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위스퍼 - 행복한 엄마들의 아기 존중 육아법 베이비 위스퍼 1
트레이시 호그, 멜리다 블로우 지음, 노혜숙 옮김, 김수연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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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명성이 자자한 책이다.  <베이비 위스퍼>  임신 전부터 읽겠노라 사두고서 이제서야 읽게 됐다.  땅을 치며 후회한다.  왜 그런지는 좀 있다 설명하겠다.  이 책은 참 감동적이기도 했고 참 억지스럽기도 했다.  이런 극명한 기분을 동시에 안겨준 책이 있었나 모르겠다.   

  감동적이었다고 하는 이유는, 비록 갓난아기지만 성인을 대하듯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라는 메세지가 너무 와 닿았기 때문이다.  '인격적', '존중'.  참 말은 너무나 쉽다.  그러나 사실 완벽하게 그리 하기란 쉽지 않다.  아기에게 집에 오자마자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박물관의 큐레이터처럼 소개해주고, 심지어 기저귀를 갈 때에도 아기에게 설명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잠든 아이의 바지를 함부로 내리고 새 기저귀를 준비할 때까지 다리를 벌리게 한 채 두고 차가운 물티슈로 그냥 닦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지금 네 기저귀를 한 번 볼 거야", "바지를 내릴 거야", "물티슈로 닦아줄거야.  좀 차가울지도 몰라" 아기가 칭얼댈 때에는 "그래, 빨리해주기를 원하는구나.  곧 끝나" 하고 일일이 그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라는 거다.  미친 짓 아니냐고?  아기가 뭘 알아듣는다고 이토록 중얼대야 하냐고?  임신했을 때는 그토록 상냥하게 동화를 읽어주더니 말이다.  물론 아기가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식의 대화는 성인으로 하여금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아기를 대하는 태도를 다듬어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설사 아기가 성인의 언어는 알아듣지 못한다 할지라도 억양과 늬앙스는 분명 느낄 것이고, 그와 함께 전해지는 자신을 대하는 분위기는 아마 알 것이다.  어른은 자신의 신생아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단지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시절을 식물인간처럼 보내는 것은 아닐테다.  나는 곧장 그렇게 하기로 했다.  무례하지 않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기로.  나 역시 기저귀를 갈 때 그리 해보았다.  거짓말 같겠지만 아기는 차가운 물티슈에도 덜 놀라고 확실히 덜 칭얼대는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이렇게 하련다.  부모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해가 될 리 없을 것이고 아이의 언어발달을 위해서 나중에 동화 테이프를 재생해 주려 애쓰는 것보다는 좀 더 자연스럽고 쉬운 접근이 아닐까?  다시말해, 잃을 것이 없다는 거다.  도리어 엄마는 아기에게 상냥하고 친절한 말을 건네며 더욱 아기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억지스럽다고 했던 부분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억지스럽다는 것은 그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와는 다른 문화를 마치 그것이 진리이고 그것이 최선인 양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생아의 수면교육을 바로 잡는 부분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었다.  실제 부모들의 실례를 들어가며.  이 부분은 내가 관심 갖고 있는 부분이라 그런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신생아에게 수면교육을 시킨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바른 식습관, 수면습관, 위생습관 등 기본생활 습관은 가급적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엄마 품에 잠들고 싶어서 칭얼대는 아이를 그 아이의 침대(잠자리)로 데리고 가서 "잠은 이곳에서 자는 거야. ('엄마는 항상 네가 필요할 때 네게 올거야' 라는 말을 덧붙인다 하더라도)" 하고 내려놓는 것은 어찌 보면 사랑과 온정과 보듬어 줄 부모에게 좌절을 경험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그래도 아기가 울면 다시 안아 달래고 울음을 그치면 다시 내려놓고, 또 울면 다시 달래고, 또다시 내려놓고....  이렇게 수백 번을 하면 언젠가는 부모 품이 아닌 자신의 침대(잠자리)에서 잠든다는 것이었다.  물론 자야할 곳, 먹어야 할 곳, 놀아야 할 곳을 의식적으로 구분해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 과정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는 좀 더 편한 육아를 위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부모가 요렁껏 육아를 편하게 하는 것은 얌체 짓도 아니고 못할 짓도 아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에 나온 지 겨우 몇 주 밖에 안된 아기에게 이렇게 훈련하듯 반복한다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 부분은 영국과 우리나라의 문화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영국 뿐 아니라 서양에서는 아이가 2, 3살만 되어도 그들의 방에 부모와 따로 재운다.  우리처럼 곁에 두고 자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반드시 이런 방식의 '수면교육' 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잠은 각자의 방에서 자는 것' 이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우리나라에도 신생아기부터 아니 아주 어릴 때부터 독립된 방에서 재우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모든 부모가 그렇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육아도 소신껏 하는 것이고 정답이 없는 것이라면 말이다.  물론 아기가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혼자서 자신의 침대에서 스스로 잠든다면 이처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엄마 품에서 잠들고 싶어하는 아이를 강제로 이런 훈련을 통해 떼어놓는 것은 저자가 말하는 그들을 위한 배려에 어긋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분명 아기가 수백 번 반복되는 이 과정에서 좌절을 경험할 것이고 그 좌절이 아이로 하여금 특정 행동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잘못된 것이라면 언제든 수정하고 고쳐야 한다.  아이의 좌절이나 절망이 두려워 두고만 보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모르긴 몰라도 이런 것이라면 아기가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인식하고 성인의 요구에 반응할 수 있는 시기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 열 달을 살던 곳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모든 것이 낯선 갓난아기에게는 추후로 미루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이제 왜 이 책을 아기를 낳기 전 읽어야 했는지 설명해 보자면 이렇다.  만약 내가 미리 아기에게 양해를 구할 것과 행동하기 전에 미리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지 알았다면 29일(우리 아기가 지금 생후 29일째다)을 무례하게 육아라는 내 할 일만을 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더 다정하고 따스하게 말을 걸며 아기가 놀라지 않게 긴장을 풀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소위 말해, '손 탄 아이' 가 되지 않도록 미리 아기가 졸려할 때 안아서 어르거나 안고 거실을 서성이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제 자리에 눕혀둔 채 토닥였을 것이다.  이 점이 너무 아쉽다.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우리 아기를 대하는 태도나 요구에 대한 행동들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겨를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다면 우리 아기가 좌절이나 포기를 경험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아기를 존중하되 지금에라도 그 어떤 문제행동을 교정할 수 있으며 부모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 아기가 되도록 만들 수 있다' 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저자라고 해서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한 정답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레시피는 우리(부부)에게 있는 것이다.  어떤 분야의 선구자라고 해서 반드시 '옳다구나' 하며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닐게다.  우리와 내 아이에게 맞는 다른 절묘한 방법들이 있을지도 모르며 그것은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리라.  전문가의 조언은 조언으로 듣고 필요한 부분은 적용하되 나와 우리 아기의 상황을 고려하여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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