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부족들의 새로운 문학 혁명, SF의 탄생과 비상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83
임종기 지음 / 책세상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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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이 문학 주류가 되지 못한다는 인식은 SF팬덤에 있는 이들이라면 오래 전부터 느껴오던 바였다. 이 책은 SF문학의 역사를 정립함으로써 단순한 장르문학을 뛰어넘는 SF문학의 가치를 재점검해 봄과 동시에 그런 SF팬덤의 피해의식적 인식을 역으로 드러내보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초보 SF팬들을 대상으로 맞춰 쓰여진 이 책은 그래서 대략적인 개론서로서의 방향성을 갖고 있고 그에 충실하게 SF문학의 역사를 나누고 분류하며 간략한 스토리 해설을 함께 곁들이는 정석적인 모양을 띄고 있다.

SF문학의 탁월한 점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인간 상상력의 극한이란 점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시대를 품고 과거와 소통하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SF문학은 이야기의 근원을 꿰뚫고 있음과 동시에 탁월한 이야기꾼들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장르문학으로써 끊임없이 전문화된 SF문학은 스스로 게토를 만들어냈고 그 안에서만 소통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SF는 그 전문화된 경향으로 인해 쉽사리 건드리기 힘든 영역으로 자리잡은 측면이 있다. 이미 SF적 상상력이라는 것이 장르 안에서만 순환되는 것이 아니게 된 것처럼 저자가 지적했듯이 발라드를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에 의해서 게토 바깥의 세계와의 교류는 쉬지 않고 이어졌지만 그에 뒤따르는 반대급부적인 결과로 SF문학이라는 '순수성'에 대한 집착 또한 강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미 장르문학으로 자리잡기로 맘먹은 이상 그것이 굳이 주류문학이 되어야 할 필요는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이 순간, 주류문학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고 있음인가. 밀란 쿤데라와 네이폴의 소설들을 주류문학이라고 해야 하는가. 하지만 네이폴의 소설은 닐 스티븐슨의 신작보다 덜 팔린다.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한 정치연애 소설만큼이나 사이버 스페이스의 공간적-철학적 개념을 확립한 '뉴로맨서'는 위대하다. 그렇다면 불만의 근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문학의 쓰레기 분포율은 이미 시어도어 스터전이 SF팬뿐만 아니라 현학적인 말놀음에 지친 일반 독자들도 충분히 수긍할 정도로 간파해내지 않았는가.

카이사르의 몫은 카이사르에게로. 이것은 SF요, 하는 순간 그 자리엔 자연스럽게 결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장르문학으로서의 자부심으로 봐야지 소통 안 된다고 억울해 하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 SF문학의 영향력과 파급력은 피해의식을 느껴야 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 머리 굳은 주류 평론가들도 사이버 스페이스 상의 주관화된 객체를 표현하는 전자 그래픽 덩어리를 지칭할 땐 아바타라는 말을 써야한다. 그러니 너무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전파된 덕에 이젠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영역들을 아직도 인정 못하는 이들은 멍청해서 불쌍해 보인다라고 해야 마땅한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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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 Heaven 6 - 완결
사사키 노리코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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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사키 노리코의 작품군이 어딘지 비범한 인물들을 매개로 한 개그물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이 [헤븐?] 또한 그녀의 작품이라는 인장이 꽉하고 박혀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강한 캐릭터성을 자랑하는 그녀의 성향에 한가지가 더 붙여진 게 있다면 바로 장소. 이름 한 번 거창한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차려진 곳은 공동묘지인 것으로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지향했던 전작들(수의대, 병원)에 비해서도 설정의 아이러니가 주는 강도가 세다. 전채 요리가 이정도 영역에까지 이르면 언제나 경계해야 할 것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넘치는 일이다.

하지만 6권으로 완결이 난 지금 그런 우려는 기우였다고 보는 게 좋을 듯 하다. 이미 중견작가의 반열에 오른 사사키 노리코는 자신의 페르소나들을 이용해서 보기 좋은 것만 아니라 맛까지 있는 메인 디쉬를 만들어냈다. 물론 그 모든 이야기의 공식들이 그녀의 전작들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면 지적할 수 있는 바겠다. 하지만 작가에게서 어떤 굉장한 영역으로의 도약을 바란다면 사사키 노리코가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나 [파타리로] 같은 물건들을 만들어내길 바래야 하는 걸까. [헤븐?]은 작가 자신이 가진 틀 안에서 조용한 실험을 해보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실험은 충분히 유쾌했다.

그러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결말의 빈약함이다. 연재중단의 압박이 들어왔는지 의심케 할 정도로 이 작품의 라스트는 즐겁고 떠들썩했던 본편의 진행과정에 비해 볼품이 없다.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한데다 불성실한 후일담식 엔딩이 자리잡은 어이없는 마지막은 작품 배경에서 느껴지는 강한 아이러니 성향이 도입된 이유를 가늠케 함과 동시에 소재부족에 대한 의심과 그녀 자신이 만든 매너리즘이 지겨워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만든다.

과연 세상의 끝에서 그녀는 무엇을 본 것일까(...라지만 이렇게 심각할 뻔한 내용은 없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바이다.

솔직히 사사키 노리코가 '파타리로'를 그리면 어떨까 상상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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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지만 달리 할 일은.... 있지만 하기가 싫고. 이곳저곳에다가 잡다한 블로그나 공구리 대량양산형 홈피를 만들어놓고는 거의 쓰질 않고서 지내왔던 시간들. 처음엔 적립금 500원씩 준다고 하여 시작한 알라딘은 어느 때부턴가 적립금 제도를 없애버렸고(불황 탓이니 이해해주마.) 그간 두 번 마이리뷰에 뽑히는 덕에 공짜책들을 품에 안겨준 은덕도 잠시, 자연스럽게 신경을 끄게된 알라딘에 다시 돌아와보니 그래도 여기는 책 덕인지 탓인지 페이퍼 충성도가 꽤 높은 듯 하이, 심심도 하겠다. 할 일은 쌓여서 스트레스 팍팍이겠다, 그냥 마음대로 주절거리는 공간을 (또) 만들어보자 하여 이틀째 시작한 마이페이퍼. 쥔장의 성향에 의해서 언제 그만 둘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흐름에 몸을 맡겨라! 아아.... 시론 읽기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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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come-lately 2004-09-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그만두시더라도 리뷰 삭제는 말아주시길 간곡히...

hallonin 2004-09-28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변변찮은 글에 주시는 애정, 감사 드립니다. 지금으로서도 제 글에 대해서 꽤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도 용감하게 지우지 않고 버티고 있는 걸 보면 여기 올라온 글들을 제 기억 속에서 없애버리고 싶어지는 건 제법 훗날의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에고롸핑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것이 언제더라? 잘은 기억 안나지만 한 2년 전 쯤이었을 게다. 하이텔에서 엠피삼으로 올라와 있던 이들의 'swing for joy' 앨범이었는데 바로 그 날이 나로 하여금 시부야계 음악들에 빠지게 만든 계기가 된 날이 되었다.

에고롸핑의 음악은 유유자적하다. 가장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게 묘사되는 순간조차 조금 쓴 맛의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 시간처럼 느끼게 할 정도다. 오래된 바에 죽치고 앉아있는 이들을 위해 울려퍼질 찬가. 쓴맛이 주는 쾌감을 습득한 이들을 위로하는 송가. 어느 순간 울고있는 자신을 느끼게 만드는 부드러운 치유곡. 그것은 후회라는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가장 긍정적인 형태의 발현일 것이다.


 

http://music.bugs.co.kr/Info/album.asp?cat=Track&menu=m&Album=6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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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우울 -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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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란 과연 무엇인가. 저자는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자 자신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우울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나타나는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목처럼(이 책의 원제는 한낮의 악마이다.) 거리낌없이, 당당하고 버젓하게, 뻔뻔스럽게 찾아오는 불가해한 불청객이다. 우울증의 원인을 밝히는 데에는 모든 가능성이 고려되며 사소한 영역에까지 이르는 모든 문제들이 그 촉매가 될 수 있다. 모든 이유에 모든 결과라니, 이토록 광막한 해석만이 가능한 우울증의 씨앗은 그래서 모호한 안개 속에 제 몸을 숨기고 있는 짐승이다. 그러나 그 원인에 대한 무책임하다 싶을 정도의 추정은 차치하고라도 우울증이라는 재난에 가까운 현상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한사람의 우울증 환자로써 세번째 우울증 삽화를 겪어내면서 이 책을 완성한 저자는 우울증을 낱낱히 파헤쳐서 그 썩을 것을 지구상에서 박멸해버리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출로 책을 만든 것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무의식적인 터부의 영역이자 은밀하게 광범위한 재앙의 제국을 구축해놓은 현상을 인문학에 몸을 담그고 있는 이 특유의 감수성으로 역사에서부터 생물학에까지 이르는 가능한한 전분야에 걸친 관련 증거들과 사례, 이론들을 통해 차분하게 직시하게끔 만든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자신의 말마따나 스스로 프라이버시를 완전히 버려버린다. 그 결과 우리는 우울증이라는 이 기괴하면서도 설명하기 힘든 현상에 대해서 더없이 진솔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자신이 겪었던 우울증과 일탈에 대한 기억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저자의 태도엔 조용하지만 결연한 무언가가 있다. 그 담담함과 일탈의 강도가 주는 충격의 상반된 조화는 다시 한 번 '왜'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도대체 왜, 멀쩡하게 살아가던 사람에게 이런 일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우울증이 찾아온 걸까. 하지만 부질없는 동어반복처럼 그 정확한 이유는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그 이유를 알아보려 하는 작업은 책에서 꾸준하게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해와 (해결이 아닌)완화이다.

개인적으로 우울증이란 현상과 연이 있는 본인으로써는 이런 책의 존재는 축복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전혀 어렵지 않은 표현과 서술로 진실을 간파해내는 멋진 재주를 보여준다. 그것은 저자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비전문가라는 것과 그 자신이 우울증 환자라는 것, 그리고 이 책의 방향성이 이해와 동감을 기조로 하는 심리치료의 그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세가지 장점에 근거한 바다. 그래서 부분부분 흥미롭고 논쟁적인 소재를 제시하는 저자의 견해에는 체험에 근거한 진실성이 있다. 막바지에 이르러 우울증이 만드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저자의 태도엔 이런 류의 책들에서 자주 봐왔던 관습성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키에르케고르가 아닌 바에야 그런 결과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닌가. 우울증이란 놈이 옛날보다 훨씬 복잡하고도 치명적인 괴물이 된 현대는 베르테르가 너무 많아서 문제인 시대다. 그렇기에 이 책이 현실성을 갖춘 항우울증제가 된다는 건 가식이 아니라 미덕으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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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한번 읽고 싶은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