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 - 아이보다 더 아픈 엄마들을 위한 심리학
신의진 지음 / 걷는나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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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잘 사는 것만 같던 한 친구가 내게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  "첫 아이를 낳고 아파트 창 밖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데 순간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그런 생각이 몇 번 더 들었어"  정말 충격이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자살.  내 친구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데 나는 너무 놀랐고 가슴이 계속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내가 놀란 반응을 보이는 것이 무안하지 않을까 싶어 "야! 애 없는 나도 그런 생각 들 때가 있는데 처음 엄마가 된 넌 오죽했겠니. 그럴 수도 있지" 라며 대충 말을 맺었다.  그리고 바로 "이제는 그런 생각 안 들지?" 라고 묻자 "애 고생스럽게 다 키워놓고 내가 미쳤니? 내가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몰라" 하고 완벽하게 과거형으로 답하자 그제야 벌렁 이던 심장이 조금씩 안정되었던 적이 있다.

  임신 우울증, 산후 우울증 참으로 많은 우울증의 종류들이 여자, 그중에서도 엄마들에게 발병한단다.  산후 우울증을 앓는 여자들에 대한 다큐를 티뷔에서 본 일이 있고 한 엄마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강물에 던져버린 엽기적인 사건도 알고 있다.  ’세상에~ 가장 귀한 선물을 받은 엄마가 왜 우울하고 왜 저 지경이 되는 거야?’ 하며 이해 못 할 일이라는 나도 서서히 생각이 달라졌다.  ’그럴 수 있어.  그래서는 안되지만 그러고 싶을 수는 있어’ 라고 말이다.  

  한 가정에 귀한 딸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잔뜩 받고 살다가 자기를 바라볼 때 눈이 하트가 되는 남자를 믿고 결혼을 하고 사랑의 결실인 아기를 갖는다.  임신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산모도 있지만 부른 배를 부둥켜안고 온갖 졸음과 피곤을 뒤로하고 임신하지 않은 여자처럼 아등바등 직장생활을 하는 산모도 있다.  ’임산부지만 전과 같이 똑같이 일할 수 있다’는걸 보이기라도 할 기세다.  퇴근해서도 쉴 수 있는 게 아니다.  남편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좀 더 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지 그녀들을 완전하게 휴식하지 못한다.  배는 점점 불러오고 날씬하게 허리를 감싸던 옷들은 장롱 속에 집어넣고 펑퍼짐한 원피스에 쫄바지 하나가 그녀들의 패션의 전부다.  어째 살도 좀 붙은 것 같고 얼굴도 보름 달이다.  처녀적 예쁘던 그 모습은 다 어딜 갔는지.  그녀들을 그렇게 비로소 아줌마가 되어간다는 사실이 마냥 편하게 받아들일수만은 없다.  그렇게 열 달을 배에 품고 낳고 보니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빽빽 울어대는 애를 이리 어르고 저리 어르고 귓가에는 애 울음소리로 쟁쟁하고.  퇴근한 남편은 오랜만에(아침 출근 전에 보고 퇴근 후에야 보니 오랜만이지) 보는 아기라 이쁘다고 난리다.  그래놓고 잠들면 새벽에 애가 죽어라 울어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잔다.  엄마는 또 일어나 아이를 달래고 안아주고 보니 코까지 드렁드렁 고는 남편이 미워 죽겠다.  ’아이는 나 혼자 낳았나’ 싶고 ’지금 잠이 오나’ 싶고 나 하나를 공주같이 떠받들던 남편이 이제는 나 몰라라 하는 것에 화가 치민다.  제법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고 해오던 직장도 관두고 육아에 전념하기로 결심한 엄마는 눈물이 난다.  내가 왜 이렇게 됐나 싶어서.  이제는 무릎 나온 바지가 주된 패션이고 가슴에 지퍼가 가로 놓인 모양 안 나는 수유복만 입고 머리를 산발한 채 화장기 없이 앉아 있다.  아이는 자라며 엄마의 은혜를 알기는커녕 머리가 좀 굵어졌다고 ’내 인생에 간섭하지 마세요’ 하고 막말을 하며 엄마를 외면한다.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이 이렇게 우리를 길렀다.  정말 암담하다.  이게 우리 초짜 엄마들의 모습이다.  나는 엄마가 아니라 아직 이들의 삶을 그냥 이해만 할 뿐 체험해보지 않았기에 모른다.  그러나 나라도 절망의 순간에 여러 번 놓일 것 같다.  물론 ’내 남편은 그렇지 않을 거야’ 하고 믿기도 하고 그렇게 소망해보기도 하지만 사랑만 받고 살던 내가 한없이 사랑을 주고 보살핌을 주는 입장이 된다는 것이 어쩌면 속상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이에게 칸이고 쓸개고 다 꺼내주고 오로지 아이만을 위해 산다.  그러다 보니 그녀들을 아프다.  마음도 아프고 몸도 아프고....  결론적으로 행복을 위해 희생했던 자신의 삶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지 않은 엄마 아래 자라는 아이 역시 행복할 리 없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신의진 교수의 말이다.  듣기로는 신의진 교수의 소아정신과 상담 예약이 향후 3년까지 모두 찼다고 한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  이만큼 아픈 아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렇게라도 줄 서서 어떻게라도 해봐야 할 부모들이 3년치 분량 이상 있다는 얘기다.  끔찍한 이야기다.  엄마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엄마, 똑같이 사랑받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그녀의 자녀들.  신의진 교수는 100점짜리 엄마가 아니라 80점짜리 엄마가 되라고 한다.  완벽할 필요 없고 완벽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그저 좋은 엄마 정도이면 되는거다.  내 인생을 이 아이에게 올인한다고 내 인생 더불어 아이의 인생까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엄마가 될 사람이 자신의 부모에게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풀고 임신하라고도 권한다.  엄마는 자신도 모르고 자신의 부모가 했던 아픈 기억들과 닮은 행동을 자신의 자녀에게도 하게 된다는 말이다.  마치 고리처럼 주렁주렁 비슷한 삶이 답습된다는 얘기다.

  엄마와 아이, 비로소 둘이 분리되는 첫 단계는 출산이다.  그리고 탯줄을 자른다.  그러나 둘은 결코 각 각이 아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아이의 탯줄은 출생 후에도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말이다.  그렇기에 엄마의 감정과 기분과 행동이 아이의 모든 성격과 학습행동에도 드러나고 고스란히 엄마의 감정들과 행동들을 전달받는다.  그러니 아픈 엄마의 아이는 자연히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의진 교수는 대다수 문제 행동의 원인이 엄마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내담자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가 이상해요’ 라고 할 뿐이란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엄마로 인해 아이가 지금 아픈 것이라고.  그래서 신의진 교수는 엄마를 먼저 치료하고자 나섰다.  신의진 교수의 이런 노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이보다 더 아픈 엄마들(2002)에 이어 이 책은 엄마 살리기의 두 번째 책이다.  

  나도 엄마가 되면 책 속 그녀들처럼 내 자녀로 인해 문제를 갖게 될 수도 있다.  나 역시 아픈 엄마가 될 수도 있다.  희생을 준 대가로 더 아픈 상처를 훈장처럼 얻게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건강한 엄마 밑에 건강한 아이가 있고 바르게 커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엄마는 몸도, 마음도 건강히 하고 나의 삶을 아이와 함께 영위해가야 할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무조건 아이를 위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주파수를 고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나를 건강히 하고 내가 즐거운 것이 아이를 더욱 바르게 자라게 할 것이라고.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강한 가정이 엄마의 손에서 나오고 엄마의 심장은 온 대지를 품을 만큼 넓다.  부디 이토록 위대한 자신을 업신여기지 말고 당당히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을 위한 행복의 시간을 배정했으면 한다.  시대 속에 결코 소멸될 수 없는 이름, 엄마.  그 이름을 보배롭고 참되게 영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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