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SEX 1
카미조 아츠시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기다리다 지쳐서 결국 이메일 해적판으로 구입한 이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 카미조 아츠시의 [섹스]가 드디어 북박스에서 정식 출간이 시작됐다. 앞으로 한 달에 한권씩 전 7권이 나올 예정인 이 작품의 명성은 이미 유명한 터. 스니커즈 수집에 미쳐서 만화 연재에 신경을 안 쓴다는 평판이 돌던 작가였던지라 죽을 때까지 못 끝낸다는 소리와 함께 2권과 3권 사이의 공백기간이 무려 5년이었던 것으로도 악명이 높았건만 어느새 7권까지 나와서 완결까지 지어버렸다.

[토이]란 만화가 가진 센스는 가히 십년을 앞선 것이었다. 무명이었던 카미조 아츠시를 벼락부자로 만들어준 동시에 완벽에 가까운 게으름뱅이로 만들어버린 그 작품 이후로 보여준 카미조 아츠시의 작품군이 다소 부실하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섹스]에 대한 오매불망 매니아층의 형성을 가능케 했다. 카미조 아츠시는 뛰어난 스타일리스트다. 모노톤의 적절한 조절과 센스있는 컷과 개그, CF적 서사에 익숙한 그의 만화들은 감각적인 측면에서 당대의 최일선을 달리고 있었고 이후 타지마 쇼우와 아사다 히로유키의 작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카미조 아츠시 스타일의 결정판이라고 불릴 법한 [섹스]는 한컷한컷이 대단히 신경써서 만들어진, 일종의 MTV 콘티라고 봐도 좋다. 더군다나 미군이 주둔한 오키나와에 서식하는 앵그리 영맨들의 이야기라니, 저절로 젊은 시절 무라카미 류와의 연대가 떠오르지 않는가. 바로 그것이다. 카미조 아츠시가 지향하는 지점은, 바로 그 지점에 맞춰져 있다. 그는 언제나 화난 청년들을 즐겨 다뤄왔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려고 한다.

사실 [섹스]는 이제 와서 보면 상당히 고전적인 인상을 준다. 그것은 카미조 아츠시와 같은 감각이 흔해진 세상이 되어서야 카미조 아츠시의 최고작을 경험해야 하는 리스크다. 카미조 아츠시의 만화들은 이제 MTV, [다중인격탐정 사이코], 수많은 타지마 쇼우의 아류작가들, 뻔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총격전을 벌이는 그렇고 그런 아이들, 3D 게임 동영상과 같은 이미지들과 동의어다. 그래서 쿠메타 코우지가 신랄하게 비꼬았던, 그런 영역의 질릴 법한 사카린맛을 지워버리기란 힘들다.

하지만 그래서 [섹스]는 동시에 아련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것은 처음 무라카미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즈]를 읽었을 때,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를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재생하는 것과도 같은 얘기다. 그 수많은 아류작들에도 불구하고 카미조 아츠시의 [섹스]에는 아직 낭비되지 않았던 시절의 순수함과 위엄이 느껴진다. 이후 자신의 작품에 대한 동어반복과 자신을 앞질러 가는 시대와의 속도전 속에서 힘들어하던 카미조 아츠시가 비록 이리도 뒤늦게, 우회해서 도착한 만화에서 팔팔 날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역시 괜찮은 경험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개 2005-10-13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표지를 보면서 장바구에 넣을까말까 고민했던 작품인데...
넣겠습니다..^^

sudan 2005-10-14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끙. 이러다간 책장을 하나 더 사야겠는데.

hallonin 2005-10-14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표지만 보면 좀 고민이 될 듯.... 그리고 부담드려서 죄송-_- 헐헐

chilee1999 2005-10-19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드뎌 정식으로 출간, 게다가 완결이라니.
북박스 최고 ㅠ.ㅠb

hallonin 2005-10-1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박스 뒤에는 중앙일보가 있죠.... 시공사 때와 같은 패턴입니다만, 그래서 좀 불안하기도-_-

로드무비 2005-10-3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네21에서 출간 소식을 보고 달려왔더니 리뷰가 있네요.^^

hallonin 2005-10-30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간만이신 듯. 그러나 여전히 바그다드 카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