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을 기다려왔다. 그의 책으로는 <개미>서부터 이제껏 국내에 출판된 책은 모두 읽었다. <개미>는 그간의 통속적인 소설들에 찬물을 끼얹는 신선하고 기발하며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그때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는데 그 이후 출간된 책들 역시 아쉬움은 있었을지언정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그의 소설의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신선한 소재가 아닐까?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파피용> '이번에는 대체 무엇일까?' 기대하며 읽었다. 그리고 <신>이라는 작품 또한 머지않아 출간될 예정이라니 갑절로 반갑다.
근데 이 책은 어찌 이세욱씨가 아닌 전미연씨라는 번역가에 의해 번역이 되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문장 구석구석이 그리 매끄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살짝 한 문장만 보자면 p.17 '엘리자베트는 휴대 전화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우산을 받쳐 든 채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유머 감각을 발후하는 한 구애자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엘리자베트가 이어폰을 꽂고 우산을 들었다는 것인지 '한 구애자'가 이어폰을 꽂고 우산을 들었다는 것인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는 상황으로 봐서는 전자일 듯 싶다. 그리고 편집에서의 실수이겠지만 몇 개의 오, 탈자도 눈에 띄었다. 그간 이세욱과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 덩어리인마냥 익숙해진 나는 괜시리 텃세를 부리고 싶은지도. 아니, 나는 이세욱씨가 그리운거야.
그러면 이제 파피용의 겉모습을 한 번 훑어보자. 까만 우주의 광활의 공간에 둥둥 뜬 신비로운 푸른빛의 나비 한 마리. 표지가 참 예뻤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 그리고 얇지는 않지만 무겁지 않은 책. 그리고 <나무>에서 삽화를 맡았던 뫼비우스의 그림. 그의 만화같은 삽화때문이었는지 한 편의 공상과학 만화 내지는 영화같은 스토리였다. 그리고 이 책이 출간되기전 예약구매자들에 한해 한국독자에게 띄우는 저자의 메세지가 수록된 책을 준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몇 일 늦게 주문했지만 내 책에도 역시 미농지에 새겨진 그의 메세지가 있어서 즐거웠다. 물론 친필은 아니지만.
그러면 파피용에 올라타보자.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다. 그의 기발함과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문체나 표현력보다는 이야기 구성이나 상상력, 기발함이 두드러지는 작가다. 그래서 간결하고 어렵지 않은 문장들로 읽히는 속도도 빨랐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성서의 창세기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에서 스토리를 착안한 듯 닮은 이야기다. 동물의 종류별로 '파피용' 호에 탑승시키는 장면, 신(新)지구인의 이름 또한 이브, 아담이 되는데다가 갈빗대를 취해 여자를 만드는 것, 사물과 동물들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나.... 이브는 '파피용'의 창시자인 이브 크라메르를 야훼(여호와)하고 부르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는 책은 분명 아니었다. '노아의 방주'라는 그 큰 실루엣에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구체적인 상상력이 가미되어 완전 새로운 창작물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만약 '파피용'이 우리 시대, 현재 지구 어느 곳에서의 일이라면.... 당신이 '파피용' 탑승자를 모집하는 공고문을 읽게 된다면.... 지원할 것인가? 나는 절대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애시당초 지원할 자격도 않되겠거니와 설사 된다하더라도 탑승자 선별 과정에서 첫번째로 탈락할지도 모르지. 사실 지구가 험난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아름다운 별이다. 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거대한 깡통속에서 여생을 살고 싶지는 않으며 단순히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탐험가가 되기에도 겁이 많다. 또 틀림없이 지구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이 곳의 냄새, 이 곳의 소리 그리고 이 곳의 적절한(?) 중력까지도.
그렇다면 '파피용'은 성공이었을까? 실패였을까? 내 생각은 실패다. 새로운 터전에 도달하는 것으로 보자면 성공일런지 모르겠으나 창시자들이 꿈꿔왔던 새로운 세상, 즉 파라다이스 건설을 꿈꾸었다면 실패다. 어찌 단정짓느냐 할 지도. 그렇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 정착한 남, 녀. 그들로 인해 자손이 번창할 것이며 역시 그 별을 다스리는 인간들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 프로젝트는 결국 제2의 지구를 만들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탈출이 아닌 이주일 뿐이다. 이런 말이 있다. 생선을 싼 천에서는 비린내가 나고 꽃과 향수를 싼 천에서는 은은한 향내가 난다는. 또 비슷한 뜻을 우리 속담에서 보자면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정도? 다시 말해, '파피용' 호가 도달할 곳은 미지의 새로운 곳이며 그들이 탑승할 공간 역시 지상과는 다른 새로운 곳이다. 그러나 파피용에 탑승한 인간은 여전히 지구인이다. 인간들의 본질은 자체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천년이나 뒤에 있을 후세를 위한 신도시라 할지라도 지구에서 살아왔던 선조들의 생활과 사고의 방식은 여전히 후손들이 답습될 것이다. 결국 그들이 새로이 정복하게 된 그 별에서 역시 약탈, 살인, 강간, 전쟁, 어리석은 정치들이 있게 될 것이란 말이다.
'파피용'은 현 사회와 세계의 부조리와 오염(환경오염 뿐만 아니라)을 비웃고 있다. 그리고 삶의 모습과 삶의 터전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며 인간의 삶에 있어 통제와 규율과 법이 필요한지를 되짚어 보고 있다. 파피용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 우주선 안은 우리네의 과거다. 법도 없고 돈도 필요없던 곳에서 법이 필요해지고 어떻게 지도자가 생기게 되고 감옥이 생기게 되며 규범이 만들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단순히 공상과학같은 이야기를 넘어서 사회의 변화양상과 인류의 진화과정을 친절히 보여주는 철학냄새 물씬 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여전히 지구가 좋다. 나는 그 어느 별도 아닌 이 곳에서 천대를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