로 등단할 거야' 하는 욕심이 있었다.  이제 와서 말인데, 이제는 그냥 막연히 글쓰기, 글쟁이에 대한 사모와 동경만이 남은 것 같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택해서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욕심을 완전히 놓아버린 것은 아니다.   

  참 길게도 내 얘기를 하는구나.  서평이라는 것을 잊은 마냥.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안에 '빨간마음'이 또다시 움찔움찔 하는것이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마음은 '다시 소설을 써봐야겠어'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가 이야기를 짓는 방식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아주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뼛속까지 글쟁이에다 혈관에도 문자가 흐르는 글쟁이는 결코 손이 따라잡을 수 없는 엄청난 분량의 글을 집요하게, 막힘없이 써낼 수 있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한 편의 글을 짓기 위해 얼마나 그것들을 돌보는지, 살을 붙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들을 보고 메모를 남기며 초고를 완성하고 퇴고를 하는지.  이 모든 과정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르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타고난 글쟁이는 몇 날 며칠 신들린 마냥 써내려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타고난 글쟁이는 글을 잘 지을 수 있는 그만의 방법을 가진 자였다.  김탁환 씨의 글을 보니 그동안 그의 글이 좋을 수 밖에(적어도 내게는)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 황진이>에서의 단아하며 정갈한 문체(글에서 향기가 났다, 정말)나 <열하광인>에서의 긴박한 스릴감을 담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끈질기게 글을 먹이고 글을 살찌우고 글을 길러 냈는지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덮을 즈음, 자꾸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뭐 마려운 사람처럼 조급증이 일었다.  '그동안 내가 줄거리를 지어 아무 생각없이 쓰기만 했지 글을 짓는 단계와 과정은 전혀 없었구나' 싶었다.  '이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구나' 싶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이 책은 나같이 이런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이야기가 될 것을 갖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놓아야 할지 모르는 마음만 앞선 이에게 '천천히 니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그 방법부터 터득해' 하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여행을 빗대어 쓰여 있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저자와 여행하면서 이야기 짓기에 집중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쉬어가는 시간에는 내가 쓰는 글, 내가 이야기를 보는 눈에 집중하도록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하나하나 답하다 보니 저자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요점이 뭔지를 알 수 있었다.  '많이 읽고 많이 써라'는 당연한 소리를 몇백 장의 페이지를 할애해서 쓴 책들보다는 노골적으로 짚어준다.  그리고 작가의 자신감이 담긴 목소리도 있었다.  '일단 한 번 따라 해봐.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방법을 찾느니 그래도 내가 가르쳐주는대로 한 번 따라 해봐.  그리고 그 뒤에 니 스타일을 찾아도 늦지 않아' 하는. 

  숙제를 남겨두고 있는 듯하다.  아무도 재촉하는 이 없고 내게 이런 숙제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지만 누가 뭐라던 나는 이야기가 좋고,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인생의 한 부분이 여물어질 것만 같다.  아, 완전히 잊어버린 것만 같았던 글에 대한 욕심.  내 가슴 한 켠에 고이 접어 넣어 놨을 뿐이지 버린 것은 아니었구나.  저자의 말처럼 영혼을 흔드는 글을 쓰는 게 그리 쉽지 않구나.  쉬워서도 안 되겠지.  아무렴 사람의 영혼을 흔드는 일인데.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작가의 한 마디가 완전 와닿는다.  그것을 옮겨 적어보고 낙서 같은(실지 나는 서평을 누구 보라고 쓰지 않는다.  내가 보려고 쓰지.  농담같지만 사실!  우하하하) 서평은 이만 총총.   

"모두가 예술의 융합, 예술의 월경(越境)을 이야기하지만, 막상 그 수준이 낮은 게 현실이에요. 두 장르를 비스듬하게 나란히 세워둔 정도라는 표현이 맞겠지요. 다른 예술 장르끼리 만났으면 새로운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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