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와인을 즐기는 방법
휴 존슨 지음, 황근하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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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술을 못한다.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첫째, 일단 맛이 없다.  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반론을 가할 것이다.  가까이서는 남편이 있고 가족 중에도 여름날 시원한 맥주 한 잔의 맛을 예찬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맛이 없다' 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내게는 아무튼 맛이 없다.  둘째, 한 잔만 마셔도 병째 마신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진다.  셋째, 분명 취하지는 않았는데 속이 극도로 안 좋아지는 순간이 온다.  (이 셋째는 좀 이상한 것이 KGB나 CRUSIER 같은 맛난 술을 마시면 속이 안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  이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술을 잘 마시는 게 소원'인 사람이 있을까?  그게 바로 나다.  그러면 대답은 둘로 나뉜다.  젊은 사람은 '마시면 마실수록 늘어' 라고 하고 어르신들은 십 중 구는 '그거 잘 마셔서 뭐하게' 라고 하신다.  내게는 더 현실적인 대답이 후자다.  왜냐면 나는 결코 마셔대도 늘 것 같지 않다.  이 정도면 술과는 거리를 둔 채 인생을 사는 것이 맞을런지도.     그리고 와인을 추천해둔 페이지는 내게 실습에 있어 꼭 필요한 내용이었다.  가격, 원산지, 맛 등으로 와인을 추천하고 있었다.  이제 추천해주는 와인 한 병을 데려다가 그 맛을 볼 일만 남았다.  친해져야 사랑할 수도 있는거겠지?  그러려면 일단 시도가 필요할 듯.  내가 먼저 와인에게 손 내밀어 보겠다.  그 다음 와인도 내게 한 걸음 다가와 주겠지.  저자가 말하는 그 깊고 그윽한 맛과 온 혀 전체에 스미는 그 맛.  나도 알고 싶다.  자자, 이제 와인을 사러 가자.


  그런 내가 웬 와인?  와인은 마시건 못 마시건을 떠나 한 번 배워보고 싶다.  음....  왠지 분위기 있고 가볍게 즐기는 술처럼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와인이라고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남편이 선물 받은 와인이 몇 병 되는데, 역시 나는 한 잔도 마시기가 힘들다.  아, 코끝이 싸할 정도의 드라이한 맛의 와인은 와인입문도 제대로 못 한 내게는 그야말로 잔에 담긴 모습만 감상하다 말아야 할 술이었다.  아직 와인과 친해지고픈 간절함이 덜 한 것인지 스윗한 맛의 와인을 직접 사서 시음해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근데 이 책을 읽고 슬슬 시작해 보려고. 

  와인은 뭐랄까.  자동차 면허증과 같은 것 같다.  '면허증이 있고 운전을 못 하는 것' 이랑 '면허증이 없이 운전을 못하는 것'은 결코 같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와인을 알고 못 마시는 것' 이랑 '와인도 모르고 못 마시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게 내 생각이다.  현재의 나는 '와인도 모르고 못 마시는 사람' 이다.  앞서 말한 것과 지금 말하는 것만 보면 결코 알코올음료랑 내가 친해질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을 알지만 와인을 알고 싶은 걸 어떡해. 

  이 책을 다 읽고 '와! 와인은 예술적이고 학술적이기까지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히 와인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보다 훨씬 동기유발이 되리만큼 매력적이었다.  와인의 풍미를 묘사하는 대목들은 당장에라도 와인을 한 입 물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깊고 그윽하고 쌉싸래하고 혀 위를 풍부하게 감싸고 향이 좋고 색감이 아름다운....  저자의 와인에 대한 찬사에 나 또한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그 순간 마시면 정말 내게도 와인이 그런 맛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와인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태껏 와인 병을 왜 눕혀 두는지도 몰랐다.(그리고 바로 우리 집에 와인을 눕혀 두었다)  심지어 와인을 담은 잔을 가볍게 흔들어 마시는 이유도 몰랐다.  역시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도 있다고.  와인을 알고 나서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맙소사. 자신감까지....) 

  그리고 원산지별 와인의 특성을 기술해둔 부분을 보니 내게는 독일 와인이 제일 잘 어울릴 것 같다.  이 또한 마셔봐야 알 일이고 지극히 전문가의 입장이라 와인 초보인 내게는 그 맛이 그 맛이겠지만.  초보라 너무 드라이한 맛은 힘들어.  달콤한 와인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또 잔의 생김새가 다 다른 것도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보기 좋기 위해, 예쁘기 위해 다양하리라고 생각했던 무식에 가까운 무지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와인을 보관하기에 적정한 장소와 온도도.  그리고 와인에 충격이 가서는 안 된다는 것(병이 깨질까봐가 아니라 맛의 유지 때문이란다).  그리고 디캔팅을 하는 이유도.  읽기 전에는 디캔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로서는 장족의 발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와인은 마치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애지중지하는 저자의 애정이 글에서 흠씬 묻어났다.  와인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이토록 지적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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