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레즈퀸으로, 관우는 포니테일로, 제갈량은 로리캐릭으로, 초선은....


얼마 전에 인터넷 뉴스와 관련 커뮤니티들에서 꽤 유명세를 탔던 삼국지 트랜스물, [연희무쌍]입니다. 어떤 기사에선 중국네티즌이 분노했다라는 제목까지 달아가면서 이 게임에 대한 홍보를 친히 해줬지요. 어찌되었든 [삼국지]의 유명인물들이 미소녀가 되서 나온다는 것이 꽤 화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형 [삼국지]가 처음은 아닙니다. 시오자키 유지가 그리는 [일기당천]은 삼국지 속 인물들이 현대의 미소녀로 거듭나서는 서로 개패듯이 팬다는 내용으로, 진흙 레슬링의 [천상천하] 버전을 보여주는 듯한 작품입니다. 더군다나 텔레비전 애니화도 됐죠. 너무 인기가 없었던 탓일까요.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천상천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전혀 추천할만한 물건이 아니란 것만 알아도 충분할 듯 합니다(참고로 제가 생각하는 가장 난해한 만화가 바로 [천상천하]입니다).



노루표 만화로 들어가보자면 팬들 사이에선 꽤 저명한 시미즈 키요시의 [삼국지염의]가 있습니다. 장비, 조조, 조운, 제갈량 등이 여성화되서 질펀하게 일을 벌이죠. 개그만화긴 개그만환데 별로 웃기진 않습니다. 더군다나 그리 꼴리지도 않습니다. 미형캐릭터들의 해프닝이 볼만한 정도이고, 장비가 란마처럼 성을 왔다갔다 한다는 설정 정도가 신선했다고나 할까요. 이것도 웹에선 퍼진지는 꽤 됐고 중국어로 번역까지 됐습니다만, 유비와 관우가 여자가 아니라서 그리 반응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다 꽤 절륜한 실력자들로 묘사되는지라 관우의 경우 조조와 제갈량을 애인으로 두고 있죠....

그리고 게임쪽에는 [연희무쌍]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컨버전이 치뤄진 [삼국무쌍] 시리즈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트랜스 [삼국지] 게임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_- 먼저 만들어냈습니다. 제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모바일 전략 시뮬게임으로 있죠. 유비랑 조조가 도트미소녀로 등장하여 열심히 전술을 굴려대던 걸로 기억합니다.

 


섬나라 친구들이 성전환시킨 고대 잉글랜드의 국왕께서 붉은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한다는 내용을 담은 합성화. 어쩐지 개념이 많이 상실되어 보인다.

[삼국지]에 대한 변환은 나관중으로부터 시작하여 천 년을 넘나들면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 고우영님은 [삼국지]를 통해 민중의 해학과 풍자를 뽑아냈고 [창천항로]는 법가적 세계관의 승리를 그리고 있으며 [용랑전]은 에스에프 무협물로 만들었죠. 그런 사례들을 보자면 그토록 다양한 관점의 이야깃거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텍스트덩어리라는 것이 부럽기도 합니다.

아무튼,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변환의 범위라는 거겠죠. 사실 나관중에서부터 [창천항로]까지, 일련의 작품들 속에서 사실은 어느 정도로 담겨야 하고 이야기는 어느 정도로 윤색되어야 하는가는 가상의 원본을, 혹은 철저한 객관적 사실을 지향하는 팬들에게서 영원히 죽지 않을 논란거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상에서 [삼국지]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까지 계속되겠죠. [연희무쌍]은 그 변환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버렸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거기에 너무도 전형적이며 아는 사람은 알아서 자극받을 미소녀코드에의 노골적인 집중 또한 문제 및 화제가 된 거겠습니다. 더군다나 18금인 만큼 수염 대신 포니테일을 기른 (반장-츤데레-모범생 타입)관우와 떡을 칠 수가 있다! 과연 하고싶습니까-_-?(완전히 방향성이 똑같은데도 [일기당천]이 제대로 취급받지 못한 것은 역시 붕가붕가가 없어서.... 라고 봐야겠습니다).

역사와 원본에의 뒤집기는 어느 정도치가 한계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얼마나 사적으로 작가의 반영이 가능한 장이 될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이 작가의 손을 떠나 이미 소비자-생산자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 그 범위는 끝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산물에 대한 거부감은 공론의 영역으로 확장될 때까진 개인적인 차원의 것들일테니까요.

 

껄껄껄

그렇지만 마냥 개인의 책임만으로 묶어버려서는, 효과적인 대중전파의 수단이 널려있는 21세기에 마땅한 해결법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마치 [사토라레]에서처럼 우리는 개인의 내면, 또는 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나 사고들, 혹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조작들이 미디어나 네트라는 광범위한 전파력을 가진 수단을 통해 대중을 자극하고 파괴적인 결말로 달려가게 만들었던 사건들을 자주 접해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풍자의 기술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예리한 비웃음의 칼날만큼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감당이 싫어지는 대상의 약점을 효율적으로 쑤셔댈 수 있는 기술도 없습니다. 웃음은 부당하게 부여된 권위를 부숴버리거나 상식을 벗어난 대상의 요소들을 낱낱이 분해해버립니다. 그러니, 우리는 보다 더 잘 웃을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나 권력이 부유하는 이 세상에선 말이죠.

 

뭐 길게 늘여놓다가 다시 삼국지 얘기로 끝내게 됐는데 사실 이 포스트를 올리게 된 건 오늘 또 하나의 괴작 [삼국지]를 보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케가미 료이치와 부론손 커플이 만든 이 [신 삼국지]는 [삼국지]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언급됐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내용인즉슨 주인공 료우가 히미코여왕을 도와 일본을 통일한 다음, 중국을 잡아먹기 위해 혼자서 바다에 풍덩, 깨어나보니 후한 유주 지방이더라.... 거기서 유비, 관우, 장비를 만나고, 유비가 하는 짓이 맘에 안 들어서 목을 싹둑, 지가 가짜 유비가 되더라.... 는 얘기입니다. 책 뒷표지에도 쓰여있는 도원결의하면서 하는 대사가 걸작인데 '큰형님이 왜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죽어도 말하지 않으리라!'.... 랍니다.

과연, 죽어도 말하지 않겠다니까 그 양반들 다 죽었어도 우리는 알지 못했던 거죠.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진실을 알아버렸습니다(대범하게도 책의 어디에도 이 작품이 픽션이며 실제 인물들이나 뭐시기 등등하곤 상관없으니 쓸데없는 착각마시라는 경고문은 없습니다)!

그외엔 콧수염만 지워버리면 얼짱 여자일 (게 뻔한) 조운 자룡 선생께서 청부업자로 나오셔서 유비를 보고선 두근두근한다던지 하는.... 꽤 혼란스러운 내용입니다.

 

기억해보면 이케가미 료이치의 만화 중에선 일본의 국보인 삼신기를 잇는 한 청년이 일본을 폭격하는 나치독일과 맞장 떠서 싸운다는 내용의 물건도 있었고.... 암튼 고전적인 주제들로 은근히 잘 웃겨주십니다 이 양반도.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바로 위에 얘기된 내용의 만화 속 주인공이 우리나라 해적판에선 한국이름으로 창씨개명되선 고종황제 손자였던가.... 아무튼 독립투사라는 설정으로 활약을 펼쳤었다는 암울한 사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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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퇴전문 2006-07-07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기적으로 만화 탄압이 벌어지는 한국에 비해, 일본의 저런 풍토는 부러운 일이죠. 전을 S, 노를 M, 하나회 쫄따구들을 관음증으로 만드는 상상력 같은건 언제쯤 가능할까 싶습니다.

hallonin 2006-07-08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솔직히 현재 우리나라 만화계를 지배하는 논리는 정치적이라기보단 자본의 논리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표현적인 측면에서 지금의 검열은 상당히 느슨한 편인 게 사실입니다. 이것은 영화쪽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국민의 정부 이래로 문화적인 표현의 측면, 검열의 측면이 많이 완화가 된 건 사실이죠. 특히 언더그라운드쪽으로 내려가면 그 표현의 수위는 무척 자유롭습니다. 전씨와 노씨가 에스엠 놀이하는 건 보지 못했지만, 최지룡이 그린 김영삼과 김대중이 뒤치기로 사랑의 유희를 나누는 만화는 봤습니다. 이것이 이슈가 안된 이유는 매체규모의 문제에 대한 일례로 들 수 있겠습니다.
지금에 와서 만화계에 가해지는 탄압의 대부분은 저 자본의 논리로 인한 출판사 및 방송사의 자가검열과 보수적 시민단체에서의 자녀사랑 및 치안보호에의 결연한 의지에서 비롯된 희생양 의식으로 인한 것들이랄까요.
글쎄요. 어쩌면 가시적인 정치적 대상에 대한 풍자의 의지가 돋보이는 그런 작품을 작가들이 만들 생각을 별로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또한 매체에서도 그것의 상업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는 거겠죠. 일단 생활고적인 문제, 즉 돈이 되느냐의 문제가 있겠고, 부차적으로 지난 세월 탓에 생긴 자가검열의 시스템이 아직 완전하게 씻겨지지 않은 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그때 그사람들] 사건이 보여준 소모전을 맘에 들어할 프러듀서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돈도 별로 못 벌었으니.). 또한 민노계열 및 그외의 진보세력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소위 노무현으로 대표되었던 진보좌파(라는 아우라)가 일종의 정치적 좌절상태이며 그 덕에 정치지형 자체가 다분히 보수지향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와 관련한 창작의지가 생겨날 여력이 없다는 것도 감안해야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사우스파크]가 나오길 절실하게 바라는 저로서도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배가본드 2006-07-11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상천하'는..열심히 서비스하는 그림만 난무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만화
그것마저도 요즘엔 관심 없어졌지만 최근작인 '에어기어'라고
이건 붉은매를 답습하는듯한 무한한 스토리가 맘에 안들어서 ㅎ
픽션에 대한 공지..라고 하시니
이런..'은하전설 위드'만 해도 100% 픽션이라고 친절히 공지해 주시거늘 ㅋㅋ

hallonin 2006-07-12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구레이토는 일러스트와 에로만화 외엔 끌리는 게 없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