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야마 기신은 물론, 저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집 <산타페>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지만 이미 그 이전에도 다수의 남녀 인기 배우-가수들의 누드사진집으로 명성을 쌓아오던 양반이었다. 난 누드사진을 모른다. 그래서 동대문의 어느 헌책방에서 만 이천원을 주고 산 <산타페>에 매혹된 것은 시노야마 기신의 신들린 사진기술 때문이 아니라 일요신문에 실렸던, 흰옷 사이로 왼쪽 가슴이 은근하게 삐져나와있던 미야자와 리에의 사진 때문이었다(다행히도 상당수의 남자들이 나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산타페>를 구입했기에 내 죄의식은 공범의식으로 발전하여 한층 덜어질 수 있었음이다). 그러나 그런 문외한인 나에게도 미야자와 리에의 통통한 몸이 그려내는 <산타페>의 몇몇 장면들은 온전히 사진만으로도 나를 매혹시켰다. 그 사진들은 벌거벗은 여자의 몸이 예술적인 승화를 이뤄냈던 옛 유화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금욕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줬다.

이후 미야자와 리에는 잇따른 스캔들과 거식증으로 한참동안 슬럼프에 빠져 지내면서 아이돌 출신 연예인의 정도를 열어제꼈던 만큼 그 몰락의 정도도 선구적으로 보여줬고 시노야마 기신은 몇 건의 누드작업을 꾸준하게 진행시키면서 누드사진계의 거장(혹은 큰손)의 위치에 오른 것으로 들었다(밥벌이의 수명과 관련된 오래된 교훈의 재증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배우로서의 미야자와 리에가 그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올 즈음, 나는 시노야마 기신의 물건을 하나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나신의 레온>. 거유계 그라비아 아이돌인 카데나 레온의 첫 헤어누드집이기도 했다.

여전히 누드의 문외한인 나는 카데나 레온의 몸이 미학적인 측면에서 어떤 탁월함을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그녀의 몸에서 강조되는 부분은 짧은 다리와 볼륨감이 강하지 못한 허리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두툼한 가슴뿐이다). 하지만 이 사진집은 전체적으로 무척 경쾌한 느낌을 준다. <산타페>가 소위 예술적인 사진의 영역에서 '산타페'의 자연과 융합되는 미야자와 리에의 몸을 잡아내려 했다면 <나신의 레온>은 온전히 레온이라는, 매우 특화된 육체적 특질을 가진 여자의 몸만을 온전하게 잡아내려 한다. 그래서 사진 속의 여자는 미야자와 리에의 굳은 얼굴과는 달리 상당 부분에서 웃고 장난스런 몸짓을 내고 보는 이를 유혹하는 표정과 포즈를 만들어낸다. 2001년부터 디지털카메라를 쓰기 시작했다는 시노야마 기신이 잡아내는 색감은 밝고 경쾌하며 퇴폐스러운 순간에도 무겁지 않고 적절하게 유혹적이다. 이 사진집은 금욕적이었던 십여년 전의 저 작품과는 반대 지점, 그라비아 사진의 상품성과 부분적으로 공유되는 영악한 유혹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것은 그라비아 모델이었던 카데나 레온의 위치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아니면 시노야마 기신이 지난 세월동안 그만큼 변했다는 걸 뜻하는 것일까. 뭐 <산타페>를 구입했던 이들 대부분의 순수했던 동기처럼 그런 건 상관없이 얼른 카데나 레온의 AV데뷔를 바라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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