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츠라 마사카즈는 전영소녀라는 전설적인 물건에 대한 막연한 두근거림으로 다가왔다. 당시 소문만으로 그 야하고 화끈하다는 소리를 질리게 들어야 했던 나로선 드디어 마침내 전영소녀를 일본판으로 구하여 콧구멍 벌름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래핑을 뜯었을 때의 감각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러나.... 어떤 새끼가 이 만화에 대한 구라를 쳤는지, 그 모든 정보들은 한낱 꿈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순진하지 않았던 건지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야하다는 전영소녀는 쥐뿔도 야하지 않은, 아니 그보다는 어린 나이에도 괴상한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대체 팬티하고 브라자는 왜이리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 거야?

그렇다. 카츠라 마사카즈는 페티시즘에 관한한 일종의 확신범이었다.(슈에이사에서 나오는 수퍼점프에 중편 양식으로 1회 연재됐던 'M'을 보면 확실해진다.) 그는 내가 아는 한 그 어떤 작가보다도 속옷을 미려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능력과 애정을 동시에 갖춘 작가였다. 아아~ 그렇다. 내가 로빈슨 크루소의 사랑을 읽지 않고 페티쉬즘의 세계로 빠져들었다면 나는 그의 작품에서 툭하면 보여지는 엉덩이 살랑~ 살랑~ 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터, 안타깝게도 실제의 나는 그 예쁘장한 애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엉덩이를 들추고 말도 안되는 시추에이션으로 레이스의 세심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정성스럽게 양각된 듯한 브라자를 자랑스럽게 까보여도 전~혀, 척추에 달린 쿤달리니 따위는 커녕 뇌내 남성 호르몬 활성화의 기미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다 더 심각했던 문제는 이 양반의 만화들이 정말, 진심으로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전영소녀서부터 아이즈까지 주루룩.

그래서 제트맨이라는 이 양반의 후속작을 고르는데 그리도 망설였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리라. 그러나 '씨버, 그래도 미소녀 하난 기가 막히게 그리니까. 아무리 아스트랄 영역으로 날아간 재미를 보여준다해도 참자. 발정난 강아지한테 물린 셈 치자.'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충격적인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에서 여자는 달랑 한 명밖에 안 나온다. 오오 씨버, 그런데다 별로 오래 나오지도 않는다. 그런데다 미소녀도 아니다....

그. 그런데 뭐냐. 무엇이냐, 이 재미는. 대체 당최 이 놀라운 가독성의 회오리는 대체! 이, 이것이 마사카즈의 만화란 말인가. 정말로 그렇단 말인가아아~

...하고 비명까지 지른 건 아니지만, 어찌보면 도식적인 구조를 가진 안티히어로의 이야기, 그 1권은 정말 재밌었다.

이제 겨우 1권이 나온 상황에서 섣불리 단정하는 것은 금물. 하지만 제트맨이 여지껏 자의든 타의든 페티시즘에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줬던 카츠라 마사카즈의 만화 영역을 확장시켜 줄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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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기야 그 옛날부터 안 좋았지만 아주 2004년부터는 만성적인 소화불량에 걸려버리는 덕에 본의 아니게 소화제를 입에 달고 살게 됐다. 그러다보니 태생적인 호기심에 의거하여 소화제를 종류별로 다 먹어보는 일을 감행했는데, 부채표 까수명수에서 시작된 나의 소화제 순례는 다음의 작품에서 끝을 맺게 되었다. 두둥~

광동 위생천....

엄밀히 말하면 약제 성분이 들어가 있지 않아 약이 아니라 음료수로 분류되어 주로 편의점에서  팔리는 물건이다. 까스명수를 비롯한 소화제 전반이 풍성한 이산화탄소 작용을 통한 심리적 안정을 꾀함으로써 소화 촉진을 돕지만 몇몇 이에겐 더부룩한 느낌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으니 내가 바로 그 경우에 해당된다 하겠다. 이 놈이 내게 맞는 것은 명색이 음료수답게 그런 이산화탄소의 작용이 없이 멘톨과 계피의 적극적인 화학작용만이 만들어내는 시원함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약이 아니라는 의식 때문에 부담도 덜하고 뭐 맛도 있고-_- 덕분에 600원이라는 전혀 싸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자주 먹게 된다.

약장수 같구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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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은 2집을 뜯고 디비디를 돌렸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팔뚝 디게 굵구만....

라는 것도 잠시 당최 영어가 되야 말이지, 뭐라고 쏼라쏼라 2집에 대해서 설명을 늘어놓긴 하는데 하나도 알아 들을 수가 없어서 그냥 꺼버리고 음악을 틀었다. 음. 역시 좋구만....

1집을 샀던 건 그냥이었다. 말그대로 그냥. 굴다리 밑으로 튀어오라는 게 아니라 뭐 그래미도 탔다고 하겠다 여기저기서 천재라고 떠들겠다 에라 모르겠다 한 장 질러보자 마침 알바 월급도 탔고 앨범을 마구 사고 싶었던 때였으니.... 그래봤자 테이프로 구입했지만-_-

그러나 이 여자의 앨범은 시디로 사야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도 많이 돌려 들어서 완전히 걸레가 되버렸으니. 알앤비라고 하는 음악 장르에 대해 조또 모르던 나에게도 이 아낙의 노래는 무척이나 차분하고 무겁게 들려왔다. 뭐랄까. 그것은 꽉 잡힌 느낌이었다. 완고하다 싶을 정도로, 신인다운 흐트러짐이 없는 정제될대로 정제된 노숙한 음악. 그것이 당시 19살이었던 이 여자의 노래였다.

어제는 엠티비 코리아에서 엠티비 뮤직어워드를 틀어줬다. 그런데 오우, 알리샤 키스가 보컬, 스티비 원더가 키보드, 래니 크래비츠가 기타를 맡은 환상의 세션이, 말그대로 죽여주는 광경의 연출. 이야~ 저쉑들 졸라 잘 노는구나. 조또 부럽구마잉....

그런 그녀가 내한공연을 온댄다. 10월 13일. 그러나 에고롸핑 내한공연도 놓쳤는데 뭘 바라나. 하늘에서 공짜표가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내 상황이 한심하도다....

 

http://music.bugs.co.kr/Info/album.asp?cat=Track&menu=m&Album=19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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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십여년 전, 퍼스널 컴퓨러의 개념이 시바스 리갈과 동급이었고 피시방이 도래하지 않은 자리에 동네 오락실에서 열심히 아랑전설을 즐기던 아이들이 있었고 혹여 시대의 첨단을 걷던 이들도 하이텔 채팅으로 매달 나오는 전화고지서가 두려웠던 시절, 컴퓨러도 없었고 하다못해 8헤드 비디오도 없었던 나는 요즘 아해들이 노모, 풀버전의 생생한 시청각 자료로 아름다운 지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과 비교하여 한참 떨어지는 지식 습득 요건을 가지고 그 신비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에 아침마다 고통스러운 기운을 느끼며 깨어나야 했다. 그 시절 내 생활반경은 집-학교-도서관의 패턴이었는데 이것은 진리탐구에 매진하는 나의 모범적인 생활 자세를 잘 보여주는 증거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은 도서관에서 배웠다.

당연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식들도 도서관을 통해서 주로 습득하였는데 주로 여성대백과 사전과 제목만 봐도 뭔가 야리꾸리한 것들(아담이 눈뜰 때, 이브의 허스토리, 프랑스 중위의 여자 등등)이 그 취식 대상이었으나 나중에는 시청각 자료에서부터 얻은 지식들을 멀티플레이하게 활용하여 애들 동환줄 알았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부터 원초적 본능의 소설판 등등에까지 이르는 잡스러운 독서 목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뭐라해도 그 야하다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뒤지고 뒤져서 겨우 볼 수 있었던 그 한 구절, '...처녀를 찢어버렸다. 끝.'에 목숨을 걸던 시절이었으니,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소개하면서 실어놓은 마리아 슈나이더의 전신 누드 사진을 찢어간 어떤 개새끼가 한 편으론 공감되고, 그러나 결론적으론 만인의 즐거움이자 공유되어야 할 인민의 자산을 한 개인이 스스로의 독점욕으로 인하여 사유화하여 기쁨의 광역성을 떨어뜨려버린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시절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역시 로빈슨 크루소의 사랑이다.

원제가 로빈슨 크루소의 성생활이라는, 척 보기에도 딱인 제목을 달고 있었던 이 책은 기억이 맞다면 앞의 반절은 로빈슨 크루소의 과거 기억 속의 섹스와 '꿈결 같은' 이라고 낭만적으로 표현하기엔 꽤나 기괴한 환상 속의 섹스와 동물들과의 수간으로 채워져 있었고 뒤의 반절은 저 프라이데이와의 땀내나는 동성애로 채워져 있었다. 당시로서야 사드를 알지를 못했고 당연히 사드의 전통에서 보면 그리 대단할 것도 아닌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읽었을 당시로서는 충격이었다. 당최 정상적인,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평온한 정신 상태에서의 이성애적인 거시기가 안 나오는 거다. 로빈슨 크루소의 의식은 내내 뭔가 병적이라고 여겨도 좋을 정도로 거칠고 신경증적으로 묘사되고 있었고 오양의 이야기나 눈이야기, 벌거벗은 점심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직접적인 묘사들과 정신적인 가학-피가학 성향을 보이는 이 소설은 그 거칠고 직접적인 측면에서 아주 제대로였다. 하긴 무인도에서 혼자서 성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면 저리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은 꽤 시간이 지난 다음에 든 것이고 아무튼 동물과 하는 걸 왜그리 좋아했는지 작가의 묘사는 염소의 울음소리마저도 음탕한 유혹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취하고 있었다.

어떻게보면 바닷가를 전전하며 살았던 선원의 상상력에 로빈슨 크루소라는 전 시대의 아이콘이 붙여져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이 소설은 그 막 나가는 듯한 병적인 환상성이 되려 작품의 리얼리티에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저런 상황이 되면 정말 저렇게 살지도 모른다, 하는 그런 생각. 매일마다 염소와 살쾡이와 붙어먹길 즐기고 고목나무 구멍을 탐스럽게 바라보며 남자의 탄탄하고 매끈한 가슴에 비교하면 여자 가슴은 힘없고 기분나쁘게 물렁거리는 기분 나쁜 덩어리라고 여기게 되는.

 

그러나 주어가 '나'이지는 않을 듯 하다.

가끔씩 이 소설은 나로 하여금 페티쉬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게 만든 트라우마적 제어판 역할을 한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난 구멍보다는 여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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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얘기는 대학교재랍시고 만 칠천원씩이나 주고 사서 읽고 있는 책, 김준오란 양반이 쓴 시론 4판본으로부터 시작됐다. 난 이 책이 재미없진 않으나 가끔씩 상실되는 개념 덕에 심히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세가지가 있다...' 요러면 그 다음엔 첫째 어쩌구, 둘째 저쩌구, 셋째 지화자 이래야 하는 거 아닌감. 그런데 이건 뭐 첫째 어쩌구 하고 끝. 당최 두번째하고 세번째 개념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뭔 의미들이 그리 모호한지 죄다들 두리뭉실 안개를 잡는 건지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지."

"시 하니까 황삐이이 시인이 떠오르는구만."

"아, 그 양반? 내 아는 누님의 스승이었는데, 요즘은 뭐하고 지내나."

"어서 교수질하고 있다는 거 같은데. 그 사람이야 인세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지."

"그런데 왜?"

"뭐 개인적으로 다리 하나 건너서 걸쳐지는 사연이 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 동넨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게 정확하게 들어맞는 동네라니깐."

"그게 뭐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말야. 그런데 딴나라도 이럴려나? 이 나란 정경유착이 너무 심하단 말이지."

"그래도 한삐이이 문학상 같은 건 괜찮지 않으려나."

"글쎄, 모를 일이지. 적어도 동삐이이 문학상보다야 낫겠지."

"이삐이이 문학상은 어떻고. 대체 거기 심사위원들은 몇십년째 해먹는 거야. 그런데도 당선만 되면 한 방에 주류가 되니깐."

"이삐이이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는 거지 뭐. 지삐이이 있잖아. 이번에는 미술원 들어간다길래 그 미술원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려고 했지. 그런데, 뭐 한 두번이 아니잖아. 그냥, 넘기기로 했어."

"무슨 얘긴데?"

"그렇고 그런, 뻔한 얘기."

"뻔한 거야 뭐 인간도 동물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 치고. 그게 권력과 이어지느냐 마느냐의 문제지."

"정치와 관련되지 않는 일이 어디에 있겠나. 우리가 마시고 있는 카프리의 디자인서부터 시작해서."

"하긴. 아~ 지지부진이야. 난 아주 질려버렸어. 예전에 내 아는 고스트라이터가 한 얘기 기억나냐?"

"들을 때 식상하다 느꼈을 정도로."

"뭐 그 녀석, 이 나랄 떠나려나 봐."

"그거 멋진데. 그런데 아직도 마비 상태야?"

"그렇지."

"업계의 너저분한 이야기는 업그레이드 됐고?"

"매일마다 업그레이드될 걸. 아무래도 현장에 있는 이인 걸."

"지지부진한 삶이야. 결혼이나 할까."

"결혼이라. 나쁘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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