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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혁명 - 로렌스 시선집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류점석 옮김 / 아우라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아마 가장 얇은 문학 장르의 책은 시집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학술서적의 그것처럼 아주 두툼하고 묵직했다. D.H 로렌스.... 로렌스가 시인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나는 그를 오로지 '채털리 부인'을 쓴 소설가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접하는 그의 시. 그리고 평소에 즐겨 읽지 않는(실지 다른 도서들 보다 접할 기회가 적은 것 같기도 하다) 영미시를 접한다는 설렘. 그러나 마지막 장까지 그 설레임을 간직하기는 힘들었다. 왜냐면 시가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시인데 왜 그토록 어렵게 여겨졌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시인(로렌스)과 독자(나)의 정서적인 차이가 아니었을지 싶다. 모호하고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없는 듯한 시보다도 더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모든 글이 그러하겠지만 글에 집중이 흐트러져 버리면 다시 글로 돌아가 집중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시는 그 어떤 문학보다도 시어를 중요시 여긴다. 시를 이루고 있는 단어 그리고 그 표현이 얼마나 시적인가 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그 시를 사랑하기도 하니 말이다. (소설의 한 문장에 마음에 들었다고 그 소설을 막연히 좋다고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번역시를 대할 때면 항상 궁금해진다. 이 번역가는 이 시를 시인의 마음으로, 느낌으로 잘 옮겨두었을지 말이다. 시라는 것은 활자 이상의 심상과 이미지를 독자에게 전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시인과 번역가 사이에 놓인 넓은 강은 어찌 건널 수 있을지. 어쩌면 이 시들이 내게 멀리 있는 듯 느껴졌던 것은 시인의 마음이 내게 곧바로 닿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은 아닐런지.
이 시집은 그의 길지 않은 일생동안 지어진 천여편의 시 중 152편이 수록되어 있단다. 참 오랫만에 읽는 시였다. 다른 책과는 달리 시집은 선뜻 집어드는 일이 적은 것 같다. 좀 더 시를 향해 고개를 돌려봐야 겠다. 그의 시를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모르겠고 그의 시를 모르겠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시는 읽는 것이 아니다. 시는 눈으로 보는 것이고 냄새 맡는 것이며 만지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활자를 들여다 보려 했던 내가 잘못 된 것은 아니었을지, 그 안에 숨을 뜻이 반드시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마치 숨은 그림찾기하듯 그것을 찾아 내려던 나의 시각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제,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시를 대해 보고 싶다. 다른 것 다 몰라도 이 책은 내게 로렌스가 소설가만이 아닌 시인이기도 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