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usic.bugs.co.kr/Info/album.asp?cat=Base&menu=m&Album=3814

처음 나왔을 때, 인터뷰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거절하고 메인스트림에 대해선 가차없이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 그들을 보고 시대를 잘못 타고 나왔나 싶었다. 상업적으로나 처세적으로 볼 때 결벽증은 썩 현명한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것은 이미 80년대 초에 끝난 트렌드이기까지 했다. 그들이 그런 일종의 애티튜드를 치워버릴 정도의 심정적 여력이 있었다면 대중에게는 자극적인 펑크락으로만 대변되던 홍대 인디씬의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진정 제대로 된 밴드가 좀 더 일찍 가요판에 들어서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아쉬움.

하지만 어떻든, 그들의 노래는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모던락이 가지는 놀라울 정도의 서정성과 소박함을 일깨우는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감수성의 표현. 그래서 그들은 홍대인디씬의 몰락 이후에도 살아남은 몇 안되는 밴드가 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4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치기어렸음을 고백했다. 그때는 그러지 않았어도 됐었는데 조금 과하게 결벽적으로 보였던 경향도 있었다고. 하지만 4집 앨범은 그들이 성숙해졌음을 뜻하는 것인지 지루해졌음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그토록 치기어렸음에도 반짝반짝 빛났던 1집을 듣는다. 뭐라 하든 그들은 훌륭한 밴드다. 4집의 주춤거림에도 불구하고 각각 3년의 간격을 두고 나왔던 1집-2집-3집을 잇는 감각은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다. 그래서 그들이 그토록 폐쇄적이었던 것은 오만보다는 수줍음 때문이라고 믿게 만드는 이 소박한 앨범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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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적긁적 2005-04-29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한 얘기로 1집 이후 그 보다 더 나은 앨범을 못만드는 대표적인 밴드라는 생각. 내 공부의 친절한 동반자가 되었던게 그네들의 1집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훗.
 


다 부순다.

이 영화의 제작진이 사우스파크의 제작진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보여줄 일련의 성향이란 것은 작중에서 그들이 노래 하나를 바쳐가면서 씹어대는 마이클 베이가 [나쁜녀석들] 속편을 제작한다고 발표했을 때 정도로 뻔한 것이었다. 물론 그 더럽게 재미없는 블럭버스터는 막판에 생뚱맞게 소규모 [더 록]을 선보이는 통에 꽤 실험적인(동시에 돈도 많이 든, 더욱 재미도 없어진) 영화가 되어버렸지만 [팀 아메리카]는 그딴 미덕은 엿이나 먹으라며 한치의 오차 없이 욕설과 이죽거림의 고속도로를 그대로 달려간다. 이 욕설과 이죽거림의 블럭버스터는 구조적으론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었던 극장판 [사우스파크]의 틀을 그대로 빌려온다(김정일에게 노래 한소절 부르게 만들어주는, 전작에선 후세인에게 제공했던 배려까지). 물론 블럭버스터의 법칙에 따라 더 지저분하고 더 노골적으로 만들어서. 2차원 종이에서 SD에 가까운 인물들이 보여주는 살육잔치보다 3차원으로 보다 리얼하게 발전된 인형 캐릭터들이 벌이는 살육과 섹스극은 꽤 자극을 주는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팀 아메리카]는 모든 것을 씹는다. 전례에 비추어 조지 클루니나 멧 데이먼, 팀 로빈스 같은 인물들이야 이젠 익숙할 정도이긴 하지만 에미넴과 마이클 무어 같은 씹기의 대가들마저 사냥감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의 씹기는 전작에서의 씹기처럼 마냥 느긋하지만은 않다. 어째서?


얘네들 다 죽는다.

그들이 만든 영화 중 내용적으로나 시기적으로나 가장 정치색이 강한 작품으로 완성된 [팀 아메리카]는 '마이클 무어의 영화를 보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인간들이야말로 공화당보다 문제있는 핫바리들이다'라고 주장했던 그들의 엄격한 가치중립적 정치성에도 불구하고 우파적 무정부주의의 유령에서 자유롭기가 힘든 작품이다. 마이클 무어의 극영화인 [캐나다 베이컨]에서 모티브를 빌어온 듯한 전작 [사우스파크] 극장판에서 캐나다라는 존재는 그 정치적 엉뚱함 때문에 개그적인 스타일로 밀어부쳐도 정치적함량에 대한 의문이 상당 부분 희석될 수 있었지만 여기서 드러나는 북한과 중동이란 존재들은 실존하는 세계정치의 자극적인 기능축이란 점에서 쉽게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어지는 아이콘들이다. 그래서 '팀 아메리카'의 입을 빌어 막판에 설파되는 약한놈-미친놈-엄한놈의 삼자 정의는 꽤 위험스럽게 보여진다. 왜냐하면 그 단순무식한 논리가 보여주는 파시즘에 우파적 사고관의 결정체가 들어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에서다. 물론 그 삼자정의란 것이 영화속 어떤 '술주정뱅이'의 입에서 나온 것을 그대로 빌어온 것이라는 것과 연기라고 하는 일종의 사기극 수단의 연장에서 보여졌다는 점에서 제작진이 보여주고자 하는 농담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있지만. 아마도 또하나의 너저분한 농담극이었어야 할 이 영화를 사우스파크를 볼 때처럼 즐겁게만 볼 수 없는 것은 '팀 아메리카'가 내세우는 정의란 것의 논리가 그 단순무식함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그대로 옮겨놨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여기서 보여지는 극도의 희화화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힘든 것은 아마도 이 이야기가 우리 현실과 지독하게 겹치는 것인 점에서도 찾을 수 있겠다. 이젠 헐리웃의 전통이 되버린 듯 중국식 궁전과 차이나 드레스가 돌출하는 영화 속 북한이란 공간의 환상성은 역으로 북한이란 국가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물론 이 씹고 싸는 영화 속를 원맨쇼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활약한 트레이 파커는 북한에 김정일외에 뭐가 있는진 신경도 안 썼을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미군의 폭격은 영화속 [팀 아메리카]가 그런 것처럼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문화유적들을 아작내놓은지 오래다. 여기서 보여지는 그 무수한 극단적 패러디들은 기이하게도 대부분 현실로 드러난 것들이다. 그 황당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이 웃을 수 없는 시뮬라시옹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끊임없이 의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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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umps.co.kr/03_new_submain/sub1.php

합성인 줄 알았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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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정식출간. 그냥저냥 기다리던 중이긴 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상당히 매력적인 작화를 빼면 썩 쓸만하진 않은 작품이다. 어쩌다가 중증 히키코모리가 된 한 남자의 고군분투 에로게임 만들기를 축으로 하여 온갖 병적인 인간들과 더불어 현대 일본사회의 신경병리학적 양상들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개연성이 별로 없는 개그들의 연쇄가 만들어내는 거부감 팍팍 이는 오버액션의 향연으로 보는 이를 짜증나게 만드는 포스가 상당하다. 단순히 패러디만 나와도 무조건 환장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다-_- 그림이 아까움.

[다중인격탐정 싸이코]도 연재되는 잡지 '소년' 에이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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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만화는 길창덕, 김형배, 김수정, 배금택, 김동화와 같은 작가들과 함께 내 어린 시절의 어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그림실력에 대해서 따로 언급하는 것은 싱거운 일이겠지만, 그저 휙휙 갈긴 것 같은 그의 그림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훨씬 나이가 들어서였고 더군다나 그 그림이 붓으로 한획에 그려지는 것이란 걸 알았을 땐 그 느낌은 경이에 가까웠다. 예전에 그가 삼성 SDI의 사내광고를 위해 그린 일러스트를 봤을 때를 기억한다. 그 그림은 한마디로 압도적이었다.

고우영 특유의 그림에 실려 그의 인물들을 살아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네들의 걸걸한 대사들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 그가 그렸던 [수호지]를 읽고 있었다. [수호지] 내용이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만큼이나 워낙에 기분파적인 면모가 있는지라 작중 인물들이 설파하는 인의에 맞지 않는 모순된 행동이라든지 상황상의 의도된 시원시원함이라든지가 후반으로 갈수록 눈에 거슬려서 결국 읽기를 그만뒀지만 고우영이 만들어낸 인물들이 입에 걸치고 다니는 그 구수한 대사빨과 특유의 정감있는 생생한 면모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확실한 미덕으로 다가왔다.

고우영은 고전을 해석함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을 반영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그것은 이나라를 구성하는 가장 많은 이들의 시선, 즉 소시민적인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동시에 그가 택하는 텍스트가 우리에게 익숙한 동시에 역사의 권위를 등에 업은 고전이란 점에서 그의 작품은 항시 우상파괴적 면모를 보인다. 생각해보자. 책이나 라디오나 제대로 퍼지지 않았던 시절, 동네 아이들이 푼돈 몇푼 가지고 동네 어른에게서 삼국지 이야기를 듣던 시절에 그 노인들은 자신의 세월이 묵은 입속에서 삼국지를 거르고 부수고 조르고 솎아내며 한바탕 세상을 어루어내던 입담꾼이었을 것이다. 고우영의 고전은 바로 그 노인들의 걸직한 구담에 기대어있다. 그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이 시대를 초월하는 소재와 관념의 개그를 유별나게 펼쳐보이고 있음에도 보는 이에게 전혀 어색하지 않게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은 그 인물들이 가진 진한 페이소스가 옛입담꾼 노인들의 세상풀이처럼 우리네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우영은 고전을 그리되 고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그리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는 능력있는 만담꾼이자 예리한 풍자가였다.

부디, 평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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