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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없는 탄생 - 샘터유아교육신서 24
프레드릭 르봐이예 지음, 주정일 옮김 / 샘터사 / 198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폭력 없는 탄생' 요즘은 '평화로운 탄생'으로 표제가 바뀌어 출간되고 있다. 폭력이라는 공격적인 단어 대신 이 분만(르봐이예 분만)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인 '평화'라는 단어를 대입해 더욱 긍정적인 분위기로 탈바꿈했다. 그러면 뭐가 폭력 없는 탄생이고 뭐가 평화로운 분만일까?
르봐이예 분만, 인권 분만. 요즘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분만법이 되었다. 젊은 엄마나 산모라면 르봐이예를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고 르봐이예 분만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도 드물 것이다. 내가 태어날 때까지만 해도 아기는 의례 태어나 울어야 했으며 울지 않는 아기는 무슨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나도 아마 의사 선생님께 엉덩이를 맞으며 탄생의 신고식을 치뤘을게다. 지금은 자연스러워진 이 분만법이 당시에는 얼마나 혁신적이었을지 상상이 간다. 혹자는 "웬 유난이야? 갓난아기가 뭘 안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누구나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화면은 출산 중인 산모의 땀 맺힌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있다. 산모는 죽어라 고함을 지르며 단말마의 비명 끝에 아기가 탄생하는데 그 순간 카메라는 분만실 밖에서 대기 중인 가족들의 애타는 모습을 비추다 '응애응애'하고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에 모두 화색이 되어 얼싸안는 장면 말이다. 송곳으로 찌른 듯한 아기의 격렬한 첫 울음은 탄생을 연상시키는 신호탄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아는가? 그것은 아기가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보인 분노이자 고통의 징표라는 사실을.
그동안 우리는 의료진이 주체가 되고 산모와 아기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분만실의 분위기를 당연시 여겨왔다. 눈이 부실 정도의 밝은 조명 아래 산모는 침대에 누워 비명을 지르고 의료진은 큰 소리로 산모에게 힘을 주라고 재촉하고 아기가 탄생하는 순간 거꾸로 들어 엉덩이를 때려 자극을 주고 울음으로 강제로 폐호흡을 시키고 급히 탯줄을 자르고 철제 저울에 얹어 몸무게를 측정하고 출생 시간을 기록하고 간단히 아기의 안녕을 살피고 아기는 어디론가 떠나고 엄마 역시 병실로 떠남으로 분만이 종결되었다.
그러나 르봐이예 분만은 이런 분만 환경을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괜한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라고 치부해버리기도 했을테지만 소수의 의식 있는 산과 의사와 의료진들은 이에 관심을 가지고 그가 제안하는 분만법에 매료되었다. 탄생할 아기의 시력보호를 위해 조명을 최소화하고 산모에게는 자유로운 자세로 진통하는 것을 허용하고 역시 아기의 민감한 청력과 산모의 안정을 위해 의료진들은 소리를 낮춘다. 아기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산모의 가슴 위에 엎어주어 아기와 산모가 서로 교감하며 안정을 취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아기가 폐호흡과 탯줄 호흡이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첫 젖을 빨게 한다. 그리고나서 탯줄을 자르고 아기를 양수 온도의 물에서 안정을 찾게 한다.
그러나 르봐이예 분만이 국내에도 소개되면서 많은 산과 의사들과 의료진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분만은 단지 고통이 아닌 기쁨의 순간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한다는 각성이 일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그리하여 국내 많은 산부인과에서 행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곳은 그저 분만의 분위기만 흉내 내고 있고 어떤 곳은 종례와 같이 아기를 울게 하는 분만을 계속하고 있다.
그럼 르봐이예 분만이 왜 필요할까? 누구나 태어날 아기가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이 르봐이예 분만이 탄생할 아기와 산모를 최대한 배려하고 이들의 만남이 건강하고 평화롭게 진행되도록 돕는 분만이다. 이는 아기와 산모가 주체가 되는 분만법이며 태어나는 아기를 최대한 덜 고통스럽게 하는데 포커스가 맞춰진 분만법이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첫 호흡을 시작한 연약하고 약한 아기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그 시선 자체가 이 분만법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꼭 산모나 산과 의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번 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 땅의 모든 아기들이 인간적인 환경에서 보호받으며 탄생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