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하루차로 대구를 갔다왔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KTX의 스피드를 느끼고 싶었다. 과연, 빠르긴 빨랐다. 다만 모든 것이 좁았다-_- 통로도 좁고 의자도 좁다. 기차길의 풍류를 즐기고 싶다면 차라리 무궁화를 타는 것이 나으리라. 간이책상이 제공되는 것과 화장실의 편의성이 돋보인다는 것은 맘에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그 전에도 몇 번 가봤었지만 대구에서 전철은 처음 타보는 것이었다. 보통권이 저모양이라 조금 당혹. 나름대론 전자화를 추구한 산물이었다.

설연휴의 연장이었던 탓인지, 거리는 텅 비어있었다. 일년여만인가?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전에 갔었을 때나, 지금이나 이 도시는 곳곳에서 커다란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는 참소주 전속모델 한예슬의 얼굴을 제외하면 별 변한 것이 없어보였다. 유난히 값이 싼 돈가스, 다리밑 헌책방들, 온갖가지 중고물품을 쌓아놓고 파는 가게들, 서로 엉킨 시장과 버스정류장. 사투리들. 사투리를 들으면 내가 여기서 이방인이란 걸 느끼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 기분을 즐긴다.

한사코 얼굴을 찍히는 걸 거부했던 L양. 한 1년 반만인가. 아니, 그보다 오래 전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사춘기가 되돌아온 것처럼 여드름이 잔뜩 나 있었다. 그녀와 나는 진로와 직장, 결혼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녀에겐 사귄지 일년이 다 되어오는 세 살 연하의 남자가 한 명 있었고 그녀와 그는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상태는 아녔지만 그보다 더 행복하기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관계였다. 그것은 보기드문 안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습이었다. 27살에 자살을 하겠다고 가끔씩 얘기했던(그러면 나는 아예 쇼를 하라고 비아냥거리곤 했다) 그녀는 그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은 지금, 혼란스럽지 않아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은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변했다. 이렇게까지 진행되면 나자신에 대한 자각으로 이야기가 이어져야겠지만 그런 수고는 안 하기로 생각한다. 그녀는 나에게 캬라멜 마끼아또와 인도음식을 사줬고 난 그녀가 먹다 만 것까지 먹어치울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아침 6시 30분에 움직여서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45분이었다. 번갯불에 콩튀기는 것 같은 여행이었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8시간 전에 다운이 완료된 카데나 레온의 누드집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