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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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심장을 쏴라>로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정유정의 신간이다.  <내 심장을 쏴라>는 읽어보지 못했는데 주변에서 이를 읽은 이마다 엄지손가락을 세우는지라 그녀의 신간인 <7년의 밤>부터 먼저 읽게 되었다.  (<내 심장을 쏴라>는 추후 읽을 작정이다.) 

  가볍지 않은 소설이었다.  엄중하고 어두웠다.  그리고 음산했다.  참 몰입해서 읽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은 탓인지 이야기의 맛을 느끼며 집중할 수 있었다.  S시 세령읍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잔혹하고 처절하며 슬픈 이야기.  이 소설은 작가의 상상을 넘어 마치 이 공간이 실재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함께 수록된 S시 세령읍의 그림약도가 더욱 실감 나게 했다. 

  이야기를 여는 첫 문장 역시 범상찮았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어쩌면 이 문장은 이 소설의 핵이 아닐까 싶다.  최현수의 아들 서원, 또 어떤 아버지의 아들 영제, 영제의 딸 세령 또 어느 잠수부의 아들 승환.  심지어 죽임을 당한 어미 고양이의 살아남은 마지막 새끼였던 어니.  이들은 모두 아버지에게서 놓여나지 못하는 가엾은 존재들이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깊이 베인 자들이다.  이들은 아버지와 아들 또는 아버지와 딸이라는 이유로 서로 끊지 못할 운명에 사슬에 메여버린 불쌍한 영혼들이었다.  아버지를 교수대에 세우고 그 마루를 기어코 내려버려야 하는 이들이었다.         

  특히 '살인마' 라는 수식어를 단 아버지 최현수의 아들 서원의 삶을 보는 것은 참 힘겨웠다.  새삼 모든 범죄자의 가족들이 이렇게 처연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되었건 부정할 수 없는 피붙이기에.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인연이기에.  어린 서원이 감당해내기에는 너무나도 잔인한 삶이었다.  게다가 영원히 도려낼 수 없을 듯한 삶이었다.  이런 슬픈 삶은 비단 서원 뿐만 아니었다.  아버지의 손에 반죽임을 당하고 또 다른 이의 우발적인 사고로 완전하게 죽게 되는 세령.  피냄새가 나는 가녀리고 연약한 삶이었다.   

  서원과 세령만이 아니다.  그들의 엄마들 역시 가엾기는 마찬가지였다.  영제의 아내 하영, 현수의 아내 은주.  어찌보면 이 소설에서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살아가고 있었다.  가족이란 과연 무엇인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한데 모인 이들의 삶은 차마 보기가 힘들었다.  증오와 미움 그리고 불신.  서로 쫓고 쫓기는 삶이었다.  마치 세령과 서원이 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한 발짝도 마음껏 내딛지 못하고 술래를 직시하며 조심히 옮겨야 하는 그 좁고 아찔한 보폭 같았다.  술래에게 최소한의 미동도 보여서는 안 되는 경직된 몸짓.  이렇게 날이 선 그들의 메마르고 거칠어진 감정의 교류들.  작은 불똥 하나로 홀랑 타버리고 말 것처럼 건조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아저씨 '승환'의 소설 속에서 밝히 드러난다.  마치 추리소설 같기도 했다.  책장마다 비 냄새와 피 냄새, 그리고 짙은 호수의 비린내가 났다.  그런데도 한사코 눈을 뗄 수 없었다.  잔혹하고 슬펐다.  또 한순간의 파멸을 경험한 이후로 이들의 피폐한 삶의 모습은 나약한 인간의 내면을 너무나도 선명하고 처참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것은 비극적인 7년의 밤을 간직한 한 마을의 이야기이자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상처 나고 아파지는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세령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아빠'.  '아빠' 라는 이름은 이 모든 비가(悲歌)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마치 아버지라는 이름이 이들을 어떤 몽환적인 곳으로 데려가는 데자뷰인 것처럼 말이다.  그들을 위한 슬픈 진혹곡이 끝이 났다.  이들의 구슬프고 처절한 삶이 마을이 잠겼던 7년 전 그날 밤처럼, 완전히 침수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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