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CURIOUS 12
알프레도 로체스.그레이스 로체스 지음, 이은주 옮김 / 휘슬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여행을 가기 전 꼭 읽어보는 책 중 하나가 바로 이 큐리어스 시리즈이다.  기껏 3박 4일로 세부 여행을 가지만 그 섬 역시 필리핀 땅인지라 여느 때처럼 큐리어스를 선택했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일단 그 나라 국민의 생김새로 된  표지가 마음에 든다.  (오, 표지 때문에 책을 좋아할 수도 있다니.  그러나 표지 때문만은 아니야)  그리고 내가 여행한 나라의 큐리어스 시리즈 책들을 모아보는 재미도 쏠쏠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닌 모두 부수적인 이유때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책은 내가 여행할 나라의 국민에 대해, 역사에 대해, 문화에 대해 아주 잘 소개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무렴 그래야지.) 

  그런데 이 책 '필리핀' 은 다른 큐리어스 시리즈의 책들과 달랐다.  필리핀의 문화와 그들의 인간관계 양상을 단명하게 서술했다는 느낌이 내내 들었다.  물론 나는 필리핀에 살아보지도 않았고 이전에 필리핀 땅을 방문해본 적이 없기에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떠하다' 라는 나만의 주관적인 느낌조차 없다.  그런데 왜 이 책은 필리핀 국민성(적어도 인간관계 면에서는)을 잘 기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느냐면, 사실 이전에 읽어본 큐리어스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책에서는 '역시 인간이 사는 곳은 모두 비슷한가봐.  사람이 사는 것은 어디든 닮은 구석이 있어' 라고 생각한데 반면 이 필리핀이라는 나라는 우리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점에서는 역시 다른 나라들과 비슷했으나 그들의 개성이나 색깔이 아주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이 객관적인지의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고 그곳에서 살아보지 않는 한 확인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런 예를 들어보아야겠다. 먼저, 선물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풀어보는 것은 실례가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선물한 이에게 적절한 감사의 말을 하며 더욱 기쁨을 표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열어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으레 "정말 맘에 든다.  너무 갖고 싶었던 거야" 하며 약간의 과장된 인사를 건넨다.  이것이 선물을 한 사람에게 '당신의 선물은 정말 흡족해요' 하는 또다른 표현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필리핀에서는 그렇게 선물을 그 자리에서 뜯어보는 것은 오로지 선물에만 관심이 있는 경박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비치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개하는 것은 가격, 선물의 가치 등이 노출되기 때문에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작은 부분이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화의 차이는 정말 크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늦는 것이 예의란다.  우리는 초대를 받으면 10분 정도 일찍 가는 것이 예의이며 좀 늦게 될 때는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필리핀에서는 정시에 나타나는 것은 식탐 많은 성질 급한 사람으로 본다'는 점.  동남아쪽 나라들이 대개 느긋하고 여유롭고 시간관념이 없다는 것은 익히 들어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의도적으로 약속에 늦는 것이 예의라는 점은 참으로 이상하다.   

  그리고 그들의 'YES'를 그대로 해석했다가는 낭패라고 한다.  그들은 초대를 받거나 부탁을 받았을시, 그러할 마음이 없더라도 일단 'yes'라고 한단다.  왜냐면 그것이 초대하거나 부탁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고 믿는단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초대할 의사가 있다면 몇 차례 초대를 하고 지인 등을 통해 확답을 받아놓는 것이 중요하단다.  그래서 이런 면만을 보면 때로는 그들이 거짓말쟁이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들의 문화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또 누군가가 길에서 넘어지거나 곤란한 상황을 겪었을시, "괜찮으세요?" 하고 일으켜 세워주거나 부축해주지 않고 그냥 모른 채 한단다.  그것은 그들이 무심하기 때문이 아니라 넘어진 사람이 수치스러울 것을 짐작하기에 짐짓 모른 채 하는 것이란다.  이들은 히야(hiya: 수치심과 창피함)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단다.  그리고 상대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게 필수 덕목이라는 아모르-프로피오.  

  뿐만 아니라 홀른스타이너의 논문 <필리핀의 상호주의>에서는 필리피노들의 우탕나룹(개인적 은혜)에 대해서도 다루었다고 한다.  또 데이비드 L. 스잰튼은 <필리핀에서의 문화적 갈등>이라는 저서를 출간한 바 있단다.  이 책에서도 그 책의 인용구절을 살짝 소개해 놓기도 했는데 이쯤 되면 필리피노들의 인간관계에서는 뭔가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와 패러다임이 분명 있다고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우리와 비슷한 모습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서양인의 눈에서는 굉장히 이상한 풍경이기에 이 책에서는 신기하게 기술해 놓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모습의 문화도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장례식장의 모습이다.  이들도 장례식장에서는 카드놀이나 가족 간의 게임 같은 것을 하며 밤을 지샌단다.  우리나라가 고스톱을 하며 조문객을 맞는 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이것이 상주에게 슬픔에 빠질 기회를 주지 않고 애통하고 침울함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믿는단다.  우리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서양인에게는 이런 모습이 경이로울 만도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점은, 유난히 서양인의 시선과 그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려 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른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한 나라의 문화와 국민에 대해 담은 이 책에 '필리핀 가사보조인'을 고용하고 다루어야 하는 부분이 왜 필요했을까?  물론 그곳에서 살기 위한 서양인들에게 그곳에서의 편한 생활을 소개하고자 하는 의도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서양우월주의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국등 동남아 등지를 여행하다보면 양옆에 현지 아가씨를 끼고 있는 서양인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실제로 태국 파타야의 밤거리에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보았고 의아하던 나는 현지에 사는 한국인에게 물었다.  "저 여자들은 윤락행위를 하는 여자들인가요?" 그런데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서양인들이 이곳에 출장이나 해외파견등을 오면 이 곳의 저렴한 물가 때문에 하인을 부리기가 쉽거든.  특히 남자들은 혼자 살림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곳 여자들이 빨래를 해주거나 집안일을 해주는 것으로 계약된 사람들도 상당수야"  물론 이 책의 저자의 의도가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이해하는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다루는 방법'을 담았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이 책에 반드시 어울리고 필수적인 요소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아마 3박 4일 세부로 가는 여행에서 나는 그들에게서 이 책에서도 같은 모습들을 만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단지 휴양을 위해 가는 그곳에서는 현지인에게 약간의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는 정도가 그들과의 관계 형성에 전부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세부여행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을 듯하지만 '필리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즐겁게 읽었던 책이다.  그리고 내가 필리피노를 이해하고 접할 수 있을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데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다양한 문화와 특성을 몸소 체험한다는 것은 정말 귀한 일이다.  우리와는 다른 그 문화의 장점들을 통해 그들의 지혜를 엿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필리피노들이 정말 그러한지....  몹시 궁금하다.  현재로서는 그 궁금증을 해결할 방도가 없기에 더욱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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