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초입에, 만화이벤트랍시고 올라와 있는 걸 들어가보니.... 아주 당당하게, 하이북스판 나나난 키리코의 [어느 여자아이의 생일]이 목록에 올라와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젠 아주 합법적인 몰에서의 인가까지 받게된 것인가.
도대체 이 해적출판사의 정체는 무엇일까. [캔디캔디]를 몇번째일지 모를 정도로 재판해내고 국내에 나나난 키리코의 작품들을 소개했으며 [아키라] 또한 몇차례에 걸쳐서 보급판과 소장판을 뽑아내고 [강철의 연금쟁이] 같은 인기작의 선출판 형태로 치고빠지기 전략이라는 전형적인 해적출판사 다운 면모도 거리낌 없이 보여줬던 회사. 이미 상당수의 하이북스 소비층이 존재하는 가운데 메이저회사의 시장조사용 유령회사라는 풍문에서부터 메이저한 만화의 출판이 감수해야 하는 법적 문제에서 자유롭기 위해 매니악한 만화 소비층만을 노린 해적출판사의 새로운 물결이라는 얘기까지.
이것저것 썰들에도 불구하고 하이북스의 행태를 씁쓸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쩔 수 없이 이 회사가 가지는 불법성 때문이다. 나나난 키리코의 작품이 아무리 팔린다 해도 일본에 앉아있는 작가의 은행계좌엔 땡전 한 푼 안 들어간다. 이것은 도덕성의 문제이다. 정당한 지불을 받지 못하는 작가의 억울함을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하이북스의 마케팅 포인트 또한 그렇다. 아주 절묘하게, 국내에 출판된다 해도 크게 환영을 못 받을 듯한 작품들, 소위 메이저적인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들만 골라서 내는 하이북스의 행태는 지지자와 반대자를 극명하게 나누는 지점이다. 결국 국내 출판사들은 신경을 안 쓸 만화들이기에 하이북스는 출판한다. [아키라]는 출판을 위해 들일 노력에 비해 얻을 성과는 미미하다. 나나난 키리코의 정서는 오다 에이치로와는 완전히 반대지점에 있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이미 [핑퐁]으로 쓴맛을 봤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계약료와 판권이 지불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판됐을 때 얻을 수익은 분명하다. 이미 일정 이상의 팬덤이 형성된 지금에 와서는 더욱 그렇다. 하이북스는 그 부분에서 대단히 영리한 회사다. 아직도 한양문고에 가면 사무라 히로아키의 [이사]의 하이북스판이 쌓여서 팔리고 있다. 왜냐고? 하이북스판에는 세주문화판에선 볼 수 없는 일러스트 두 점과 작가의 인터뷰가 실려있기 때문이다.
하이북스의 존재는 우리나라의 빈한한 만화계의 현실이 뒤틀려서 드러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하이북스는 오토모 가츠히로 작품에 대한 정당한 댓가에 대해 머뭇거리게 만드는 출판업계의 현실과 마츠모토 타이요, 나나난 키리코 정도의 작가를 수용치 못하는 취향의 협소함, 혹은 시장의 협소함이 탄생시킨 사생아다. 그 모양이 대형몰의 간판에서까지 출몰이 가능할 정도로 뻔뻔스러워졌다는 것은, 너무 징글맞을 정도로 무감스러워진 결과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