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숙제,

당뇨의 공포에 대비하라!

2010년 국민 4명 중 1명은 당뇨로 고통받게 된다!

당뇨 대란의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인 사망 원인 중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자살에 이어 다섯 번째 높은 당뇨. 그러나 뇌혈관질환과 심장질환 뒤에는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 숨어 있다(미국의 경우 심장, 뇌질환 사망자 중 80%가 당뇨 합병증으로 밝혀졌다). 당뇨는 한 번 발병하면 그 치료가 대단히 까다로우면서도 아직까지 완치가 불가능한 무서운 병이다. 그리고 당뇨병은 별다른 자각 증세 없이 진행되어 무관심하기 쉽지만 어느 순간 합병증과 함께 죽음에까지 이를 수 는 공포의 난치병이다.

당뇨의 공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젊은 여성과 어린이까지 포함하고 있다. 어린이의 경우 비만으로 인한 당뇨 발병과 함께 유전적 요인으로 유아 당뇨 환자가 매년 100만 명 이상 발생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발 끝 괴사부터 신부전증에 심장병, 백내장에 의한 실명, 머리 끝 뇌졸증까지 끔찍한 합병증을 일으켜 죽음으로 내모는 당뇨병.

우리는 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김성원이 500만 당뇨인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당뇨 실전 공략기!

당뇨 환자가 되지 말고 당뇨 베테랑이 되어라!

하루 일곱 끼 식사하고 먹기 내기로 고기 30인분을 해치웠던 탤런트 김성원 씨. 맥주 1000cc를 한 입에 다 마셔버릴 정도로 대주가였던 그가 우연히 받은 건강검사 결과 청천벽력같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통보를 받게 된다. 평소 대한민국에서 제일 건강한 사나이로 자처하던 그의 건강상태는 당뇨에 고혈압, 거기에 기관지, 간, 신장, 어디 하나 멀쩡한 곳이 없었던 것. 최악의 상태에서 당뇨와의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35년 후 현재, 그는 텔레비전, 연극무대, 라디오를 종횡무진하며 건강하게 연기 생활을 하고 있다. 35년간 당뇨 환자로 살아오며 합병증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당뇨와 함께 공생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과 만나게 된다.

당뇨는 평생을 통해 혈당 관리를 충실히 하고 당뇨가 전하는 몸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면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으며 정상인과 같은 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전문가들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삶을 보여준 이는 보기 드물다. 사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혈당을 측정하고 제한된 종류의 식이요법에 꾸준히 운동을 병행하며 당뇨를 관리하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다. 식사 시간 조금 늦은 것만으로 저혈당이 덮쳐 길바닥에 쓰러질 수 있으며 겨우 양말 솔기 때문에 생긴 상처로 발이 썩어들어 갈 수도 있다. 당뇨 환자는 사소한 곳에서 닥쳐오는 당뇨의 위험으로 매순간 긴장할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당뇨를 더욱 악화시키기도 한다.

35년간 울고 웃으며 당뇨 환자에서 당뇨 베테랑이 된 탤런트 김성원 씨가 당뇨를 다스린 비법은 바로 “당뇨와 친구 되기”였다. 당뇨와 맞서 싸워 봐야 상처 입는 것은 당뇨 환자 본인이라는 것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후, 그는 당뇨를 아예 친구 삼아 자신의 건강 신호등으로 만들었다.

이 책은 그 눈물겨운 시행착오의 기록이자 그것을 극복하여 당뇨 베테랑이 된 대한민국 대표 당뇨박사가 당뇨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특별히 공개하는 당뇨 실전 공략기다.

김성원 씨의 또다른 직업은 당뇨홍보대사이다. 김성원 씨는 자신이 당뇨 환자임을 알리는 것을 넘어 당뇨홍보대사가 되어 당뇨의 위험을 경고하고 당뇨 관리하는 법을 많은 사람에게 알렸다. 그런 적극적인 실천으로 <생로병사의 비밀>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당뇨 베테랑으로 인정받아 출연한 이후로 종합검진 환자가 50% 높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김성원 씨가 자타가 인정하는 당뇨 베테랑이자, 대한민국 대표 당뇨 박사라는 호칭을 얻을 만큼 합병증 없이 당뇨를 다스려온 데는 본인의 치열한 노력이 뒤따랐지만 무엇보다 부인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했다.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시작된 사랑이 결혼에까지 이른 두 사람은 연예계에서도 소문난 잉꼬부부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돈독하게 한 데는 역설적으로 당뇨가 일조를 했다. 결혼하여 부인의 요리가 자신의 입맛에 안 맞자 김성원 씨는 외식이 주가 된  비정상적인 식사생활을 하였지만 당뇨 이후 부인이 김성원 씨에 입에 맞추면서도 당뇨식으로 손색이 없는 요리를 개발하며 뒷바라지를 하였다. 당뇨 환자에게 가족의 성원과  정성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다.


당뇨와 싸우지 말고 건강 지킴이로 만들어라!

대한민국 대표 당뇨 박사가 공개하는 당뇨 다스리는 비법!

일반적인 당뇨를 다룬 서적들이 실제 생활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당뇨 환자들이 행해 할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면 이 책에서는 가장 중요한 원칙부터 당뇨 환자가 하루하루 살아가며 경험한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해결해 나갔는지 실례를 들며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당뇨 환자의 자기 관리법부터 응급처치법, 영양 만점 맛있는 건강 레시피, 상처 없는 발관리법까지 당뇨 환자가 그 가족들 모두를 위한 필독서다.


1. 만방에 “나는 당뇨 환자요”라고 떠들고 다녀라

가깝게 지내는 지인은 물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당뇨 환자라고 알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회식 자리에서 억지로 술을 권하지도 않거니와 당뇨 환자의 제한된 식이요법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당뇨 환자라는 사실이 주지된 이후부터 주변사람들이 건강에 신경 써주고 당뇨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준다.


2. 까다로운 당뇨식을 웰빙식으로 바꿔라

당뇨 환자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것이 바로 먹는 문제다. 당뇨식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많고 맛없다라고 지레 판단하여 음식 조절에 고민을 하다가 실패하기 일쑤다. 하지만 당뇨식이라고 제한되는 음식은 거의 없다. 다만 제때, 골고루, 알맞게 먹는다는 당연한 기본원칙 아래 자기 체질에 맞게 칼로리를 조절하면서 먹으면 된다. 김성원 씨는 아예 당뇨식을 웰빙식으로 바꿔 풍요롭고 건강한 식단을 만들었다. 인슐린 사용 효율을 높이고 혈중 포도당을 조절하는 견과류를 매일 소량 복용하고 칼로리가 낮고 공복감을 채울 수 있는 해조류와 채소류로 식당을 풍성하게 했다. 미역국을 먹을 때는 미역만 건져 먹어 국물로 과량 섭취할 수 있는 염분을 제한시켰다. 촬영 중에는 간단하고도 영양가 있는 식사가 가능하게 현미 등의 잡곡을 둥글게 말아 계란 흰자를 입혀 살짝 구운 주먹밥을 허기가 있을 때마다 먹었다. 이 책에는 김성원 씨가 먹은 당뇨식, 그리고 부인이 개발한 웰빙식이 소개되어 있어 당뇨 환자와 그 가족들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3. 아플 땐 아프더라도 계획을 세워서 아파라

당뇨 환자는 감기 하나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아프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체는 그것에 저항하기 위해 글루카곤, 에피네프린 등의 호르몬을 분비한다. 그런데 이 호르몬들은 모두 혈당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여 인슐린을 요구하게 된다. 건강한 췌장이라면 조금 더 활동하여 초과된 혈당을 처리할 수 있지만 당뇨 환자의 경우 혈중 당이 급속히 증가하여 고혈당 혼수가 올 수 있다. 또한 다른 병으로 인해 체력이 떨어졌을 경우 신체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당뇨 환자의 인슐린이 부족해서 당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방을 분해해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 되고 지방을 분해하면서 생기는 케톤이라는 독성물질이 몸이 축적되면서 케톤산 혈증을 일으켜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뇨 환자는 몸이 아프면 평소보다 혈당관리를 더 꼼꼼히 해야 하며 혈당수치가 300이 넘으면 케톤 검사를 꼭 해봐야 한다. 케톤 검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면 소변에서 아세톤 향이 심하게 나면 바로 병원으로 가야 한다. 감기 하나에 걸리더라도 당뇨 환자는 달라야 한다.


4. 주치의를 두고 아내 보듯 병원을 드나들어라

김성원 씨가 우연히 받은 종합검사로 자신이 당뇨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됐듯이 당뇨는 초기 자각증세가 약한 병이다. 이른바 다식(多食), 다음(多飮), 다뇨(多尿), 이 3다현상이 당뇨의 초기 증세라고 하지만 이를 바로 당뇨로 연결하기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정기적인 검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자신이 당뇨 환자인줄 모르고 몸이 찌뿌듯하고 피곤하다고 하여 포도당 링거나 한 병 맞아야겠다는 식으로 대처했다가는 바로 죽음으로 갈 수 있다. 당뇨 환자에게 포도당 수액은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당뇨 환자로 판명되었다면 주치의를 두고 병원에 수시로 드나들어야 한다. 정기적으로 주치의와 면담을 통해 몸 상태를 체크하는 건 물론이고 상태가 조금이라도 안 좋다 싶으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리고 주치의뿐만 아니라 합병증과 관련한 다른 의사들과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한다. 김성원 씨는 전립선염 초기증상으로 비뇨기과를, 합병증으로 인한 백내장 등의 안과질환에 대비하여 안과를, 디스크와 무릎관절 때문에도 외과를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다. 당뇨와 함께 가는 긴 여정 속에서 의사는 안전한 여행으로 이끄는 길 안내자이자 동반자다.


5. 당뇨로 스트레스 받지 말고 당뇨를 즐겨라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지만 특히나 당뇨 환자에게는 치명적이다.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될 경우 부신피질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여 인슐린의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김성원 씨도 어깨뼈가 부서져서 기브스를 한 채로 촬영에 임해 액션 연기까지 할 정도로 완벽증에 일 중독 환자였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폭음과 과식으로 해소한 것이 당뇨를 불러일으켰다. 당뇨는 완치가 불가능한 병으로 평생 안고 함께 갈 수밖에 없는 병이다. 그렇기에 김성원 씨는 당뇨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고 친구 삼아 자신의 건강 신호등으로 만들었다. 매일 다섯 번 이상 하게 되어 있는 혈당 체크도 그냥 수치를 확인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즐거움으로 바꾸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식전에 체크한 혈당이 평소보다 낮으면 양을 조금 더 먹거나,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으면서 음식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제어했고 적정한 혈당이 조절되고 있는 상태면 맥주 한 병, 와인 서너 잔 정도 마시면서 친구들과 만남을 즐겼다. 당뇨 환자라고 병원이나 집안에 누워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적정한 관리와 가족과 주변인의 조금의 도움만 있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 모범적이고 생생한 증인이 바로 김성원 씨며 그 기록이 이 책이다.


지은이_ 김성원(金聖源)

연기자 김성원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의 또 다른 직업은 바로 한국 당뇨협회 홍보이사. 당뇨 대란 500만 명의 시대를 온몸으로 말하고 싶고 주의하라고 전파하고 싶다는 그는 35년 전 탤런트로 정상의 자리에서 맞은 불벼락 같은 병인 당뇨에 지지 않고 꼿꼿하게 살아남았다고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35년의 삶 뒤에는 끊임없는 자기관리와 공부가 있었다. 자가 혈당 측정계도, 변변한 당뇨 관련 먹을거리도 없는 그 시절부터 시작된 당뇨와의 한바탕 투쟁은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던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과 하루에 10인분을 먹던 대식가에서 절제된 식사로 변신한 그의 눈물겨운 도전으로 시작되었다. 술을 못 마시니 친구가 다 떨어져 나갔다고 투덜대면서도, 사실은 친구들에게 더 천천히 더 여유 있게, 더 넉넉하게 살라고 조언해 줄 정도로 이젠 건강 마니아가 된 김성원. 오늘도 혈당과 줄다리기를 하면서 힘차게 하루를 걷기로 시작한다. 당뇨병 환자들이 응급약처럼 애용하는 사탕과 비스킷도 챙기고 만보계가 늘 그의 곁을 지킨다.

1936년 1월 2일 평남 평양 출생으로 서라벌예술대학을 나와서 1957년 CBS 2기 성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TBC 탤런트로 옮겨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으며, 극단 <현대극장> 창립 단원으로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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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어깨, 까만 머리의 푸른 내 청춘 앞에 앉아 있는 코흘리개들을 보며, 이들과 함께 인생을 시작했으니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살기로 다짐했었다. 그런 삶도, 그런 한평생도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일기는 내가 선생 노릇을 그만두려 하다가 다시 교단에 서며 쓴 글들이다. 나는 감동 없는 일상을 못 견뎌한다. 어린이들에게 나는 늘 새로워야 했고, 어린이들 앞에 서서 나는 늘 살아 있는 생명 자체로 싱그러워야 했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운동장, 그 땅을 달리는 아이들의 튼튼한 발길들을 나는 오늘도 바라본다.

-머리말 중에서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교단에 서서

절망의 현실을 딛고 새롭게 틔운 희망의 기록!

‘김용택’이라는 주어는 ‘시인이다’라는 보어로 맞춤한다. 그의 서정은 섬진강을 노래하였고 자연을 온몸으로 껴안아 문명의 가차없는 파괴로 사라지는 농촌을 아파했다. 당대의 가장 예민한 속살을 아프게 짚어내는 그의 시는 ‘김수영문학상’을 통해, 자연을 보듬어 서정미가 가득한 시어들로 우리말의 풍요로움을 살찌운 시들은 ‘소월시문학상’을 통해 상찬되었다.

또한 ‘김용택’이란 주어는 ‘선생이다’라는 보어 앞에서도 빠지는 아귀 없이 맞춤하다. 스물두 살의 청년 김용택은 시골 분교의 초등학교 선생으로 발령받은 후 30여 년간 일별(一瞥)의 외도 없이 선생으로 살아왔다. “싱싱한 어깨, 까만 머리의 푸른 청춘에 코흘리개 아이들과 만나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살기로 다짐”한 그의 교사로서의 삶은 “미안할 정도로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를 마냥 행복한 교사로 머물게 하지 않았다. 아이를 아이답지 못하게, 선생을 선생답지 못하게 하는 교육현실에 그는 교사로서의 자신을 회의했다, “선생 노릇”을 그만두려 했다.

그렇게 맞이한 서른여섯 번째 교단. 절망의 늪에서 그를 끌어 올린 것은 아이들이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진메마을, 그곳에 자리잡은 덕치초등학교에서 김용택은 전쟁으로 교실도 없이 운동장 벚나무에 칠판을 매달고 수업을 받았고 배고프면 살구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수십 년이 지나 살구꽃 피는 봄날, 다시 돌아온 덕치초등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 다은이, 현수, 예영이, 하영이, 종현이, 희창이, 강수, 용민이 은희, 한빈이……. 터진 쌀자루 마냥 새어나오는 아이들의 부산한 몸짓과 갖은 말썽들에 쉼없이 잔소리를 해대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그 삶을 아름답다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그 아름다운 순간의 기억들을 차근차근 기록하기 시작하며 다시 교사로서 김용택은 오롯할 수 있었고 그 기록이 묶여 <김용택의 교단일기>라는 질박하고 따사한 책을 우리에게 선사하였다.

이 책은 시인 김용택이 천상 교사임을 보여준다. 아이를 아이답지 못하게, 교사를 교사답지 못하게 만드는 교육현실 속에서 교직에 회의하던 교사 김용택이 자신의 모교, 덕치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과 만나면서 새롭게 교단에 서며 일기를 쓴다. 여름방학 동안 구구단을 까맣게 잊어버린 아이들에게 알밤을 먹이며 시작된 2학기. 터진 쌀자루 마냥 새어나오는 아이들의 부산한 몸짓과 쉼없는 말썽들……. 바로 앉아라, 연필을 왜 그렇게 쥐냐, 이응을 왼쪽으로 돌려야지 왜 오른쪽이냐를 가르치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매일의 삶을 아름답다고 긍정한다. 돌부리 하나 예사롭게 지나치지 못하는 시인의 마음과 세상의 어긋난 것들을 허투루 넘어가지 못하는 교사의 마음, 그것이 김용택이고 그 마음의 결이 일기 안에 따사로이 배어 있다. 그래서 그는 천상 시인이고 천상 교사이다.


때론 입술을 깨물고 이를 악문다. 너를 이기려는 게 아니다. 내가 바로 서려는 거다. 내가 바르게 살려는 거다. 이건 사랑이다. 놀라운 사랑의 깨달음이다. 사랑의 획득이다. 산이 넘어지며 밀어도 끄떡없고, 꿈쩍 않는 막강한 사랑이다. 사랑을 넘어선 높은 도덕의 힘이다.

때론 입술을 깨물고 이를 악문다. 너를 이기려는 게 아니다. 사랑의 자세를 바로 세우려는 거다. 만인을 위한 사랑, 진실과 진리를 지키려 끝없이 싸우는 사랑, 세월이 가도 죽지 않는 사랑, 타협 없는 사랑만이 세상을 사람들 세상으로 바꾼다.

-11월 18일 일기 중


새싹같이 맑은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쓴 행복일기!

섬진강 시인을 다시 교단에 세운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 일기는 2004년 8월 23일 2학기가 개학하며 시작된다. 방학 내내 아이들이 그리워 괜히 학교 에 나가 교실 뒤편에 걸린 아이들 그림을 보며 미소 짓다가 다시 아이들이 생각나 한 사람씩 전화 걸어 안부를 물어보던 천상 교사인 김용택. 개학하여 선생 보니 좋다고 달려와 안기는 아이들을 보니 행복하기 그지없다. 이 아이들을 소중히, 훌륭하게 키워내야겠다, 제대로 선생 노릇 해야겠다, 새삼 다짐한다.

그러나 이 아이들 만만치 않다. 숙제 검사를 하니 하루도 일기를 쓰지 않은 애들이 있지 않나, 모두들 방학 전에 달달 외웠던 구구단을 다 까먹어버렸다. 화를 꾹 누르고 교과서를 나눠주니 다음날 잃어버렸다며 천연덕스레 이야기하는 아이들. 이 천방지축 아이들이 연신 일으키는 온갖 말썽과 사고들 앞에서 꿀밤 한 대 쥐어박고도 열이 식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그를 울리고 웃기며 교사로 살아가게 만든다.

혼내 놓고 그게 마음이 시려 밤새 끙끙 고민하다가 다음날 교실에 들어서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다는 양 “선생님~”하며 달려와 안기는 아이. 이순신 장군이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마지막 말을 “내 죽음을 ‘말’리지 마라” 바꿔 놓고도 사람들이 왜 웃는지 모르는 아이. 선생님을 “용택이, 용택이”라고 부르는 동네 오빠에게 화가 나 “난 우리 선생님 별명을 부르는 사람은 용서 안 하고 내가 선생님 대신 반은 죽여놓을 것이다”라고 일기에 쓰는 아이. 옆에 딱 붙어 서서는 졸졸 따라다니다가 어느샌가 허리춤을 꼬옥 껴안으며 “아빠”라고 부르고는 머쓱한 웃음 짓는 아이…….

이 아이들이 일으키는 명랑유쾌한 사고들에 키득거리다 어느 순간 짠한 감동이 다가오며 덕치초등학교로 가서 이 아이들과 만나고 싶어진다.


눈이 온다. 천천히, 가만가만, 조심조심, 조용조용히 온다. 함박눈이다. 나뭇가지에 얹히고 까만 나뭇가지 사이로 내린다. 아름답다. 곱다. 행복하다. 생이, 사는 일이, 즐겁다. 내 마음에 사랑의 물결이 인다. 평화다. 내 아이들과 내 아내와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작은 아이들에게 내 사랑이 눈송이처럼 가 닿기를, 오! 눈을 봐라.

-3월 5일 일기 중


감동을 희구한 치열한 삶의 기록, 가멸찬 내면의 살뜰한 풍경!

섬진강을 바라보며 아내와 자식과 아이들에게 보내는 감동의 연서(戀書)!

그의 책상 앞에는 로댕의 다음과 말이 붙어 있다. “인생은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다.” 그는 감동 없이 사는 삶을 못 견뎌한다. 그래서 그는 선생이다. 선생은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운다. 말과 글로 자신을 포장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생활은 그를 어느 한 자리에 머물거나 고정되지 않도록 늘 자극했다. 아이들은 그를 끊임없이 반성하게 하고, 그의 일상을 교육시켰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이 되기 위한 매일의 채찍질이 바로 이 일기다.

일기란 자기반성과 쇄신의 기록인 동시에 하루 동안 떠도는 자기 생각의 기록이다. 그래서 이 일기 안에는 시인 김용택의 서정이 담뿍 담겨 있다. “안개 속에 찾아온 햇살로 빛나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가을을 느끼고 “한겨울 새벽 달빛에 젖어” 자연과 화해한다. 그래서 그는 섬진강을 떠날 수 없다. 그의 서정을 쉼없이 자극하는 자연 속에서만 김용택은 오롯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손을 잡고 한없이 그를 믿어주는 아내가 있다. “아내에게 느끼는 이 한없는 사랑이 아이들과 세상으로 아름답게 번져나가고 스며든다.” 일기 속에서 다문다문 표출되는 아내에 대한 살뜰한 마음이 그리 정겹고 따사하다.


지은이_ 김용택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1982년 창비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 외 8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맑은 날>로 제6회 김수영문학상을, 1997년 제12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현재 자신의 모교 덕치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그리운 꽃편지>, <강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그대, 거침없는 사랑>, <그래도 당신> 등이 있고, 산문집 <작은 마을>,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섬진강 이야기>,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등이 있다. 이 밖의 작품으로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내 똥 내 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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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H화백과 미팅.

자연주의 요리를 표방하는 D식당에서 3만5천 원(값에 비해 그 음식의 질이란 다소 의문) 코스에

포도주.

다시 식객에서 야크 치즈에 포도주. 야크 치즈를 후라이팬에 살짝 녹여 슬라이스 사과와 청양고추를

같이 먹는데 그 맛이 참으로 묘하면서 먹을만하다.

사람들과 헤어지고 라커스에 들러 맥주 3병 더.

 

25일

이튿날 건강검진이라 9시 이후로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된다.

하여 맥주 2병 마시고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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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5-2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와 청양고추라 정말 색다를것같네요 달콤 매콤

blowup 2006-05-2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 화백의 실명 궁금함. D 식당의 상호 궁금함. 식객의 위치 궁금함. 야크 치즈의 맛과 상표 궁금함.
건강검진에서는 아주 살짝 위험 신호를 감지하시고, 차라리 조심하게 되기를 바람.
(이때 아무 이상 없으면 앞으로 더 위험하다구요!)

한솔로 2006-05-26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건강 검진 결과는 아직 안나왔지만 가장 걱정했던 간은 초음파 검사로는 아주 건강하다고 하네요.

한솔로 2006-05-2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무님 서재에 글 남겼습니다.
 

이 술일기를 계속 써야하는지 회의가 들지만...

다문다문 기억을 살려 미룬 일기.

5/17

회사 직원 퇴사로 회식.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다가 2차로 맥주까지.

간이 술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다.

5/19

회사에서 단체로 참선교육.

전날 두통으로 처음으로 결근하고 집에서 뻗어누운 김에

술과 담배, 고기 등과 떨어져 하루 보내보자고 결심을 하였으나...

소주, 맥주에 족발까지 챙겨온 사람들.

12시까지 마시다가 술과 안주가 떨어지자 그 시골에 치킨까지 배달시킨다.

좀 마시다가 먼저 들어가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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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5-2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선 교육을 받으러 가면서 저런 것들을 챙겨 온다는 말이죠? ㅎㅎ

한솔로 2006-05-22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놀랐습니다ㅎ
 

5월 11일

회사 사람들과 소주, 그리고 맥주, 맥주.

 

5월 12일

다행하게도, 회사에 남자 직원이 적은데

불행하게도, 그 이유로 남자 직원 모임이라 하여 두 달에 한 번 있는 술자리.

힘들게, 소주를 냅다 들이키는 1차를 견디면

조용히, 당구 치러 가는 사람들을 전송하고 빠져나간다.

라커스에서 맥주 두 병 더 마시고 상태 안 좋아 귀가.

 

5월 13일

라커스 라이브 파티.

서빙 보고 사진 종종 찍으며 맥주 마시다가

공연이 끝나 맥주 조금 더 마시다가

집에 가려다 원열 씨가 붙들어 소주를 더 마시다가

또 집에 가려다 원열 씨가 안쓰러워 집에 데려갔는데 맥주 한 잔 먹고 뻗어서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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