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단 서역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호평들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이해는 가고 걸작이라 말해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인데, 그렇다고 신이 창조한 궁극의 초걸작은 아니고.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하게끔 설계된 탄탄한 스토리, 꽉 잡힌 연출, 달리 대역을 생각하기 힘든 연기자들, 그리고 기술적인 면의 탁월함 등등의 잘 짜여진 수공업스런 인상이 [다크나이트]를 A급 작품으로 만들어놓고 있음.

2. 아마도 제작비가 1억 5천만 달러가 투입된 수퍼히어로물 블럭버스터에서 이정도의 어두운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비평가들로 하여금 매체의 성격을 가리지 않고 거의 만장일치의 평가를 내리게 만드는 거 같은데, 보면 PG-13 등급 받아낼려고 애썼겠구나 싶을 정도로 영화의 기조가 어둡고 과격하다. 지금 미국에서 비정상적인 스코어 신기록을 거듭 갱신하고 있는 게 의아하게 여겨질 정도. 하긴, 상식선 하에서라면 그런 흥행 자체가 불가능한 거 아니겠나.

3. 화려한 기교 없이 육중하게 연출해내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방향성에 영화가 둔탁하게 묻혀버리지 않도록 이야기에 동력을 제공하는 건 역시 조커의 역할인데, 여기서 보여지는 히스 레저의 조커는 한마디로 100% 완벽하게 미친 놈이다. [나는 전설이다](라고 쓰고 [윌 스미스는 전설이다]로 해석가능했던 영화) 개봉시 공개되어 마이클 만을 연상케 만든다고 회자되었던 오프닝이나 그가 부리는 '마술'씬만 봐도 알겠지만 그에 비하면 잭 니콜슨의 조커는 참 후덕하고 인자한데다 시크된장틱한 아저씨였구나 하고 느끼게 만들 정도로 가차없이 살벌해서, 배트맨과 동전의 양면을 이룸과 동시에 원인도 이유도 정체도 없는 순수하고 잔인한 재난으로서의 징후로 이미지화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다크나이트]를 조커에 의한 재난영화로 읽어내는 것도 재밌을 듯싶다). 오스카에서 한 자리 줘도 아무도 불만 없을 거임.

4. 이중삼중으로 함정을 만들어놓는 조커의 성격을 히스 레저가 너무도 열심히 표현해내준 덕분에, 영화는 끊임없이 불안과 선택이라는 두 키워드 사이에서 위태롭게 떠다니고 있다. 두 키워드를 합쳐보자. '불안한' '선택'이란 건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바로 '광기'다. [다크나이트]는 상영시간 내내 그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미국에서의 [다크나이트]의 성공'이라는 징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5. 그리고 하비 덴트는 감독의 인터뷰에 있어서나 영화 사전에 공개된 이미지들에 있어서나 명백히 미국에 대한 은유.

6. 그러니까 이 영화는 선과 악이라는 두 다른 모양의 껍데기를 가진 같은 형태의 의지 간의 충돌이 일으키는 현재적 지속에 대한 절망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7. 개인적으로 전작에서 가장 강력한 불만이었던 게 아마도 사실주의를 견지하려는 입장에서였는지 고집쎄게 핸드헬드의 뭉개진 동선으로 찍혀졌던 액션씬들인데(다르게 말하자면 그냥 되는대로 찍은 듯한) [다크나이트]에서의 액션은 훨씬 잘 짜여져 있고 (전작보다는) 분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깔 꺼리가 또 하나 사라져버린 거임.

8. 매기 질렌홀은 예상외로 레이첼 도스역에 잘 어울림. 케이티 홈즈의 자리를 메꿔주는 나긋나긋한 품위. 게리 올드만의 비중은 전작에 비해 커졌고. 넉넉한 상영시간 덕인지 조연들 하나하나도 탱탱하게 살아있는 느낌.

9. '다크나이트'란 주제는 [브이포벤데타]의 브이라는 주제와 거의 일치됨. 예상가능한 바지만. 거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된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씬에선 크리스토퍼 놀란의 수도승적인 배트맨은 팀 버튼의 가족 컴플렉스적 배트맨과 완전히 다르다는 선언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씬은 배트맨과 조커가 결국은 서로에게 작용하는 거울효과라는 것을 확고하게 암시해준다.



얼핏 이 밋밋하게 보이는 장면이 포스터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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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고자라드 2008-08-07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우.. 저 포스터..

sweetmagic 2008-08-07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상영 끝나고 나니 미국애들 벌떡 일어나 다들 기립박수를 치더라구요.
안 그래도 자막이 없어 버벅거리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긴했지만 (그것도 앞줄 맨~ 옆끝자리)....님 리뷰를 읽고 보니 영화가 새삼 새롭다는.......


hallonin 2008-08-07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바로 저 장면이죠.


앞줄에 맨 옆끝자리면.... 눈이 상당히-_-