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의 편지 - 샘터유아교육신서 28
W.브레인 홀스트 / 샘터사 / 1988년 8월
평점 :
절판


  내 뱃속의 우리 아기, 이제 6개월이 되었다.  어떤 책을 읽어 볼까?  검색.  키워드 '태아'  뱃속 아기를 소재로 쓴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책은 무엇일까?  바로 '태교'에 관한 책들이다.  많은 태교 도서들이 일등맘 소위 말하는 극성맘들을 겨냥하기 위해 온갖 화려한 겉치레를 한 채 출간되어 있다.  CD 포함,  태교수첩, 태교 다이어리, 포토북 포함 등등.  표제 또한 참 노골적이다.  아주 울트라짱 슈퍼 베이비를 만들기 위한 비법서처럼.  이런 책들 중에서 '태아'의 정서와 감정을 다룬 책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태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책은 정말 드물다.  '태아' 라는 키워드로 검색된 책 중 출간된지 오래되어 보이는 책 한 권.  태아의 편지.    

  이 책은 이렇게 만났다.  생각대로 1988년 초판을 펴낸 오래된 책이었다.  세련되지 못한 표지, '태아의 편지'라는 무뚝뚝하고 심심한 표제.  그런데 내용은 정말....  뭐랄까.  아주 사랑스러운 책이었다.  읽는 내내 얼마나 행복하고 웃음이 났던지.  이 책은 나중에 우리 아이가 태어나서 동화를 들을 수 있을때즘 "너의 뱃속 이야기란다" 하며 들려주어도 아주 좋을 그런 책이었다.  태아의 발달과 자궁 내에서의 경험을 태아의 입장에서 엄마, 아빠에게 전하는 내용이다.  당연히 화자는 태아다.  '아, 우리 아기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겠구나'  '정말 이런 기분일 테지' 하며 내내 즐겁게 읽었던 책이다. 

  나는 이런 책이 좋다.  똑똑한 아이를 만드는 태교 방법을 담은 책들보다 이렇게 아이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책이 좋다.  태교를 빌미로 내 뱃속 아이에게 지능발달, 두뇌계발, 학습을 강압적으로 시키고 싶지 않다.  그냥 내가 줄 수 있는 사랑과 이해를 더 줄 수 있게 하는 책이 좋다.  이 책이 정말 그랬다.  하나 하나가 얼마나 재미있고 귀여운지.  이 책 속 태아의 엄마의 모습에서 나를 보기도 했다.  배의 변화를 보기 위해 거울에 옆 모습을 자주 비춰보는 여자, 아이의 태동에 배 여기저기를 톡톡 두드리며 맞장구를 쳐주는 여자.  지금의 내 모습이다.   

  이 책은 출간된지 오래된 책이지만 이 내용만큼은 시대를 타지도 흐름과 유행을 타지 않을 불변할 이야기들이었다.  가볍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고 뱃속 아기가 더없이 사랑스러운 존재로 느껴지는 책이다.  이 책은 태아를 호흡하고 심장이 뛰는 한 생명을 넘어선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감정과 느낌과 생각을 하는 존재인 우리 아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출산 장면.  이전까지는 내게 출산이라는 것은 '(나를 위해) 진통 시간이 짧기를' '(나를 위해) 너무 심하게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아기를 만나기 위해 어쩔 수 없어 거쳐야 하는 하나의 무시무시한 관문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 책은 출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아, 우리 아기에게도 마찬가지로 출산은 두려운 것이겠구나' '좁은 산도로 주먹만 한 머리의 아기가 나오면 나는 몹시 아플거야.  하지만 안락하고 편안하고 어둡던 그 공간에서 좁은 길에 온몸을 비집어 넣어 나와 갑작스레 세상의 빛과 마주하는 우리 아기는 훨씬 더 두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출산이 조금은 덜 두렵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출산을 하고 나서 우리 아기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다.  "열쇠야, 정말 고생했어.  나오느라 힘들었지?  많이 사랑해줄게" 하고 말이다.   

  내 자궁안에 사랑을 보증금으로 10개월간 임대차계약을 하고 6개월째 살고 있는 우리 아기.  이제 4개월이 지나면 내 임대인은 그 안락한 방을 비워줘야 할 것이다.  나는 보증금으로 받았던 이 사랑을 내 아기, 내 임대인에게 평생을 살며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아이는 부모가 사랑을 주기 이전에 부모를 먼저 사랑했고 선택했기에 이 뱃속에 자리를 잡고 입주를 결정한 것이 아닐까?  우리 부부에게 사랑을 알려준 이 천사, 나는 앞으로 이 아이를 더욱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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