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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권혁준 옮김 / 해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재밌다. 참 재밌다. 정말 정신없이 읽었다. 요즘 책 읽는 시간이 너무 토막 나 있어서 그랬는지 예전처럼 몰입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집중력 많이 떨어졌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동안 재밌는 책을 만나지 못했었나 보다. 여름의 끝자락, 아니 가을의 첫자락에 제대로 흡인력 있는 소설을 만났다.
올 여름 제대로 된 스릴러 한 권 못 읽었다. 그러던 차 이 책이 눈에 띄었고 심리 게임, 전율, 천재 작가 어쩌고.... 이런 단어들에 이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엔 제바스티안 피체크가 누군지도 몰랐을 뿐더러 이 책이 이리 재밌을지도 몰랐다.
나는 아기 엄마다. 그것도 이제 네 달을 향해가는 어린 아기의 엄마다. 그러다 보니 책 한 권을 줄창 읽기는 고사하고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볼 수 없는 문화생활에서 처참하게 내팽개쳐진 갈증난 한국의 초보맘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내 쓸쓸한 처지를 구태여 소개하느냐고? 이 책은 '극장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알싸한 콜라 한 잔 들이키며 도무지 눈을 뗄 수 없는 영화 한 편 봤으면' 하고 생각해 왔던 내 목마름(?)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책으로.
정말 한 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였다. 아니나다를까, 영화사에서 이미 영화로 제작하기로 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치밀한 구성과 눈으로 보는 듯한 묘사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내가 보고 싶었던 딱 그런 스토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이 아홉 개인 이유는 아쉽지만 얀이 라디오 방송국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이유가 조금 설득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약혼녀 레오니를 찾기 위해서 왜 그는 하필이면 라디오 방송국에서 인질극을 벌였을까? 차라리 TV 방송국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아무리 그래도 라디오보다 TV가 더 파급력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스토리에서는 라디오 방송국이기에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었다. 그건 너무나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얀이 라디오 방송국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좀 더 맛깔나게 덧붙여 줬다면 어땠을까? 이를테면, '레오니는 시각장애인이고 평소 TV보다 라디오를 즐겨 청취했는데 그 중에서도 이 방송의 열혈 청취자이다' 따위의. 요런 소감은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련다. 저자 참 마음에 드네. p. 456의 '감사의 말'에서 독자의 의견, 비판, 생각거리 또는 다른 형태의 반응이 궁금하며 자신의 홈페이지나 메일로 보내달란다. 와우. 나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려는 작가들이 참 마음에 든다. (그나저나 독일어를 잘 하는 사람에게 작문을 부탁할까? 어설픈 영어로 찔끔찔끔 써볼까?)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스포일러 질질 흘리면 정말 나뻐! 그래서 살짝만. 후훗) 얀은 사고사를 당했다는 약혼녀의 죽음을 믿지 않으며 의혹이 있고 그녀가 살아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라디오 방송국에서 게임을 제시하며 인질극을 벌인다. 딸을 잃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한 협상전문가인 이라가 타의(괴츠로 인해)에 의해 이 사건의 협상을 맞게 된다. 하나, 둘 레오니가 살아 있다는 증거들이 확인되고. 결국 레오니와 얀이 재회하게 되고 이라 역시 힘겨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물론 요건 아주 간단한 줄거리이고 이 과정들이 아주 긴장감 만땅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는 사실도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제 맛이다!
무엇보다 제바스티안 피체크 스토리 중심의 글을 잘 쓰는 작가인 것 같다. 어떤 작가는 문체가 매력이 있고 어떤 작가는 스토리가 좋은데 이 작가는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감사의 말'에서 말했듯, 방송국 관계자, 의사, 경찰, 경호회사 종사자 등의 자문을 통해 각 부분의 오류를 최소화했기에 더욱 실감나는 이야기가 쓰여진 것 같다. (요런거보면 작가도 인맥이 있어야해. 흠)
어찌나 정신없이 몰입해 읽었는지 기어코 이 새벽에 서평을 남기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소설로는 '테라피'가 출간된 일이 있고 '그 아이'가 곧 출간될 예정이란다. '테라피'를 이미 장바구니에 담았다. '테라피'를 읽어보고 그 작품도 마음에 들면 나는 favorite writer list에 제바스팅란 피체크를 넣으련다. 이 책 <마지막 카드를 그녀에게>가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라는데 부디 차질이 없이 진행됐으면 좋겠고 영화도 몹시 기대된다. 그럼 '테라피'의 도착을 기다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