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을 열고 거리로 나가본다. 3일에 걸쳐 이어지는 연휴는, 거리를 텅 빈 곳으로 만들어놓고 있었다. 간간이 오가는 차들과 셔터가 내려져 있는 가게들. 곳곳에 놓인 쓰레기들과 날아다니는 종이쪼가리들. 오늘은 요란스럽게 노래를 불러대던 핸드폰가게의 확성기도 잠잠하다. 고마운 일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 텅텅 비어버린 적막감만이 자리한 넓게 펼쳐진 회색 정글을 꿈꿔오던 나에게 [28일 후]는 그 꿈의 완성을 보여줬다. 런던, 주인이 사라진 거리, 대낮에 홀로 걸어가는 사람. 키리코의 그림. 그 익숙한 모든 것들이 보여주던 낯설지만 압도적인 풍경.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절대 부실하지 않다. 그것은 대니 보일의 전작들이 취한 사운드트랙들이 영상과의 놀라울 정도의 일체감과, 그걸 따로 떼어놓아도 훌륭하다는 말외엔 달리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의 탁월한 컴필레이션을 보여줬던 것을 기억하자면 당연한 일이다. 존 머피가 주축이 되어 그랜대디, 브라이언 이노, 블루 스테이츠 등의 인물들을 양념처럼 첨가한 [28일 후]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비오는 날에 벌어지던 인간과 인간 간의 죽고 죽이는 살인극이 존 머피의 음울한 모던록 'in the house'로 채색되어 아득하게 울려퍼지던 것이 기억나는 사람이라면, 멸망한 세계에 합당한 이 사운드트랙의 매력 또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조용하고 무겁게, 이 음악들은 건조한 악몽(혹은 누군가의 바라마지 않는 꿈)을 누르듯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