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은희경의 신간이다.  은희경 작품으로는 <마이너리그>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에 이어 세 번째인데

이 책은 '행복한~' 과 마찬가지로 단편모음집이다. 

  

뭐랄까?  은희경은 단편이 가장 그다운 것 같다. 

이 책은 등단한지 12년만에 9번째 책이라는데

작가로서 나쁘지 않는 성적이다. 

말은 똑바로 하자.  좋은 성적이지, 암~

이제는 한국현대문학에 '은희경' 이라는 장르를

따로 구축해도 될 성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은희경이 어떤 강박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소재에 대한 강박.  그것은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짊어지게 되는 문제인지도 모르겠으나 예전의 은희경과는 사뭇 다른 글들이었다.

내보기엔 은희경만 강박증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 주인공들도

모두 한 가지씩 강박증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우연, 고독, 육중한 몸, 가난, 곰, 지도에 대한 강박등.... 

 

은희경은 이번 소설집에서 새로움과 남다름에 고심하다보니

이야기들이 모두 몽롱한 느낌으로 비현실적인 세계에 닿아있었다.

어찌되었건 이것은 그녀의 강박을 덜어줄 새로운 시도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6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었다.  구태여 이름 대신 이니셜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이미지를 철저히 차단함으로

자신이 가공한 인물에 십분 빠질 수 있게끔 하기 위해?

그렇지 않으면 깔끔하고 지적인 느낌을 잘 살려내기 위해?

이유나 어떳든....  그러면 지금부터 모두 곱씹어 보자.

 

 

[1 segement - 의심을 찬양함]

어느 날 이유진은 잘못 배달된 사과 한 상자로 기묘한 인연을 얻게 되는데

그 사과는 옆 동 같은 호에산다는 동명이인의 이유진이라는 남자가 동을 빠뜨리고 주문해

잘못 배달된 사과라는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일을 연유로 사과를 보낸 남자의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이 동생이라는 작자와의 대화는 상당히 불쾌했다.

만약 그런 일이 내게 있었다면 나는 그런 무례하고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하는 상대와는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소설 속 이유진은 나와 다르기에

그 남자와 오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거기서부터 작가는 의도적으로 혼란을 불러온다. 

내가 봤던 그 사람이 그 사람인지, 내게 사과를 보낸 이유진이 진짜 이유진인지,

이유진이 있기나 한 것인지 온통 헷갈리게 만들어 버린다.

실체에 대해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야기는 어떠한 답도 주지 않은채 끝이 난다.

 

단순명료하고 깔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나와 같은 점을 발견할 때 그것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읽고 있는 책이 같다거나 이름이 같다거나 똑같은 핸드폰 벨소리를 하고 있다거나....

이 chapter에서 실존하는 것의 본질과 실체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2 segement - 고독의 발견]

고시원에서 시험준비를 하고 있는 K는 오래전 함께 하숙하며 지내던 J를 만나게 되는데

J는 K에게 예전 하숙집 주인이 경영하던 여관의 열쇠를 맡기며 그 곳은 부탁한다.

그 곳에서 '젤소미나' 를 만나게 되는데 이 여자는 가끔 자기가 다른 곳에서

여러 개의 자기로 나누어져 있다는 공상을 하곤한다.

 

K는 한 커피숍에서 J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해

S의 생일파티라는 일상적인 현실에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이야기는 꿈같다.  작가는 K가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지만

나는 틀림없이 K가 꿈을 꾸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옛연인 S가 떠나버린 후 K는 외로웠다.   젤소미나도 그의 꿈 속에 등장하는 여인인 뿐이다.

나는 젤소미나가 또는 예전의 K가 자신의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가 떠올랐으며

여러개의 자기로 나누어진 것 같다는 젤소미나에게서는 영화 도플갱어가 떠올랐다. 

 

 

[3 segement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이 이야기가 이 소설집에서는 가장 현실적이었다.  이 책은 뚱보들의 단상이다. 

보띠첼리의 비너스에 집착하는 화자가 다이어트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종일관 이어진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주 적은 량을 먹고 있는 뚱보를 보고는

"저 사람은 뚱뚱하기 때문에 저렇게 조금만 먹고 있는거야" 라고 하고

아주 많은 량을 먹고 있는 뚱보를 보고는 "저렇게 먹으니 저 지경이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될 만한 신진대사에 대해서도 믿음이 가는 글이었다.

지방대신 오히려 탄수화물을 줄이라고? 

흠....  어느새 다이어트 교본을 읽고 있는 듯한 내 자신을 발견. ㅋ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며 훌훌 벗을 여름이 다가와서인지

수영복 몸매에 대해서도 슬슬 생각할 때가 된 듯하다.

 

뚱뚱한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어쩐지 날렵한 몸이 더 좋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4 segement - 날씨와 생활]

소년소녀 세계명작을 할부로 구입한 소녀에게 책값을 독촉하는 한 남자가 학교로 찾아온다.

물론 책은 소녀가 산 것은 아니고 그녀의 어머니가 산 것이긴 하지만....

경제적 실무를 감당할 사람은 어린 소녀가 아니라 역시 부모일테니 말이다.

 

이 소녀는 그 남자를 순순히 집으로 데려가지 않고 일부러 걸어(잠시 도주도 했다가) 집에 도착한다.

책값을 종용하는 남자에게 엄마는 시원한 물을 내주며  고생많다며 격려 아닌 격려는 하는

모습을 보고 목덜미 뒤 어른의 큰 손바닥을 자욱으로 남긴 소녀는 괴이한 웃음을 웃는다.

 

그리고는 이야기는 다시 날씨에 관련된 짧은 기억들을 풀어놓고 있다.

그 뒷 이야기들은 어쩐지 세계명작 도서값을 종용하던 한 남자와

집으로 돌아온 소녀의 이야기와는 구색이 잘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5 segement - 지도중독]

블로그에 친구 M에 대해 발랄한 포스팅을 하는 B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M은 애니어그램 9번 유형의 사람.  여행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M.

여행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일상에 모두 녹아있기에 여행할 필요도 없다는 M

그가 친구 그리고 친구의 선배와 함께 캐나다로 여행을 가게 되는 이야기다.

 

M은 여행 내내 '곰'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P선배.  그는 지도에 빠져있는 사람이다.

둘이서 곰을 보게 되는 이야기. 

곰을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천연함과 위엄까지 느껴졌다.

 

제목은 구태여 지도중독이지만 모두 중독된 자들이다.

블로그질에 중독된 B, 곰에 중독된 M, 지도에 중독된 P, 와일드 로즈에 중독된 곰....

중독이야기.

 

 

[6 segement -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삶의 이야기를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에 빗대어 이야기 하고 있다.

유리 가가린이 우주 최초의 비행사가 된 것은 지구로 먼저 귀환했기 때문이란다.

우주에서 소멸되었거나 공단을 떠돌고 있을 비행사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출판사 사장.   그리고 은숙이라는 여자와의 만남. 

15년전 약속을 통해 출판사 사장은 자신의 예전 기억으로의 귀환에 성공한다.

 

나도 이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그러니까 내 나이 15살.  그럼 1993년도인가?

아무튼 그 즈음 나는 절친했던 친구와 2003년 11월 X일(아, 일자는 잊어버렸구나) 오후 2시

서울 성북구에 위치하고 있는 놀이공원 드림랜드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물론 나는 그 날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약속장소에 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약속 따위는 기억치 못할꺼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녀가 그 자리에 나왔는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 나처럼 약속을 뭉개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몇 해전 다시 연락이 되는 친구이긴 하지만 그 약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이야기 속 15전전의 약속에 대해 불현듯 떠오른

10년 후에 약속이었으며 지금은 4년전의 약속이 되어버린 그 약속에

나는 아직 귀환하지 못하고 있다는 어설픈 잡념들.

결국 나는 우주공간에 떠도는 수많은 비행사들의 넋과 함께 뒤섞여 있는 듯한 망각.

하나의 이야기를 읽고 종착점에 귀환하지 못하는 나의 어설픈 단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