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그러니까 8년 전, 난 순정만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도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읽었던 순정만화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아이카와 사토루의 [푸른하늘]. 단 6권만으로 미완되어 지금까지도 헌책방에서 그 만화를 찾아다니는 매니악한 팬덤을 형성해낸 이 만화는 아소 미코토와 비슷한 정도의 결벽증적 경향과 호모섹슈얼리티가 섞인 작가의 취향과 함께 각 에피소드마다 바뀌는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들이 보여지던 만화였다. 세곳의 학교와 그곳에 다니는 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이 만화에서 전체적으로 가장 큰 줄기는 학교축제이며 이야기는 동시간대에 학교축제라는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들간의 관계에 대한 물음과 대답에 집중하고 있었다.

난 이 만화를 이상적인 순정만화로 생각하고 있었던 듯 싶다. 그래서 당시에 찾는 만화들도 [푸른하늘]과 비슷한 느낌의 만화들을 찾았었던 걸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래서 니시 케이코의 [3번가의 기적]에 대단히 실망해서 1권만 보고 접어버렸었기 때문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3번가의 기적]은 작화에서부터 내용까지 꽤 산만하고 오버액션적인 경향이 보여지는 만화였다. 이후 관심을 끊었던지라 이 작가가 야오이계의 전설 [후지미 2번가 교향악단]의 일러스트를 맡았다는 것도 최근에서야 알 수 있었다.

처음 [STAY]를 봤을 때, [3번가의 기적]과 같은 작가란 걸 눈치챌 수가 없었다. 8년 전과는 다른 분위기, 다른 작화. 시골 고등학교 연극부에 소속된 다섯 여자아이의 여름을 다루고 있는 이 만화는 차분하고 정적이며 평온하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1권에서 다섯명의 이야기를 개요식으로 하나씩 다루고 이후 권마다 한명씩 잡고 이야기를 전개시킬 것처럼 보이는 이 만화에서 나오는 주인공 다섯 아이들은 각각 개성이 강하고 자신들의 세계가 잡힌 여자아이들이다. 그런 그녀들의 여름은 지나가버린 좋은 날, 혹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시간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미리 자리하고 있는 아련함이다.

문득, 내가 이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것은 8년 전, 바로 [푸른하늘]에서 느낄 수 있었고 [3번가의 기적]에서 느끼고 싶었던 것 아닌가.... 이렇듯 우회해서 돌아온 여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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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8-23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시 케이코 작이라서 안 사봤던 만화인데........^^;;; (전 <후지미2번가 교향악단>이 영 아니더라구요.. 오히려 <3번가의 기적>은 괜찮았었군요..)
하지만, 이 글을 읽으니 상당히 보고싶어지는군요..

hallonin 2005-08-24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래에 본 것들중 몇안되는 맘에 드는 만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