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오르간 - 쉼표와 느낌표 3 마음이 자라는 나무 37
유모토 가즈미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헌책방에서 데려온 11권이 책중 한 권이다.

이 책은 순전히 '그냥' 골랐다.

저자인 유모토 가즈미라는 일본 작가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이 책에 대해 서평을 읽었다거나 하는 일도  없이  그냥, 그냥이다.

 

이 책은 마치 표지 속 나무 오르간을 직접 만지는 듯한

약간 거친 느낌의 종이로 된 표지다.

떡 하니 놓인 풍금, 거친 느낌, 초록빛으로 새겨진 제목.

왠지 서정적이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 책이려니....

 

역시 일본인들은 그들만의 냄새와 색깔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나' 도모미와 동생 테츠의 이야기다.  더 넓게 보자면 가족의 이야기인데 전체로 뭉뚱그려 보았을 때야 가족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 책 속 이야기들은 도모미와 테츠의 이야기다. 

오르간은 이 가족들의 옛날을 회상하게 하는 물건일 뿐 실제 이야기는 화두는 아니다.

 

나는 책장을 넘기고 얼마가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을 '놈' 이라며 증오하는 도모미의 모습.

옆 집과의 땅덩어리의 소유권 문제로 손해를 보게 된 일에 앙심을 품고

옆 집 할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만치 저주하는 두 남매의 모습들.

그리고 옆 집 할아버지가 싫어하는 고양이 시체를 일부러 던져놓는 영악함과 발칙함.

 

나는 이것들이 건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문제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을 증오할 수도 있으며 물론 옆 집 할아버지를 미워하는 일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도모미와 테츠는 어린 아이들이다.  이제 초등학생 즈음?  테츠는 그보다 어린 듯 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미움과 증오의 대상에게 품는 구체적이고 숙련된 악의. 

이것은 마치 젖먹이 아기가 허공에 달린 흑백의 모빌을 바라보며

'모빌들이 참 기하학적이군' 하는 생각을 품는다는 것처럼 억지스러운 것이었다.

적어도 등장인물의 나이와 상황에 맞는 인물묘사와 대사, 감정표현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등장인물은 어린 아이들이요,

그들 속의 담긴 감정은 성인의 그것이다.  

발에 맞지 않는 엄마구두를 신고 어른흉내를 내는 여자아이의 모습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읽지 않고 덮어버리고픈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한 번 펼친 책은 절대 놓지 않는 내 순조롭지 못한 성격 탓에 끝까지 읽었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수록 작가의 스토리는 그런대로 구색을 갖춰가는 것 같았다.

와해된 가정의 두 아이.  옆 집 할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죽은 고양이를 찾아 다니다

오히려 고양이를 돌보게 되며 자신들의 아픔을 스스로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그리고 가족, 건전하고 화목한 가정의 소중함을 더불어 일깨우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녹차의 맛' 이라는 일본 영화가 생각났다.

그 영화는 가족의 소중함을 발랄하고 잔잔하게 그렸는가 하면

이 책은 가족의 소중함을 두 아이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소재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두 작품이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모두 할아버지의 비중이 크다. 

두 작품에서 할아버지는 추억을 상기시기고 부모와 아이들을 잇는 매개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이야기나 작가의 의도는 괜찮았으나 

등장인물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어의없는 인물묘사로 그 재미와 사실성을 반감시켰다.

작가의 후기에서 보니 이 이야기는 작가의 어린시절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작가는 어린시절에 일어난 '일' 만 기억하고 있을 뿐 

그 당시의 어린 자신이 느꼈던  '감정'은 기억을 못했었나 보다.

책의 표지와 제목처럼 잔잔하고 따사롭기만 하리라 기대했던 나의 예견도 완전 빗나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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