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 가서, 두상 모델 알바를 하고 돌아왔다. 가기 전에 광화문쪽을 뛰어다녀야 했기 때문에.... 그런데다 조형미술을 한다던 학원은, 외부에 간판도 달아놓지 않아서 좀 헤매야 했기에, 겨우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을 때는 꽤 상태가 안 좋은 편이었다.
회전의자에 앉아서 20분 동안 그 자세 그 표정을 유지하면서 5분을 주기로 45도 각도로 몸을 돌려야 했다. 이후 5분 휴식하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서 고정 모델역할을 하고.... 시작하자마자 네 명의 아이들-고등학생쯤 되는-이 푸른색 플라스틱통에 든 찰흙을 큼직하게 집어 각자의 작업대에 올려져 있는 기본골격에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처음은 커다란 갈색 떡처럼 보이던 덩어리가 긁고 깎고 덧붙이고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사람 머리로, 그러니까 내 머리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재밌는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그 전에 쓴 힘이 있어선지 고역이었다. 처음 두 시간 즈음은 그럭저럭 견딜만 했으나 그 이후부터는 어깨가 결려오고 눈은 감겨오고 자세는 유지하기 힘든 시간의 계속이었다. KBS2 FM의 디제이는 봄여름가을겨울에서 최강희로 바뀌고 있었고 냉기는 보이지 않는 안개처럼 교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드디어 작업이 끝나자 어디선가 자고 있었던 선생이 들어와서 내 얼굴과 완성품들을 비교해가며 지적사항을 아이들에게 알려줬다. 4개 중 두 개가 그나마 객관적인 형태를 맞춰간 덕에 볼만 했고, 나머지 둘은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특성 중 특화된 부위를 유독 크게 만들어놔서 완전히 딴사람이었다. 콘헤드.
소요시간 5시간. 알바비는 2만원. 시간당 4000원이란 가격은, 하는 일의 강도에 비해선 꽤 괜찮은 수익이라 할 만 하다. 그런데 돌아가기 전에 그 선생이 내 얼굴을 다각도로 돌아가며 찍어두는 것이었다. 나 말고 다른 이들의 그런 다각도 사진이 원형 틀에 코팅되어 걸려있는 걸 보니, 아마도 이후 미술 교재로 써먹을 생각인 듯 했다. 2만원이라, 아깝구만.
사진을 찍으면서 그 선생이 내가 사는 곳을 물어왔다. 얘기를 몇가지 나눠보니 알고보니 고등학교 7년 선배였다. 그런데 이제는 내 동창들도 제대로 기억을 못하는 판인데, 무슨 상관인가....
2만원에서 800원을 출자하여 구입한 GS25의 신상품인 모짜렐라 베이컨 김밥은 최악이었다. 저녁밥이 그렇게나 맛대가리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