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만화는 길창덕, 김형배, 김수정, 배금택, 김동화와 같은 작가들과 함께 내 어린 시절의 어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그림실력에 대해서 따로 언급하는 것은 싱거운 일이겠지만, 그저 휙휙 갈긴 것 같은 그의 그림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훨씬 나이가 들어서였고 더군다나 그 그림이 붓으로 한획에 그려지는 것이란 걸 알았을 땐 그 느낌은 경이에 가까웠다. 예전에 그가 삼성 SDI의 사내광고를 위해 그린 일러스트를 봤을 때를 기억한다. 그 그림은 한마디로 압도적이었다.
고우영 특유의 그림에 실려 그의 인물들을 살아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네들의 걸걸한 대사들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 그가 그렸던 [수호지]를 읽고 있었다. [수호지] 내용이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만큼이나 워낙에 기분파적인 면모가 있는지라 작중 인물들이 설파하는 인의에 맞지 않는 모순된 행동이라든지 상황상의 의도된 시원시원함이라든지가 후반으로 갈수록 눈에 거슬려서 결국 읽기를 그만뒀지만 고우영이 만들어낸 인물들이 입에 걸치고 다니는 그 구수한 대사빨과 특유의 정감있는 생생한 면모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확실한 미덕으로 다가왔다.
고우영은 고전을 해석함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을 반영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그것은 이나라를 구성하는 가장 많은 이들의 시선, 즉 소시민적인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동시에 그가 택하는 텍스트가 우리에게 익숙한 동시에 역사의 권위를 등에 업은 고전이란 점에서 그의 작품은 항시 우상파괴적 면모를 보인다. 생각해보자. 책이나 라디오나 제대로 퍼지지 않았던 시절, 동네 아이들이 푼돈 몇푼 가지고 동네 어른에게서 삼국지 이야기를 듣던 시절에 그 노인들은 자신의 세월이 묵은 입속에서 삼국지를 거르고 부수고 조르고 솎아내며 한바탕 세상을 어루어내던 입담꾼이었을 것이다. 고우영의 고전은 바로 그 노인들의 걸직한 구담에 기대어있다. 그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이 시대를 초월하는 소재와 관념의 개그를 유별나게 펼쳐보이고 있음에도 보는 이에게 전혀 어색하지 않게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은 그 인물들이 가진 진한 페이소스가 옛입담꾼 노인들의 세상풀이처럼 우리네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우영은 고전을 그리되 고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그리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는 능력있는 만담꾼이자 예리한 풍자가였다.
부디, 평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