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적, 스티븐 킹을 막 알기 시작하면서 그의 소설들을 닥치는대로 읽어가고 있었을 때, 끝끝내 읽히지 않았던 소설이 하나 있었다. 그 소설의 제목은 [부적]으로 이 책의 저자인 피터 스트라우브와 스티븐킹이 공동창작을 한 소설이었다. 그런데 번역 때문이었는지 내가 너무 어려서였는지 [부적]의 도입부를 소화해내는 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내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어려움을 안겨줬다.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주인공의 동선이 전혀 연상되질 않았다. 난 주인공이 고아인지 톰소여인지도 구분을 못했다. 결국 1장의 세장 정도 분량만을 겨우 읽고 마감일이 닥치기 하루 전에 도서관에 책을 돌려줘야했다.
그렇다고 후일에는 읽어냈느냐. 결국 나는 실패했다. 이후에도 두 번 정도 더 도서관에서 부적 전권을 빌려다놓고 읽어볼려고 노력했지만 역시나 읽히지 않았다. 스티븐 킹의 딴 소설들은 국수 넘기듯 휙휙 넘겨댔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느끼던 [부적]의 난해함은 순전히 공동저자인 피터 스트라우브의 책임으로 돌아가야했다.
저주받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적인 살인사건과 이제 관으로 들어갈 날만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구전되는 괴담이 얽히면서 진행되는 이 작품은 오락소설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내며 오직 독자를 쫄았다 풀렸다 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든 기량을 쏟아놓는다. 수십년간을 함께 해온 노인들 각자의 유령괴담들이 실은 하나의 실로 이어져있는 것이고 그들의 유령이 환상으로 그들을 지배하고 농락한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 속 괴물들은 이야기 속에서 나와 현실의 마을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그 전개의 거침없음은 작품이 가진 호러소설로서의 충실한 가치를 웅변한다.
그러나 제목이 유령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떤 다양한 파노라마로 유령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띄엄띄엄 들려오는 노인들의 이야기는 유령이라기보다는 모호한 괴담이나 자기고백에 가까운 모양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수십년을 잇는 저주받은 마을의 이야기라지만 앤 라이스의 [위칭아워]처럼 그 연대기적 연속성이 그리 도드라지진 않는다고나 할까. 노인들의 이야기 속 저주와 악몽이 현실화된다는 그 연계성도 그리 극적이진 않은 편이다. 작가의 힘은 오히려 현재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흥미도를 집중시키는 데에 더 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흥미롭게 읽을 순 있지만, 말그대로 오락소설이랄까. 그 이상으로 더 나아가는 무언가는 발견하기는 힘들다. 영화화된 게 1980년이라니 벌써 25년은 훌쩍 넘긴 고전파 킬링타임용 소설. 제대로 읽지조차 못한 [부적]보다는 나은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