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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출간 즉시 찜해둔 책이다. 하버드 교수인 마이클 샌델의 강의를 옮겨둔 책이란다. 내 주의를 끈 것이 이 강의의 주제였다. '정의' 시대가 급변함에 따라 사회는 나날이 악한 범죄와 도덕과 양심의 부재로 인한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대학이건 도덕적이고 바람직한 사회 구성원을 양성하는 일보다 유능한 전문가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그 어떤 대학에서도 도덕과 양심을 논하지 않는다. 아니 우리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이미 끝났다. 고등학교만 가도 교사들은 학생들의 생활지도 이상의 것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내로라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있다는 하버드에서 이런 강의를 하고 있을까?
뉴스와 신문의 보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사건 사고들. 그 중 적지 않은 부분이 고위층 인사들이 관계된 일이다. 국회위원, 판검사, 박사 등이 연류되는 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개 로비, 뇌물수수, 비리, 학력위조, 위증 등이 그런 예이다. 사회 권위층에서의 부도덕한 일. 이것은 사회적 파장이 더욱 크다. 왜? 소위말해 '배울만큼 배운자들' 이고 '가질만큼 가진자들' 이기에 그 배신감은 몇 배가 된다. 그런데 왜 이들의 부도적한 일은 더욱 문제시될까? 몰라서 혹은 실수로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하여 정교하게 불의를 행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바로 이 점이다. 하버드라 하면 세계 제일의 명문대학임을 시인하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입학과 동시에 온갖 칭찬과 주목을 받고 졸업 후 누구보다도 안정한 삶이 보장된다. (그렇지 않은 일부도 있지만 대다수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속한 각 사회에서 리더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사회적 권위를 가질 확률이 높은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전공분야에 관한 수강과 공부만도 방대한 량일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이 도덕과 정의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일까? 왜 그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도덕적이고 정의롭고 양심을 가진 '진짜 지식인'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의 의지이자 노력이 아닐까 싶다. 이 점만 보더라도 이 학교는 명문일 수 밖에 없다. 더 놀라운 것은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이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면 마이클 샌델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될 무수한 사례와 예시를 던진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선택했던 그것이 진정 옳은가?'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는 전제로 반박을 시작한다. 여기서 이 책의 매력 하나가 더 드러나는데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칸트,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차근차근 매우 쉽게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칸트의 이론이 가장 도덕적이라고 여겨졌다. 모든 목적은 오로지 인간 그 자체에 있다. 요컨대 어떤 선행이 선한 목적에 있어야지 자신의 기쁨과 행복을 미리 계산하고 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도덕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거짓말을 절대 금하고 있다. 선의의 거짓말? 칸트의 말대로라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예를 들어 살인범이 찾아와 누군가를 죽일 목적으로 묻는다하더라도 거짓을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다. 실제로 칸트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았다는 예화에서는 절로 숙연해졌다. 그러나 다소 극단적인 이런 면으로 인해 이 매력적인 이론이 반감된게 사실이다. 또한 이상적일 뿐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역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입장이 최선일까? 그러나 샌델은 여기에도 빈틈이 있음을 증명한다. 이 뿐 아니라 모든 이론들을 쉽게 풀어주고 결점을 단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들 각각의 모든 이론은 완전무결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것을 살펴보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사람은 각기 다른 사고와 생활을 하고 있고 그를 준거로 '정의'를 정의한다. 이처럼 각기 눈금이 다른 자를 들고 하나의 물체의 길이를 잰다면 모두 다른 수치가 도출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가 인정하는 가장 합당하고 적합한 '자'을 채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어떤 것이 '정의'인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마이클 샌델도 결코 '이것이 정의요' 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들에 대한 만장일치의 하나의 답을 찾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덕이란 무엇이고 과연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고민해오던 문제에 대한 나의 답, 나의 견해를 더이상 강하게 주장하지 못할 것도 같다. 왜냐면 이 책을 읽는 동안 그것이 부당한 논리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형제도 존폐, 안락사 허용여부, 군필자 가산점 제도의 타당성 여부 문제가 그러하다. 내가 선택하고 지지하는 입장이 어떤 이론에 입각한 것인지를 안다면 그를 선택했을 때 따르는 문제를 조망하기도 쉬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들에 대한 나의 견해는 순전히 '내 기분대로' 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옳은 것이야'라는 억지주장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히 정의와 도덕과 같은 관념적인 문제를 떠나서 나의 생각과 결단에 있어서도 신중할 수 있도록 되돌아볼 기회가 되어주었다.
단순히 내가 알고 있는 도덕, 양심, 선행, 정의, 진리를 다룬 것 이상이었다. 이 강의가 왜 수강생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자발적으로 청강하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결코 답을 내리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가 어떤 도덕적 도구(이론들)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문제는 아주 달라진다. 이것들이 어떻게 다른 결과를 낳고 어떠한 이념을 전제로 한 것인지 아는 것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아주 명쾌하게 도덕과 정의에 접근한다. 아주 훌륭했다. 개인적으로 올 해의 도서들의 상반기 결산에서 이 책은 단연 '최고'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도 아쉬운 것은 결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하버드에 갈 일은 없기에 마이클 샌델의 강의를 실황으로 들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은 거의 슬프기까지 하다. 끝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식층과 사회 각계 리더층에서는 '도덕과 정의'를 반드시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아니, 모든 인간들은 이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읽어야 할 아주 훌륭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