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론드 세트 - 전3권
조이스 캐럴 오츠 지음, 강성희.송기철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다.  근래 다른 장르의 책들을 읽어서 그랬던 건지, (태어난지 한 달 반 정도 된 딸 보느라 그랬던 건지) 몰입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마릴린 먼로' 일대기를 소설화한 작품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저자 조이스 캐럴 오츠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은 처음인데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섹시 심볼의 마릴린 먼로가 어떤 배우였는지 호기심을 느꼈다.  그렇다고 그녀의 팬이라거나 그녀의 영화를 본 일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여배우라는 사실에 그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고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다.   

  도입부분은 정말 읽기가 힘들었다.  "죽음은 암갈색으로 사그라지는 빛 속에서 대로를 따라 돌진하여 등장했다.  죽음은 묵직하고 투박한 배달 자전거를 타고 어린애들의 만화 속에서인 양 날아와 등장했다.  결코 틀림없는 죽음이 등장했다. 흔들림 없는 죽음. 다급한 죽음. 맹렬히 페달을 밟는 죽음. '특급 우편, 취급 주의' 라고 표시된 소포를 안장 뒤 철제 바구니에 실어 나르는 죽음.(15쪽)"  이 책의 첫 부분이다.  취향의 문제인지 집중력의 문제인지 참 어려웠다.  개인적으로는 본연의 의미를 헷갈리게 할 정도로 너무 많은 은유와 비유가 섞인 문장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집중력을 잃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작가의 문체가 그러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끝까지 처음과 같은 느낌을 간직한 채 끝까지 읽어야 했다.    

  이 작품은 마릴린 먼로의 삶을 소재로 한 소설인데, 세상이 그녀를 모르던 시절 그녀가 '노마 진 베이커'였을때부터 시작한다.  화려해 보이는 세계적인 배우 마릴린 먼로가 그토록 힘든 삶을 살았을 줄은 정말 몰랐다.  측은하고 안타까웠다.  그토록 사랑받기를 갈구했지만 그녀는 사생아였고 정신병에 걸린 어머니로부터도 그녀가 원하는 방식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인연이 되는 남자들 역시 진정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고아원과 수양 가정에서 생활했고, 이른 결혼과 이혼 그리고 비운의 죽음까지.  참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이러한 묘사들은 사건 중심이 아니라 내면의 고백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마릴린 먼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마릴린 먼로라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모습이 있을 것이다.  지하철 환풍구에서 바람에 치켜 올라간 치마를 덮어 누르는 관능미의 포즈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난 여기에 갇혀 있어요. 얼굴이 있는 이 금발의 마네킹 속에 갇혀 있어요. 난 그 얼굴을 통해서만 숨을 쉴 수 있죠! 그 코로만, 그 입으로만!” (3권 p.249)  그녀는 그랬다.  모두가 보여지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을 뿐 진정 그녀는 그녀의 껍질에 갇혀 있었다.  책을 읽고 시를 쓰고 일기를 쓰던 마릴린 먼로는 아무도 관심없었다.  마릴린 먼로가 아닌 노마 진 베이커의 삶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군중속의 외로움이 딱 어울릴 듯한 삶이었다.  먼로의 삶을 보며 나는 우리들의 대중스타 역시 비슷한 삶을 살고 있으리라 생각을 하니 화려해 보이는 그들이 안스럽기도 했다.  진짜를 잃은 그들의 삶 역시 마릴린 먼로가 느꼈던 고민과 번뇌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 소설은 대개 전기소설들이 그러하듯 주인공을 과장하거나 우러러보게 만들지 않는다.  그대신 그녀의 참모습에 함께 눈물짓게 만들며 세상이 잃어버린 노마진 베이커의 모습을 환생시켰다.  그녀를 통해 우리는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지, 절망을 딛고 일어서기가 얼마나 힘겨운지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빛나는 한 줄기 희망과 용기는 이 모든 것을 언제나 반드시 이기고 만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년이 마릴린 먼로가 사망한지 50주년이 된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 이미 죽은 이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세상이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듯 그녀의 참모습을 소개하는 기념비적 작품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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