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삼켜버린 9.4329
토마스 리베라 / 장원 / 1996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제 발로(?) 나를 찾아온 책이다.  간혹 온라인 헌책방에서 책을 구매하다 보면 읽고 싶을 책을 다 골랐는데 무료배송 받으려면 몇천 원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럴때 잘하는 짓이 관심 있는 장르의 도서를 정하고(내 경우는 대개 문학) 최저가부터 보는거다.  주로 로맨스 소설이나 고전 종류들이 많이 뜨는데 간혹 아주 좋은 책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주객이 전도되어 이렇게 담은 책에 더 꽂힐 때가 있다.  수천수만의 책 중에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는 책을 나는 '제 발로 날 찾아온 책'이라고 부른다.  이 책도 그렇게 만나게 된 책이다.   

  많고 많은 책 중에 이 책을 골랐던 이유는 치카노(멕시칸 아메리칸 문학을 칭하며 미국에 살고 있는 멕시코인의 후예들에 의해 생산된 문학을 일컫는다.) 문학의 대표작이자 킨토솔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표지에 새겨진 문구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중남미 소설이라는 점도 한 몫!(국내에는 아직까지 중남미 문학이 상대적으로 열세하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 12개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아이들은 참지 않는다', '기도',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었어',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손', '악마를 부른 소년', '...그리고 땅은 갈라지지 않는다', '첫영성체', '권투장갑', '불 꺼진 밤', '크리스마스 이브', '초상화', '어둠을 타고 가는 사람들'이다.  이 열두 편의 이야기 모두 각각 따로 존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로 한 덩어리로봐도 무관할 만큼 닮아있다.  또 모두 문제의식이 아주 투철했다.  대체로 미국에서 살고 있는 멕시코인에 대한 차별, 부당함, 그들의 고충을 담고 있다.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쓰인 우리문학처럼 우리 민족의 설움과 애닮픈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듯 이 책의 이야기들 역시 비슷했다.  멕시칸 아메리칸들의 빈곤, 편견, 이주 노동자의 삶, 그들의 전통문화와 가치관, 카톨릭 신앙이 이 소설의 소재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은 발표되고 많은 논쟁을 불렀다는데 역시 '그럴 수 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내게는 십 년이 훌쩍 넘은 멕시코인 친구가 있다.  그 역시 멕시코인인데 미국 시카고에 이주해 살고 있다.  이 책의 이 이야기들이 그 친구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 윗대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더욱 차분하게 읽었고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어떤 민족이든 간에 자신의 대륙과 터전, 본향을 떠난 삶은 눈물겹다.  '다수 속에 소수로 존재하며 살기란 참으로 힘겨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에 근로 중인 이주 노동자들이 느끼는 개인의 삶도 이처럼 고달플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정말 아쉬운 점은 왜 표제가 '해를 삼켜버린 9.4329'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표제는 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큰 이유이기도 했는데 책을 덮고 나서도 이 9.4329라는 의미를 모르겠다.  이 9.4329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리저리 찾아봐도 이 책에 대한 포스트만이 검색될 뿐 이 숫자들에 대한 코멘트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소설이 독자들에게 일일이 설명해주고 밝혀주는 글이 아니기에 그 숫자의 의미는 작가가 부여한 것이며 이것을 발견하는 독자의 몫이리라.  그러나 한국판으로 번역되며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소개해주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우연히 만난 책이었지만 참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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