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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좋은님 74인 지음 / 좋은생각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읽었던 시집이다. 얼마 전 친구의 결혼식 차 고향에 다녀오면서 책꽂이에 꽂힌 것을 가져와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시집은 일흔 네 명의 시가 담긴 옴니버스 시집이다. 게 중에는 지난 겨울 가평역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시의 저자의 이름도 발견할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여러 번 책을 펼칠 때 첫 번째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두 번째에 발견하고 두 번째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세 번째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재미 때문에 마음에 드는 책은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이 시집은 읽은 기억은 있지만 기억에 남는 시가 있어 다시 집어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표제가 눈길을 끌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또 한 권의 소중한 시집이 되었다.
시를 읽게 되면 항상 '시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시집은 나에게 또 다른 답을 준 시집이다. 어떤 시는 내뱉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쏟아놓는 토사물(가치없는 불결한 것이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같기도 하고 또 어떤 시는 가슴이 따뜻한 친구의 일기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시는 미로와 같이 지은이의 마음까지 찾아가기 힘든 시들도 있다. 그런데 이 시집의 시들은 일상 그 자체이다. 구태여 활자 위에 어떤 의미를 숨기지도 않았고 마침표와 쉼표에 의도를 감춰두지도 않은 시들이다. 솔직하고 정직한 시들이었다. 이 시집은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 시인의 그것이 아닌 시를 좋아하고 즐겨쓰는 아마추어 시인들의 시들이 엮인 시집이었다. 가끔 동인지나 아마추어 시인들의 습작들을 보면 연초록빛 새싹을 마주하듯 풋풋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시들이 그랬다. 하얗게 분칠을 한 뽀얀 얼굴이 아니라 방금 세수를 마치고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는 이십대의 마알간 젊은 얼굴처럼 순수했다.
난 시를 모른다. 그러나 '시' 라는 것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마음 속의 생각들을 적어보고플 때도 있고, 때론 내게 하고 싶은 말들을 끄적이기 싶기도 하고, 그저 보았던 것들을 남기고 싶어 그렇기도 하다. 어찌 써야 좀 더 멋진 시가 될지를 고민하고 시어들을 고르고 골라 몇 번을 고쳐 쓴다. 그런데 그렇게 쓰여 놓여진 그것들이 내게서 나온 것 같지 않고 낯설고 어색한 느낌만 폴폴 풍기고 있을 때가 있다. 분명 내가 쓰고자 했던 시가 아니다. 시어들을 고민하고 고쳐쓰기를 거듭할 수록 내 시는 진솔한 맛이라고는 없어지고 마치 조미료를 듬뿍 쏟아 만든 음식 마냥 인공적인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이 시집을 읽으며 나는 나의 시들이 때로 왜 그런 모습으로 지어지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시집을 읽고.... 그래, 나는 부끄러웠다.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나의 시가 나에게 낯설고 생경한 느낌을 주었던 것은 그것은 나를 담은 시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예닐곱살의 여자아이가 엄마의 뾰족구두와 붉은 립스틱을 고집스레 칠한 꼴처럼. 어쩌면 나는 시를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시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나의 시에 내 마음보다, 내가 본 것보다, 내가 쓰고자 한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억지스레 부여하려 했었고, 때로는 허황되게 쓰기도 했으며 그럴싸한 시어들로 채워넣고 겉모양을 꾸미기에 정신을 쏟은 것이다. 결국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 멋들어진 시 한 편이 그렇게 놓이는 것이다. 이런 시는 속은 알차지 않은데 요란하게 포장된 그럴듯한 선물상자와 같은 것일 게다. 상자를 장식하고 있는 리본을 끌러 풀어보면 아주 보잘 것 없고 초라한 것이 들어 있어 당황스러울 때처럼. 기교로 장식하고 포장하기에 급급했던 나의 시들은 읽는 이들을 얼마나 당황하게 했을까? 나는 글에 기교를 가하고 좀 더 맛깔나게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보석을 세공하듯 글을 가다듬는 것을 '옳지 않다'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글은 생명이 있어야 하고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들이 없는 빈주머니를 만지작 만지작 하는데 오랜 시간을 쏟은 것은 분명 어리석인 일이었다.
이 시집의 시들은 이렇듯 나에게 부끄러운 각성의 기회를 주었다. 시 한 편 한 편이 정직했으며 특별한 기교나 요란한 말치장을 하지 않고 가슴에 온전히 스미는 시들이었다. 시라는 것이 왜 어려워야 하며, 시라는 것이 왜 숨은그림 찾기와 같이 꽁꽁 숨겨진 의미를 들추어 내는 일이 되어야 할까? 시라는게 본디 그런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있는 소설과 견주어 보자면 둘은 분명 다르다. 소설보다 더 함축적이어야 하고 적절한 메타포가 필요한 것이 바로 시다. 그러나 형식과 기교에만 치중하는 것은 줄거리가 없는 너저분한 문장들의 집합뿐 아니겠는가? 솔직하고 정직하게 드리운 마음 한 편이 곧 시다. 이제 시를 쓰고 싶어질 때면 한 번쯤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마음이 없는 허울뿐인 시가 지어지기 전에 먼저 나에게 솔직하고 정직하자고. 그리고서 비로소 '시'를 쓰자고. 아무 것도 없는 겉멋들린 시는 이제 그만 쓰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