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이라고 말해
우웸 아크판 지음, 김명신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한 아이가 맨발로 흙길 위를 달린다.  너풀너풀 옷자락이 휘날린다.  이 표지를 보는 순간 두 가지 생각이 일었다.  하나는 '아, 정말 자유롭고 천진해 보이는걸'이였고 또 하나는 '왜 이렇게 달려가나? 무슨 일이 있기라도 한걸까?' 싶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야 알았다.  후자쪽에 가까우리라는 것을. 

  아프리카 소설은 처음이었다.  참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었다.  이 책은 단편소설 모음집인데 '크리스마스 성찬' '가봉에 가기 위해 살찌우기' '이건 무슨 언어지?' '럭셔리 영구차' '부모님의 침실' 이렇게 다섯 편이다.  

  '크리스마스 성찬'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너무 마음이 아팠다.  허기를 잊기 위해 본드를 흡입하는 가족들, 홍등가에서 일하는 큰 누나, 어린 아기를 데리고 구걸을 나가는 작은 누나, 그리고 학교 입학을 앞 둔 남자아이 지가나.  딸 아이의 몸을 사준 무숭구(외국인)들에게 감사인사라도 하고 싶어하는 부모, 아이에게 본드를 주고 약에 취한 아이는 엄마를 물며 싸우고.  그러나 이들 부모를 욕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가난하기에.  감당할 수 없는 허기에 늘 직면해 있기에.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했다.  너무 아픈 이야기들, 그러나 담담한 필치로 그려진, 그래서 더 아프게 와닿는 이야기들이었다.  

  '가봉에 가기 위해 살찌우기' NGO 봉사자들의 구호로 오토바이도 생기고 먹을 것도 여유가 생긴 코칙파 그리고 예와.  그러나 그것은 꿈이었다.  그들은 NGO 봉사단도 아니고 삼촌은 두 아이를 팔아넘기기로 계약을 했고 그 보상을 받았던 것이다.  삼촌이 마음을 돌이키게 되기야 했지만 이 이야기는 정말 끔찍했다.  그리고 NGO 봉사자들이라고 믿었던 인자한 양부모들이 인신매매단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이가 느끼는 충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얼마전 양석일씨의 <어둠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아동매매, 아동매춘이 아주 잘 나와있다.  이 책 역시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거짓말이기 바라는 이야기들.  코칙파와 예와가 가봉으로 팔려갔다면 그들은 무슨 일을 했을까?  책에서는 '노예' 라고만 표현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성매매를 하게 될 아이라는 것을.  가봉으로 가기 전 마지막 교육의 밤에 삼촌이 했던 행동을 보면 할 수 있다. (그는 나체로 아이들 앞에서 만지라는 등 저속한 말들을 한다.  가봉에 가기 위한 준비라면서)  삼촌은 한 순간의 실수로 조카들을 궁지에 내몰게 되지만 이 삼촌에게 역시 분노가 일지는 않았다.  이 두 조카에게 한 몹쓸 짓을 내내 후회하고 괴로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거래를 깨기로 마음먹고 두 조카와 삼촌은 도주한다. 결국 삼촌은 죽고 예와는 울부짖으며 집에 남고 코칙파만이 탈출을 하게 된다.  어쩌면 코칙파가 한 달음에 도망쳐 나가는 길, 이 책으로 표지처럼 이렇게 아이는 달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무슨 언어지?'는 종교로 인해 단짝 친구가 서로 만나지도 함께 놀지도 못하게 되는 이야기다.  두 가정은 서로 종교가 달랐고 이교도 가정의 아이와 더 이상 놀지 못하도록 한다.  이 아이들이 서로를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을 통해 입만 벙긋거리며 나누는 따스하지만 안스러운 대화를 담은 이야기다.  한 편의 동화처럼 예쁜 이야기였지만 이 이야기의 배경에는 이교도라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등져야 하는 두 아이의 우정이 담긴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럭셔리 영구차'는 역시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일어나는 일인데 종교로 인한 갈등이 아주 잘 다뤄진 이야기다.  얼마전 <세계와 나 W 2>에서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립으로 인해 기독교인 마을에 학살이 일어난 일 있으며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책은 그 이야기를 이야기로 잘 풀어놓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아있었다.  그리고 이 버스 안에 탄 무슬림 주브릴의 갈등상황이 담겨있다.  또한 경찰, 족장, 군인 등이 시민들에게 굉장히 권위적인 태도로 군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보면 아프리카가 가난한 이유 중 하나가 비옥하지 못한 땅 문제도 있지만 '정부와 고위층의 부폐'도 큰 부분을 차지한단다.  이 역시 그런 모습들, 그들의 삶의 현장을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마지막 '부모님의 침실' 마지막 이야기는 르완다 내전에 대한 내용인데 후치족과 투치족의 싸움을 담고 있다.  <호텔 르완다(2004)> 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종족을 나누지 않고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한 후투족 남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부모님의 침실' 역시 같은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와 영화는 정말 닮았다.  두 편다 남자는 후투족, 아내는 투치족이다.  엔딩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무모한 종족간의 전쟁이 대학살로 이어진 끔찍한 사건들 말하는 이야기였다. 

  이 책의 제목 '한편이라고 말해'는 참 가슴 아픈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같은편이라고 말해' 다시 말해 '종교가 같다고 말해' '같은 종족이라고 말해' 하는 의미를 담은 문장이다.  그들은 왜 같은편이라고 말해야 할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다.  참으로 안타깝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프리카의 실상에 대해 이처럼 잘 말하고 있는 소설이 또 있을까?  시에라리온의 소년병을 지냈던 아이가 담은 에세이 이스마엘 베아의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책도 떠오른다.  하나가 되어 기아문제와 가난을 극복해도 모자랄 판에 그들은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총칼을 세우고 있다.  아프리카의 그 자유롭던 초원과 초목이 피로 물들고 있다.  너무 가슴 아프고 끔찍한 사건들, 온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국제보호기구의 지속적인 구조활동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그들도 그만 '우리는 다르지만 결국 같아' 라는 것을 인정하며 더불어 공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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