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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지음, 이다희 옮김 / 섬앤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출간 당시 관심을 가져던 책이었는데 읽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다. 한 동안 잊어버리고 있다가 몇 권의 책을 주문하면서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이 책. '아, 맞다. 이 책 읽어보려 했었지' 그래서 읽게 된 책. 그런데 공교롭게도 최근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져 몇 몇 극장에 상영중이란다. 그러면서 이 책도 재출간이 되었는데 책 표지가 영화 포스터로 바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 표지가 더 마음에 든다.
와리스 디리. 나는 사실 모델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녀가 모델(그것도 꽤 유명한) 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소말리아에서 태어난 한 소녀, 결혼을 앞두고 가출하여 어쩌다가 런던까지 가서 모델이 된 그녀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책은 모델인 그녀보다 소말리아 여성들에게 자행되는 잔혹한 '할례' 라는 것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출간으로 인해 많은 아프리카 지역의 여성할례가 전보다 더 대두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유엔인권 대사로 임명되어 이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서게 되었다.
이 책은 한 편의 소년소녀 가장의 수기 같기도 했다. 부모를 떠나 이 곳 저 곳을 떠돌며 가정부 생활을 하고 그녀가 받는 고통과 삶의 무게는 열 살이 조금 넘은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 보였다. 나는 감사해야 할 것인가? 그래도 먹고 살만한 나라, 또 이 가정에 태어나 학창시절에는 잘 나온 참고서로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고 어린시절을 즐겁게 누리면 된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남자와 나의 선택으로 결혼을 하게 된 것을. 더욱이 할례라는 끔찍한 고통은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와리스 디리는 그렇지 못했다. 아니, 아직 많은 아프리카 여성들이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한다. 낙타를 타고 다니며 젖을 짜고 글을 배울 수도 없고 어머니를 도와 중노동을 해야 한다. 결혼 역시 마찬가지. 부모님이 원하는 남자(딸의 몸값으로 낙타를 충분히 줄 수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해야하고. 또 마취도 없이 녹쓴 면도날에 성기를 찢기고 그리고 그 곳을 아예 봉해버리는 고통을 감당하고 있다.
나는 할례라는 것이 포경수술 같은 것인 줄 알았다. 남자에게만 필요한 것인 줄 알았다. 간혹 여성할례에 대해 듣긴 했지만 역시 그와 비슷한 표피의 절개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할례는 정말 끔찍한 행위였다. 그것은 표피 정도를 잘라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취도 없이 진행되며 의사가 아닌, 동네를 돌려 살을 도려낼 줄 아는 자로(대부분이 노파이나 간혹 비용이 없는 경우 아버지가 딸에게 하기도 함) 부터 받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약처방은 없다. 대음순, 소음순, 음핵 이 모든 것을 면도칼로 도려낸다. 그리고 다시 음부를 꿰멘다. 소변과 생리혈이 배출될 아주 약간의 구멍만을 남겨두고. 그리고 발목부터 골반까지 동여매 움직임을 주지 않는 것이 이 행위의 치료법의 전부다. 연필을 깍는 커터칼에 손끝을 베이고 비명을 질러봤던 나로서는 그 고통이 지옥할 경험할 정도의 끔찍함이라는 것을 알 뿐, 그만큼의 고통은 겪어본 일은 결코 없다. 책에서 말한 그 장면을 정말 끔찍했다. 할례를 담당하는 노파는 피가 묻은 채 말라있는 면도날에 침을 뱉아 날을 씻어내고 게다가 칼은 둔하여 살을 거의 쥐어뜯다시피 도려내는 그 장면.
할례는 단 한 순간 미칠듯한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할례시에 죽기도 하고 과다출혈로 죽기도 하고 후에 상처부위가 썩어서 죽기도 한다. 또 살아남는 여성들을 평생 소변을 볼 때 몇 십분씩 변기에 앉아 있어야 하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날(모든 남자들이 알지는 모르지만, 한 달의 한 번은 '한 번이긴 하지만 몇날 몇일' 계속된다)에는 생리혈이 배출되지 않아 보통 여성의 평균 생리기간보다 더 오랜 날을 아파야 한다는 것을. 이것이 끝이 아니다. 배우자를 만나 첫관계를 갖게 될 때에는 배우자가 직접 아내의 음부를 칼로 찢어 열거나 그냥 '쑤셔넣어' 상처를 확장하게 된다. 할례의 이유가 바로 그것이란다. 음핵 등을 도려내어 성행위로 인해 얻어지는 '쾌감'을 근절시키므로 외도를 막고 배우자가 된 남성이 '처음'임을 입증하기 위해 그런 잔혹한 짓을 한다는 것이다. 누가 여성의 몸을 칼로 찢고 다시 꿰메고 그 상처를 때가 되면 다시 찢으라 했던가? 그것은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행위' 일 뿐이다. 이는 여성을 남성의 예속물로 여길 뿐이라는 미개한 사상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도 아프리카의 많은 여성들은 이것이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 여기고 이런 짓밟힘을 자각하지 못한 채 죽음과 싸우게 된다.
그런 일을 경험한 그녀가 회고하는 할례의 경험을 세상에 폭로함으로 인해 이 문제는 더욱 알려지게 되었고(이전에는 일부 인권단체에서만 주목하는 문제였다면) 죽어가는 아프리카 소녀들을 구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일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 부분에 행해지는 폭력이 아니고 누구나가 감추고 싶어하는 부분에 자행되는 일이라는 것을 볼 때 더욱 입을 다물어 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아프리카의 여성들은 '그저 겪어야 하는 엄청나게 아픈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피해 여성들의 여성할례 폐지에 대한 요구보다는 그런 여성을 바라보는 행복한(!) 여성들로 인해 이 문제가 인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그것이 남성이건 여성이건) 이 문제를 자각하고 아직도 여성 할례가 자행되는 아프리카 지역에 '비위생적이며 비인간적이며 남성을 위한 이 끔찍하고 잔혹한 미친 행위'를 근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슬펐고 아팠다. 그리고 피비린내가 났다. 이런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그녀는 그녀 자신과 그녀와 같은 수많은 여성들을 구원해 내는 심정으로 써내려 갔을 것이라 믿는다. 이런 육체에 자행되는 할례 뿐 아니라 또 다른 할례들이 지금 이 땅, 내가 있는 이 나라에도 존재한다. 나는 그것을 '정신적 할례'라고 부르고 싶다. 언제까지 여성은 남성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성적 배출을 위해 사용되는 연약한 육신일 것인가? 최근에는 전자발찌에 관한 법안도 나왔고 그것이 실제로 집행되고 있지만 여성이 성폭력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여성을 소유물로 여기고 그저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함부로 다루어도 나에게 대들지 못할 힘 약한 생명'이라고 여기는 그런 추악한 남성들의 의식의 변화와 자제력이 생기지 않는 한 할례와 같은 아니 할례를 닮은 행위는 수없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말했다. 조국이 자랑스럽다고. 모두가 그럴 이유 없다는 듯 말하는 그 조국을 그녀는 사랑한다고. 그녀의 자랑스런 조국을 살리는 일은 그녀의 문제라손치더라도 우리 지구상에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들, 그 중에서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에게 일어나는 범죄에 가까운 행위와 이를 대하는 사회적 묵인은 반드시 지탄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반드지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그리고 위에서 거론된 추악한 남성들은 그대들, 선량한 남성들을 향한 것은 아니니 오해 말기를 바란다. 그대들이 '나는 그런 놈이 아니요' 라고 생각하며 남자들을 마치 싸잡아 '변태'로 몰아가는 듯한 나의 글에 반감이 앞선다면. 부디 그대들도 그녀들을 위해 마음을 같이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남성을 위한 제물이 되는 그녀들의 눈물을 진심으로 닦아주고 싶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