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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식탁
박금산 지음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참 난해한 소설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시대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정면에서 조명한 문제작'이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좀 다르다. 분명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 다섯(레지나, 민우, 세키, 아녜스, 김일면)의 둘(레지나, 세키)은 장애인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장애인이 등장하고 이들의 사랑과 성적 욕망을 밝히 드러내 보였다고 해서 이것이 장애인들의 일반적인 사랑과 성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온갖 비윤리적인 관계와 캐릭터들이 소설 속에 난무한다. 교사 민우와 제자 아녜스와의 관계 그리고 임신, 교사 김일면과 시각장애인 레지나의 관계 그리고 임신, 야설을 쓰는 언어장애자 세키 또 선생 김일면과 세키의 정기적인 도박, 고등학생인 아녜스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는 민우의 레지나를 향한 욕정, 레지나를 향한 세키의 사랑 그리고 성욕. 줄줄이 나열해놓고 보니 참 복잡하기도 하다.
앞서 나는 이러한 관계들은 비윤리적이라고 했는데 윤리적이고 비윤리적임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 다수의 일반적인 입장에 반하는 것들? 이것들을 명명백백하게 규정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동성애의 문제를 놓고 보자면 이들 이성애와 같이 보는 이들도 있고 또 이는 용인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교사와 제자의 성애 관계라면 이는 동성애 문제보다는 좀 더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지 않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를 두고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으로 치부할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것을 감히 비윤리적인 관계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얼마 전 이런 관계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외신에서도 종종 접할 수 있었으며 국내에서도 유부녀 여교사와 남자 중학생과의 관계가 사회를 경악게 한 일이 있다. 둘 사이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깊은 사랑이 있었건 없었건은 차치하더라도 이들의 관계를 고운 눈으로 본 이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이런 관계가 버젓이 등장한다. 고등학교 교사인 민우와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아녜스다. 앞에서 교사 김일면과 시각장애인 레지나의 관계에 대해 언급했는데, 사실상 이들 관계에 있어서는 문제가 될만한 점은 없다. 레지나는 성인이고 김일면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성일 뿐 이들 모두 성인이기 때문이다. 민우와 아녜스의 관계를 단지 스승과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배제한 채 '부적절한 관계'로 치부하는 것은 당사자들에게는 조금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회적 통념상 교사와 학생 간에 성행위가 존재하는 것에서는 어떻게든 면죄부를 주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시대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정면에서 조명한 문제작' 이라는 것에 대해 반론하겠다. '이 시대 장애인'이라면 현시대를 살아가는 장애인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의 '성과 사랑'이라면 그들의 성 그리고 사랑에 대한 관념이나 행위, 실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면에서 조명'했다 함은 문제를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시하여 까발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의 비정상적으로 드러나는 성욕과 그들의 관계를 이 시대 장애인의 성과 사랑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무슨 근거로? 내 보았을 때는 '인간의 은밀한 성과 사랑을 엿본 문제작'이라는 표현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작가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 편협된 시각에서 탈피하길 원했다. 그런데 소설 속 이런 성애 관계와 성적 관계를 말하면서 장애인에 포커스를 맞춘 것은 작가의 의도에 어긋나는 게 아닐까? 이들의 이런 관계를 우리와 다를 바 없는(실제 다르지 않은) 인간들의 관계와 삶의 모습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마치 장애인이기에 이들이 이러한 관계와 성적 행동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과연 레지나와 세키 그들이 장애인이기에 소설 속에서처럼 이렇게 사랑했을까?
또한 이들 관계를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납득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 민우는 아녜스와 관계를 갖고 아녜스가 임신(물론 소설 속에서는 아녜스의 임신이 민우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김일면을 통해 밝힌다)을 한 상태지만 아녜스를 사랑하지 않는다. 김일면 역시 레지나를 사랑하고 그녀 역시 임신하지만 레지나가 아이를 낳기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서로 사랑하여 임신을 하게 된 경우라 할지라도 어느 한 쪽이나 쌍방이 아기를 원치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김일면은 민우에게 레지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의아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것을 의아해 하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어쩌면 김일면은 레지나의 매력적인 외모때문에 그녀를 독점(세키가 레지나를 좋아하는 것을 시기함)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지. 물론 나는 김일면과 레지나의 관계에서도 둘 사이의 진실한 사랑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끝으로 세키. 세키는 정말 레지나를 좋아했을까? 그렇다면 어째서 아녜스에게 여러 차례 성욕을 느낄까? 민우가 아녜스를 사랑했다면 어찌 레지나에게 느끼는 성욕을 아녜스에게 풀어버릴 수 있을까? 나는 이들 관계를 사랑이라고 보지 못하겠다. 도리어 제어되지 않는 너저분한 은밀한 성욕이 존재하는 관계라고 단언하고 싶다.
이 소설에서 장애인은 레지나와 세키였다. 그러나 이들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자들이다. 그러나 민우, 아녜스, 김일면 역시 장애인이다. 사회에서는 이들을 정상인으로 간주하겠지만 이들은 자신만이 안고 있는 내재적 장애를 가진 자들이다. 이렇게 보자면 '장애인의 성과 사랑....'이라고 언급한 것을 용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어쩌면 나와 다른, 내가 비윤리적이라고 치부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반응이 마치 나로 하여금 이들에게서 외톨이가 되게 하는 듯 했다. 이들의 세상 속에서는 날 선 눈빛과 나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규정짓는 것이 비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정상', '비정상'을 너무 쉽게 갈라버리는 나의 시선이 어쩌면 내가 가진 장애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