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노래 7
토우메 케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토우메 케이는 그저 그림만으로 좋아하게 만든 작가였다. 흑철을 처음 봤을 때, 그의 그림은 유화의 진한 선과 만화체가 선사하는 만화다움이라는 분위기, 그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어중간하다고밖엔 볼 수 없는, 작품에 대한 어색함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작가에게서 자신의 작품을 어색해 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토우메 케이는 그 기간이 좀 긴 편이었다.

초기작인 '제로'는 그 결과가 상당히 보기 안 좋게 나타난 경우였고 '흑철'은 옴니버스식이라는 호흡 고르기로 그런 함정을 가까스로 피해가고 있었다. 그의 작품이 대부분 비극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녀의 그런 태도는 작가가 가진 어둠이 작품에서 비교적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작가 자신이 작품 속에 빠져 들지 못 할 이유를 제공해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그녀가 장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 4권이 나올지 모를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와 더불어 그녀의 작품 세계를 말해줄 또 하나의 축이 될 이 만화의 제목은 '양의 노래'이다.

'양의 노래'는 흑백으로 인쇄되는 만화가 잿빛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주는 작품이다. 모노톤이라는 효과의 극단적인 추구가 아름다움이라는 경지에까지 이른 '다중 인격 탐정 사이코'의 화려함과는 정반대로 이 작품은 그녀의 화풍이 그래왔듯 투박하고 거칠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여느 작품에서보다도 잿빛이라는 인상을 준다. 흑백이 아닌 잿빛.

그것은 이야기에 의한 결과일 것이다. 토우메 케이는 여전히 겉 돌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그런 작가의 태도가 여기선 되려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흡혈귀라는 이제는 진부해진 소재, 답답하고 신경질적인 캐릭터들, 그런 그들을 엮어주는 정과 원초적 관계라는 고전적인 이유. 일족을 통해 내려온 흡혈이라는 병과 남매간의 유사 근친상간적 에로티시즘, 그리고 그들과 그 주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줄기차게 묘사되는 이 작품에서 모든 인물들은 머뭇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행동에 대한 머뭇거림이다. 자신들이 취하고픈, 그러니, 욕구라 불러야 마땅할 행동에 대한 머뭇거림. 의도했든 아니든 대단히 금욕적인 만화가 되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밑에서 욕망은 꿈틀거리고 있다. 억지로 덮어진 에로티시즘. 그리고 그 금욕과 답답함은 앞서 말한 작가의 그 겉도는 태도에 의해 증폭된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만화는 흑백의 분명함보다는 잿빛의 탁함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그 잿빛이야말로 이 작품이 창조해낸 미덕이라 할 수 있겠으니 내내 세라복과 기모노 사이에서 입는 옷이 결정되는 치즈나에게 드리워진 억제된 매력처럼 작품은 그 답답스러움과 억제된 감정으로 독자를 마조히즘적 쾌감의 경지로까지 몰아간다. 꾸준히 보여지는 남매간의 갈등은 4권의 폭발이 있을 때까지 끈질기게도 억눌려지고 이것은 진정 토우메 케이가 작품에 갖는 어중간한 태도의 승리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 결말이 났다. 단행본으로는 7권을 겨우 채운 느릿한 호흡과 두텁고 짙은 잿빛의 매혹을 가진 이야기가 6년 반만에 그 끝을 맺은 것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비극은 차곡차곡 진행되고 마지막, 예상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그 모양을 드러낸다. 너무 슬픈 노래라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처럼 조용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그렇게 조용하게, 잃어버린 기억이 되어 시간 속으로 스며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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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실로 2019-01-20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빨 죽이시네요. 너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