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의 세주문화사는 순정과 소년과 청년만화가 구분이 안되고 그냥 세주문화사 레이블을 달고 팍팍 나오던 시기였었습니다. 소노다 켄이치의 [건스미스캣츠]와 코나미 쇼코의 [코인로커]가 같은 자리에 놓여있었을 때니까. 그중에서 이 [파나 인사의 모험]은 소년과 소녀의 중간쯤에 자리하는 모양새였습니다. 왜냐면 작가인 이이다 하루코 자신이 여자인데다 전직이 일러스트레이터라서 만화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그림의 선은 꼭 순정만화틱했는데 정작 이야기 자체는 소년들에게 더 어필할 법한 모험물이었거든요. 이건 이후 작품들에서도 보여지는 작가의 개방적인 면모라고 볼 수 있는데 [미완의 달]은 순정, [매지컬 부기]는 소년만화 분류로 됐으니까요. 사실 그런 분류 같은 거 필요없이 볼 수 있는 만화라는 뜻도 되겠습니다.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은 당시로서나 쌍둥이 빌딩 붕괴 이후인 지금으로서나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중동 환타지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라비안 나이트]가 전세계 사람들에게 끼친 막대한 영향력은 사실이지만 원전의 막대한 상상력에 질린 건지 관심이 없었던 건지 그런 중동적 소재들과 현재의 환타지 장르와의 적극적인 결합은 그때나 지금이나 흔치가 않았었으니까요.


소재가 독특하다고 해서 만화 자체는 부실한 만화였느냐. [파나 인사의 모험]은 신선한 소재에 신경쓰느라 이야기를 망쳐버리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숙명과 동료...와 음모라는, 환타지물의 정석적인 공식을 따르지만 방만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도 그 정석적인 흐름을 충실하게 지켜가는 작가의 태도 덕에 아주 제대로 재밌는 만화로 빚어진 거죠. 특히 뒤로 가면서 작가의 성별을 다시 일깨우게끔 [11인이 있다!]와 시미즈 레이코의 만화에서 볼 수 있었던 BL적 긴장감이 슬슬 돌기 시작하는데....


그러다 끝났습니다. 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4권까지 나오고 끝. 작가와 출판사인 카도카와쇼텐 간의 트러블이 문제가 됐더라고 하더군요. 뭐 운좋게 4권 전부를 구해놓은 상태긴 하지만, 다음 권이 나오길 목이 빠져라고 기다리다가 약 5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그런 얘길 들으니까 허탈하더군요-_- 그리고 지금은 작가의 그림체가 바뀌어서 다시 연재한다 해도 그 맛이 날까 모르겠다....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암튼 심하게 아쉬운 작품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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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6-01-24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더 보고싶군요....
어디서 구할 수 있으라나~

sudan 2006-01-24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그렇구나. 다음 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냥 끝난거였군요. 허탈하다.

hallonin 2006-01-2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탈하죠... 후에 성라이센스로 우리나라에선 더 인기를 얻었습니다만, 후속작들 작가 후기에서 간간이 파나인사의 모험이 뒤집어진 걸 작가 자신도 허탈해하더군요.

그리고 구하는 건.... 아마 헌책방을 이잡듯 뒤지면, 핑퐁을 구할 수 있는 정도의 확률로 이것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