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 개정판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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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비야씨 책을 줄줄이 읽고 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그리고 이어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를 읽었다.  아, 자꾸 여행기에 손이 가는 것은 어디론가 가고 싶어서일까? 

  땅끝마을 해남에서 통일전망대까지의 도보 국토종단이다.  정말 대단하다.  이 말 밖에는.  예전 모 자양강장제 회사에서 희망 대학생들을 모아 국토대장정이라는 것을 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루 종일 걷고 텐트를 짊어지고 다니다 괜찮은 곳에 텐트를 치고 또 이동하고 마치 유목민처럼 야영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불볕 더위에 하루 종일 걸은 발은 그야말로 만신창이에 피부는 죄다 그을러 있었지만  나는 정말 그것이 너무 하고 싶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새로운 일 같았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대학생만 신청이 가능했다는 사실.  그렇게 열망했던 일이라면 홀로라도 했으면 되지 않았겠냐고?  물론 여러가지 핑계거리가 있다.  여름, 겨울 휴가 해봐야 기껏 며칠이었고 또 여자 혼자는 '박'자가 들어가는 여행은 절대 금기인 가풍때문이었다.  아니, 하고 싶지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막연히 하고 싶었던 것이고 실천이 뒤따를 만큼 열망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한비야씨는 그런 국토대장정을 홀로 해냈다.  당시 세계여행가로 알려진 한비야씨가 우리나라 여행을 했다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일이었다.  솔직히 지금이라도 당장 '우리나라 전국 일주 여행권 줄까?' 아니면 '유럽에 저기 저 나라 3박 4일 여행권 줄까?' 하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후자쪽을 택할테니 말이다.  생경함, 이국적, 낯선 것은 이토록 좋아하면서 편안함, 익숙함, 친근함은 이리도 나 몰라라 할 수 있다니.  모르긴 몰라도 이 책으로 인해 해외여행을 갈망하던 몇 몇 사람들에게 '그래 국내 여행도 좋을 것 같다' 하고 눈을 돌리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도보 국토 종단에 대한 체험기와 부록으로는 한비야씨의 여행 노선과 경비가 정리되어 있다.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한비야씨 말로는 국토종단기(더욱이 도보 국토종단기는)는 선출간된 책들이 없었단다.  그렇다면 이 책이 거의 시초가 될 만한 책일테다.   

  먼저 여행 곳곳에서 찾아본 우리 말 지명들이 얼마나 예쁘고 앙증맞은 뜻들이 많던지.  참 정겨웠다.  일제시대 창씨개명을 시작으로 마을 이름까지 죄다 한자로 바뀌었단다.  그냥 자연스럽게 여겼던 것인데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전혀 생각지 않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순 우리말 지명을 갖고 있는 도시가 '서울' 이란다. 대전, 대구, 부산, 인천, 광주, 울산 6대 광역시는 물론 모든 시 도를 뒤적여 봐도 순 우리말 도시명은 서울 뿐이라는 사실.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 섬이 천여개가 넘는단다.  그 중 백 몇십개가 유인도이고.  인도네시아 발리, 필리핀의 세부.... 잘도 알면서 내 나라 섬의 갯수가 이리 많은지는 정말 몰랐다. 책을 읽기 전에는 생각해 본 일도 없었지만 이 사실을 알기 전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면 "많아봐야 몇 십개 아닐까요?" 했을 것이다. 

  800.49.150  무슨 숫자일까?  약 800킬로미터를 49일간 걸었고 경비는 총 150만원선이었단다.  일수로 계산을 하면 하루 3만원 정도 된다.  그런데 야영을 하거나 정해진 숙소가 있지 않고는 하루 3만원도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많지 않은 돈이다.  매일 밤 묶어야 할 숙소값, 세끼 밥값 그리고 약간의 비상금(오로지 도보 여행이었기에 이 이상 들것은 없다)만 해도 3만원은 족히 넘는다.  그런데 한비야씨는 주로 시골 마을 혼자 사는 할머니 댁에 얹혀 자는 날이 많았단다.  아무리 시골 인심, 시골 인심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왠 배낭 하나 짊어지고 온 여자가 하룻밤 묶어가자면 선뜻 응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그런데 책에서 꽤 많은 시골 어르신들이 그렇게 해주고 있었다.  그에 모자라 아침에는 따뜻한 밥까지 차려줬다니 정말 놀랍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시골집이 방이 많은 것도 아닐테고 말이다.  도시에 사는 우리가 체감하지 못해서 그렇지 아직까지 정말 우리네 시골에는 인심이 살아있을까?   

  도보 국토종단.  의미있긴 하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하나의 수행처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반드시 걸어서' 라는 것은 자신과의 약속이고 결단이 따라야 할 일이다.  그런데 사실 여행을 '반드시 걸어서'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덜컹이는 버스도 타보고 기차도 타고 그렇게 떠나는 여행이 어쩌면 더 로맨틱하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반드시 도보로만' 이라는 규칙은 수없이 고된 상황 속에 자신을 몰게 될 것이며 이는 '어떠한 극한에도 맞서겠다' 는 결의 아닐까?  그렇다면 '주로 도보'가 아닌 '반드시 도보'로 여행했는지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순전히 내 다리로만 여행한 것에 대한 자기 만족을 위해?  아니면 걸어서 여행하는 것이 산과 자연, 나무, 풀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어서?  그도 아니면 여행경비 때문에?  내가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자칫 잘못하면 '반드시 도보'로 하는 여행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쉽게 말해 내세우기 위한 여행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행의 방식과 루트의 설계는 자기 마음이지만 이것이 진정 나를 위한 여행이라면 그런 방식과 루트를 정함에 있어 나름의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산전수전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그를 위해 불법을 행하거나 도의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도 무용담이 되어 들려지는 이야기는 영 마음이 불편하다.  일전에 읽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에서도 느꼈지만, 나는 최소한 공인은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아니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공인이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킬 것은 지키며 살자' 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한비야씨는 산불의 우려로 인해 입산 금지(등산객의 안전을 위한 권유가 아니라 발각시 처벌한다는 경고문이다)라는 팻말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산을 하여 산을 넘어 여행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만약 그럴 수 밖에 없었다면 최소한 '그러그러해서 그러했지만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아야 겠으며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길 바란다' 정도는 명시를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나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말할 수 없이 아쉽다.  한비야씨는 대다수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코드로 떠오르며 젊은이들이 그것을 표방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열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보기에 불법을 행하는 것을 보고도 결과만 괜찮았다면  '와~ 겁없네? 용기있어. 도전정신이 강한걸' 하고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에서는 밀입국하는 장면도 쓰여 있단다.  불법, 그것을 행했다면 그냥 혼자 알고 말일이지 '나는 이렇게 이렇게 했어. 그렇게 하면 안되는데 나는 그렇게 했어. 어때? 나 용감하지?' 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본다.  솔직히 내리 읽은 읽은 한비야씨의 두 권의 책을 통해서는 이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아쉬움이 크다.  독자 또한 선망하는 모델이라고 무조건 맹신하지 말아야 겠으며 분별력을 갖고 독서를 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이런 아쉬운 면도 있지만 역시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과 우리나라 국토에 대한 애정, 아직 살아있는 시골 인심을 발견하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 나도 우리 나라 곳곳을 더 많이 돌아보는 여행을 계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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