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내가 읽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으로는 <좀머씨 이야기> <콘트라베이스> <향수>에 이어 네번째 책이다.  이 중 스토리 그 자체를 가장 잘 살린 이야기는 <향수>인 듯 싶고 예술적 감각을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좀머씨 이야기>와 <깊이에의 강요>는 사뭇 철학적인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시집과 같이 얇아서 놀라기도 했는데, 이 두께에 담긴 깊은 내용에 더 놀랐다.  이 책은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 ......그리고 하나의 고찰 이라는 4개의 단편을 담은 책이다.  가장 인상깊은 단편은 역시 표제로 사용된 소설 '깊이에의 강요' 였다.  두 번째는 '......그리고 하나의 고찰' 이었다. 
 
  '깊이에의 강요'는 유능한 한 화가가 그녀에게 깊이가 없다고 말하는 평론가와 대중으로 인해 무기력 상태가 되고 결국 자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쥐스킨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한 인간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간 사람들의 경솔한 언변을 꾸중하는 것일까?  소심한 화가의 어리석음을 탁하려는 것일까?  둘 다로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세상의 평론가들이 종이 한 장 뒤짚듯 하는 태도도 꼬집고 있다.  말이 나와 이야긴데, 명색이 평론가라는 자들의 평론을 보면 어떨땐 왠만한 사람들의 '후기'가 더 현실적이고 잘 와닿을 때가 있다.  어쩌면 그들 또한 죽어버린 한 화가처럼 깊이데 대한 강박이 있을런지도.  우리도 흔히들 그런 말을 한다.  '그 사람은 깊이가 없어'  나는 깊이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보고 싶다.  가로의 폭이 좁고 세로나 높이가 긴 밀폐된 그 무엇을 보고 말할 수 있는 그 깊이?  그렇다면 그 깊이를 무형의 어떤 것에서 어떻게 담거나 발견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또한 깊은 것은 훌륭한 것이고 얕은 것은 그렇지 못한 것인가?  예술작품이나 인품을 보고 쉽사리 표현하는 '깊이'  이것이 얼마나 모호한 것인지.  이야기 속 화가는 그 깊이를 찾으려다 찾으려다 결국은 깊이 있는 떨어짐(투신)을 통해 숨바꼭질을 끝낸다.  어떤가?  우리도 누군가에게 깊이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의내리기 힘들며 발견하기 힘든 그 무언가를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또한 자신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승부' 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체스를 두는 두 남자에 대한 이야기인데 체스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여하튼 체스에는 많은 전략들이 존재하고 사고가 필요한데 폰을 살리기 위해 퀸을 죽이기도 하는 대담한 패자의 모습을 통해 체스의 대가가 체스판에서는 이겼지만 스스로가 패배자라 생각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뭔가 스릴있고 아찔한 필치로 담은 듯한 이야기나 체스를 모르는 나로서는 반밖에(혹은 그보다도 덜) 이해할 수 없었을 밖에.  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  에퓨~
 
  '장인 뮈사르의 유언' 네 편의 단편 중 가장 난해한 단편이었다.  또한 가장 쥐스킨트다운 독특한 단편이 아닌가 싶다.  화단에 장미를 가꾸려던 뮈사르가 땅에서 우연히 조개 암석을 발견하게 되고 땅은 모조리 조개 암석으로 이루어져있으며 땅은 조개화 되어가고 인간의 뼈역시 조개화 되어간다는 일종의 맹신(?)을 담고 있다.  죽음을 면전에 둔 한 인간의 (어떤 특정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무모하고 광기어린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장미를 심고 화단을 가꾸며 삶을 제대로, 잘 살고 싶은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절망의 메세지, 죽음앞에서 무엇에든 매달려 보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뮈사르를 통해 그려내었는지도.
 
  '......그리고 하나의 고찰'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 내지는 자아성찰을 가져다 줄 단편이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본다.  방대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겠으나 많은 책들.  이 책들을 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보게 했다.  인간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고 그것을 넘어선 정보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자연적으로 망각하게 된다.  그런 망각에도 불구하고 읽는다는 것을 계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에게 읽는다는 것은 그 내용을 기억하기 위함보다는 읽는 순간의 즐거움을 위함이다.  다시 말해, 나에게는 책이 정보전달의 기능보다는 유희의 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망각이 간섭한다손치더라도 별 억울함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방대한 정보와 망각의 사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원수지간일게다.   
 
  얇은 책에 담긴 네 단편이었지만 읽고난 뒤의 느낌은 몇 권짜리 전집을 읽은 듯한 기분이다.  이 책이 얇았으니 망정이지 두꺼운 자태로 왔다면 아마 읽다 몇 번이고 쉬었을지도 모르겠다.  휴~  파트리크 쥐스킨트씨, 이 책이 얇아서 감사하네요.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내용을 다루기엔 적당한 두께가 아닐까?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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